새벽에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달렸다. 젊다면 '어이쿠'하면 그만일 엉덩방아였지만, 아흔의 어머니와 내 생활은 심각한 골절상을 입었다. 아흔에 고관절 골절이면 와병 끝에 따라나설 수 없는 길을 홀로 떠나기도 한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환자다. 경증이지만 사고의 충격과 통증은 단번에 치매를 키웠다. 겪어보지 못한 기나긴 밤이 시작됐다. 대변을 받아내는 건 차라리 에피소드였다.
침상에 누운 어머니는 뼈가 부러진 것조차 잊고 수시로 일어서다 통증에 자지러지길 밤새도록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가겠다며 팔을 휘젓고 아들이 당신을 괴롭힌다며 트집 잡길 이틀 낮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감정을 쥐어짰다. 어머니를 안으며 달래도 보고 화도 냈다가, 눈물로 사정도 해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누구의 삶에든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다. 간병인이 간절했다. 월급 전부를 털어 붓더라도 상관없었다. 병원 게시판엔 24시간 간병에 일당 8만 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다인가 싶어 다시 읽었다. 역시 고작 8만 원이었다. 그땐 그랬다. 아들조차 벗어나고픈 간병, 그것도 24시간 붙어 보살피는 대가가 고작 8만 원이라니 "이게 옳은가?" 싶었다.
내가 구한 간병인은 휴일도 없이 한 달을 일하겠다고 자청했다. 다만 치매를 감안해 일당 9만 원, 즉 월 30만 원 추가임금을 요구했는데 당연히 그러마했다. 대신 휴일도 없이 일을 하시라 할 순 없다고 주 휴일을 정하시라고 권했다.
간병인은 24시간 계속 환자 곁에 머문다. 그러니 출퇴근이 없다. 새벽에 환자가 깨면 그때부터가 출근이다. 양치와 세안 등 위생관리는 일도 아니다. 대소변을 챙기는 건 기본이고 심각한 환자는 석션으로 가래를 뽑고 음식 주입 등 의료 처치도 한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환자를 부축해 물리치료와 각종 검사에 동행하고 별도의 운동도 시켜야 한다.
밤이라고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다. 밤새 환자의 미동만 느껴져도 눈을 떠서 살펴야 한다. 사실상 휴식시간은 없다. 잠시나마 누울 수 있는 공간은 겨우 150㎝×60㎝의 간병용 침대, 팔 다리도 펼 수 없는 딱딱하고 옹색한 자리다. 수면부족과 긴장은 필수고 환자의 신경질과 욕설 등을 받아내는 환장할 감정노동은 덤이다.
24시간 간병은 돈을 준다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돈을 준다면 간절한 가치만큼 제대로 줘야 마땅하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을 감안한다면 저임금도 이런 저임금이 없다. 최저임금법 적용조차 받지 못한다. 간병인은 간병인업체(협회)가 아닌 환자의 보호자(가사사용인)가 임금을 지불한다하여 노동법 적용에서 제외됐다(근기법 11조). 그 탓에 노동시간 제한도 없고 각종 수당은 물론 휴일, 휴가, 퇴직금 체계도 없으며, 헌법 상 노동3권이나 산재 등 아무런 권리도 없다.
그렇다고 법을 바꿔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어찌해야 할까? 간병노동의 절박성을 말하는 나부터가 간병인을 구하며 통장 잔고를 떠올린다. 평범한 월급이라면 다 털어 넣어야 했기에, 간병인의 처우가 어떻건 그 일당이 부담이 된다는 경제적 타산이 뒤따른다. 얼마간 저축이 없다면 간병비는 생활에 치명적이다.
이렇듯 받는 사람에겐 너무 적어 억울하고, 주는 사람에겐 큰 부담이 된다면, 정치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여기다. 그 방안으로 2013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단계적이고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환자가 간병인을 개인적으로 고용하지 않고 병원이 간호와 간병에 필요한 모든 의료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시급히 확대 시행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가 할 역할이다. 다만 보완해야 할 미비점도 적지 않다. 즉, 기존 간병인력의 고용안정과 간호사들의 적정 노동강도를 위한 정부와 병원의 책임이 따르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경감되도록 정부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과 동시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를 통해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지금껏 시범사업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예산 투입은 인색하고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이해관계 충돌을 핑계로 이렇다 할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다. 정부는 안 되는 핑계를 찾을 것이 아니라, 도전적 정책의지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병원은 환자의 고통이 가족의 고통으로 감염돼 확산되는 곳이다. 의료체계가 건강해야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도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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