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옛 전남도청 회의실에서 15일 <인권은 누가 호명하는가?> 라는 주제 아래 특별한 토크쇼가 열렸다.
ACC 민주평화교류원과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토크쇼에는 민주‧인권‧평화운동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세 사람의 활동가들이 게스트로 초청돼 관심을 모았다.
출연자인 강용주 원장(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14년 복역 세계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아나파 병원장), 송경동 시인(‘희망버스’기획자,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 임인자 예술감독(광화문 공공극장 ‘블랙텐트’ 운영위원, 독립기획자)은 한결같이 문재인 정권의 정체성을 회의하며, 촛불시민이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서는 전기마련을 강조했다.
이날 토크쇼 진행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맡았다.
강용주 “촛불정권, 그 촛불로 제 발 아래만 비추고 있다”
복역 후 출소, 복학, 그리고 만학도로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시험을 보려는 참에 보안관찰 갱신 통보가 왔다. 끈질긴 그 억압의 사슬이 소름끼쳤다. 보안관찰은 일제 강점 하에 독립운동가들의 발을 묶기 위해 만들어진 억압체제다.
내게 보낸 보안관찰 갱신 통보 공문은 다름아닌, 참여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인 강금실 장관이 결재한 서류였다. 당시 집권세력 내에서 국가보안법 폐기를 운운하던 때여서 더 당혹스러웠다.
문재인 정부라고 달라진 게 없다. 지난 2월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보안관찰법 위헌법률심판 재청 요구는 기각됐다. 그래서 지금도 보안관찰 상태다.
촛불정권이라 일컫고 있지만, 우리 안에 다른 타자가 있는 것이다.
민주‧인권‧평화도시라 자임하고 있는 광주도 다를 바 없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 벨’상영을 정권이 가로막았지만 영화예술을 정치권력이 강제할 수 없다는 예술인들과 시민들의 각성으로 영화는 상영됐다.
박근혜 적폐를 닭에 비유해 풍자한 작가 홍성담의 걸개그림이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되는 것을 청와대가 막았다. 당시‘시민시장’이라는 닉네임을 걸고 당선된 윤장현 시장은 문체부 차관의 전화 한통을 받고 그림을 내리게 했다.
‘내 안의 타자’ 모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부발전 태안화력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보자. 서부발전 임원 8명 중 3명이 청와대의 캠프 코드 낙하산이다. 숫자로 보자면 문재인 정권의 낙하산이 박근혜 정권 낙하산보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걸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낙하산으로 내려앉았으면 정권출범 정신에 맞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부발전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나? 2인 1조 작업도 할 수 없고, 안전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을 개조하기 위해 과연 어떤 일을 했나?
멀리서 본 촛불은 길을 안내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선 촛불은 내 발밑을 비출 뿐이다. 광화문 광장에 운집한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그 촛불의 힘을 지금 자신들의 발밑만을 비추는 왜소한 촛불로 전락시키고 있다.
송경동 “1,700만 촛불이 만든 문재인 정권, DNA 달라진 게 없다”
요즘 4‧19 후에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꿨다’고 말한 김수영 시인의 시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육법전서와 혁명’이라는 김 시인의 시가 있다. 이런 내용의 시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 뿐이다…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1,1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문재인 정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 행보로 인천공항에 가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약속했지만, 공항측은 자회사를 만들어 열악한 노동조건을 지속시키려는 꼼수로 대통령의 약속은 망가졌다.
지난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으로 해고된 파인택 노동자 해고투쟁, 콜트 콜택 노동자 해고투쟁 등 참담한 노동인권 문제들이 산적해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오히려 재벌과 관료에 기대어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기까지 한다.
돌이켜보면 광화문 촛불광장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과오일 수 있다. 1,700만개의 촛불이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고 관철했지만, 촛불 이후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의제를 세우지 못했다.
물론 의제설정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의 싸움에 집중해야한다는 전략이 앞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이라는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도 많았다. 그러나 탄핵이 돌연 이뤄지고 대선 일정이 잡히면서 모든 개혁적인 의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선거 국면 아래 잠적해버렸다.
그 허술한 국면 전환이 지금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당시 촛불이 활활 타오를 때, 정당과 국회에 사회개혁 약속받았어야 했다.
오늘 토크쇼에 참석하기 전에 재판을 하나 받았다. 국회 앞 100미터 집회금지 어기고 경찰과 싸웠던 사건이다. 집회금지법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무죄 받았다.
지금까지 기소되거나 입건된 건이 스물대여섯 건에 이른 것 같다. 정치권력을 신뢰할 수는 없다. 촛불시민정신이 중심이 돼 일부의 인권이 아닌, 모두의 인권 지켜가야 한다.
앞으로 그 숫자가 1,100만에 이르지만 대표성이 없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회의를 조직해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활동에 매진할 작정이다.
임인자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처음엔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에서 올라온 청년 한 사람이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적폐정권을 성토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올바른 목소리가 광장으로 나왔다는 감동을 느끼고 광화문에 공공극장 ‘블랙 텐트’를 차렸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인 송경동 시인이 언급한 얘기지만, 블랙리스트 작성이라는 거대한 국가폭력을 조사권도 수사권도 없는 장관 자문기관인 ‘진상조사위원회’에 맡긴 것부터가 왜곡됐다.
블랙리스트가 거대한 국가폭력이라는 인식이 결여된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정권에 찍힌 예술가들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다. 중대한 인권의 문제이고, 사상을 통제하려는 기도였다. 이러한 인식이 결여돼있기에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진척된 게 없다.
뿐만 아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해고 노동자들의 장기 투쟁, 사법 농단 처벌, 모든 게 답보상태다. 노동정책도 악화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린 책 <살아남은 아이>의 부제는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 이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부산역 앞에서, 용두산 공원에서, 자갈치 시장에서 잡혀갈 때 우리는 그들의 사라짐을 인식하지 못했고 방조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했음을 지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들불처럼 일어나 불평등과 모순의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의 소리를 정부가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관료와 재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거대한 힘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우리를 계속해서 절벽으로 밀어낸다.
이 토크쇼의 주제가 ‘인권은 누가 호명하는가?’이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 사람이 먼저라고 외쳐왔고, 지금도 외치고 있는 이 정권도 오래된 억압들 밑에서 고통 받으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존재를 유령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선 광주가 이 거대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역할하며,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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