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검찰은 왜 원세훈만 도려냈을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검찰은 왜 원세훈만 도려냈을까?

[비교 분석] 민간인 사찰 사건과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

지난 2009년 터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교훈'일까? 하급 직원을 기소하면 폭로로 돌아온다는 점 말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진행 과정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검찰은 지난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85조 위반 및 국정원법 9조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과 법무부가 티격태격하면서 원 전 원장은 결과적으로 구속을 면하게 됐다. 심지어 검찰은 국정원의 이종명 전 3차장, 민 모 전 심리전단장, 김 모 심리전단 직원 등 3명, 외부 조력자 이 모 씨 등 6명에 대해서는 전원 기소유예 했다. 상명하복 관계라는 조직 특성상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단순히 따랐을 뿐이라는 게 이유였다.

지나치게 깔끔한 결론이었다. 원 전 원장의 과잉 충성이 이런 불법을 자행하게 된 동기였다는 것이고, 원 전 원장의 과잉 충성에 동원된 부하 직원들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원세훈 전 국정원장 ⓒ뉴시스

민간인 불법 사찰의 '추억',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지난해 3월 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몸통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단단히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기자들을 노려봤다. 내가 '몸통'이니 내 선에서 마무리하라는 황당한 엄포였던 셈이다.

이 전 비서관이 나선 시점은 더욱 황당했다. 이미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끝나고 관련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었다. 검찰이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을 '몸통'으로 지목해 기소했다가 부실 수사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결국 여론에 떠밀려 재수사에 돌입하기 전까지 자칭 '몸통'은 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 대목이었다.

그에 앞서 2010년, 검찰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주범이 이인규 전 지원관을 비롯해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 김충곤 전 점검 1팀장, 원충연 전 조사관, 권중기 전 조사관, 장진수 전 주무관, 김화기 수사관 등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총리실 2급 직원이 '몸통'이고, 6급 직원과 파견 경찰관이 그런 '악랄한 짓'을 독자적으로 자행했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검찰은 비난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하급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요즘 논리로 하면 상명하복에 따랐을 뿐인 이들은 줄줄이 실형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이렇게 끝나나보다 했다. 하급 관료들의 과잉 충성이 빚어낸 참극에 불과한 사건이 될 뻔했다. 6급 주무관이 청와대 개입 사실을 폭로하고, 이영호 전 비서관이 "내가 몸통"이라고 말하며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는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나도 불법 사찰의 피해자"라고 스스로 규정했다. 검찰은 재수사 여론에 밀려 의욕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재수사로 밝혀진 사실 역시 기존의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1급 비서관(이영호 전 비서관) 하나와 4급 행정관(최종석 전 행정관) 하나가 추가로 기소됐을 뿐이었다. 정권 실세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일부만 관여한 것으로 됐다.

구속과 재판에 시달리는 하급 공무원들에 대한 '입막음용'으로 청와대가 현금 뭉치를 다발로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영호 전 비서관의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심으로 충성'한다는 내부 문건도 발견됐다.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의혹은 첩첩이 쌓여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큰 곤욕을 치른 검찰은 내곡동 사저 파문 때 기민한 모습을 보여줬다.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당시에도 청와대나 검찰 안팎에서는 "민간인 불법 사찰처럼, 내곡동 사저 배임 의혹도 몇몇 실무자를 기소해봐야 오히려 일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원 무혐의 처리를 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돌았다.

실제 지난해 10월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기자들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이 사건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배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김 모(매입 실무를 맡았던 청와대 실무자) 씨를 기소해야 하는데, 김 씨를 기소하면 배임에 따른 이익 귀속자(이익을 본 사람)가 대통령 일가가 된다. 이걸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실무자를 기소할 경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곤란해진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그러나 이를 달리 보면, 민간인 사찰 사건 때처럼 기소된 실무자가 윗선에 대해 폭로하는 일이 발생할 여지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의 수상한 기소유예…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 검찰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 말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원세훈 전 원장만 깔끔하게 도려냈다. 충성심 높은 원 전 원장이 전직 대통령을 '푸닥거리'에 끌고 들어오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로서도 안전한 선택이다. 법무부에 밀리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카드도 일찌감치 버렸다. 현재 원 전 원장은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불구속 기소에 대해 "국정원 범죄 직원들에 대해 상명하복 관계를 이유로 불기소한 것과 동일한 수준을 적용해 달라"며 "검찰은 나에 대한 공소를 취소해주기 바란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나 역시 VIP에 절대 충성하는 조직에서 명백히 상명하복의 관계에 있었고, 지시를 받아 행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상관의 지시를 받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하는 등 증거 인멸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았다.

이번 사건과 비교해보자,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유예하며 무리수까지 뒀다. 경찰이 앞선 수사를 통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던 국정원 직원 김 모 씨의 경우, 검찰은 경찰 수사를 묵살해버린 셈이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검찰의 무더기 기소유예 처분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선 직원들이 기소될 경우 민간인 사찰 사건 때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명 전 3차장을 비롯한 국정원 '실무 라인'에 대해 내린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민주당이 재정 신청을 하기로 했다. 검찰의 불기소가 정당한지 법원에서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타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할 만하다.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