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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파문은 장자연 사건 제대로 처리 못한 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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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파문은 장자연 사건 제대로 처리 못한 업보

[창비주간논평] 재벌의 '봉건 체제'를 넘어서야

오호 통재라!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적인 사회로 퇴보하고 있다. 최근 '갑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불거진 여러 사건들의 뿌리는 재벌 봉건 체제에 있다. 필자는 졸저 <혁신하라 한국경제>에서 한국 재벌의 구조가 봉건 체제와 유사한 점 여덟 가지를 설명했다. 재벌 총수는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고, 권력은 자녀에게 세습된다. 간부 직원들은 중세의 가신들처럼 평생을 한 주군을 위해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한국의 내수 시장은 봉건 경제처럼 재벌 그룹들이 자체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는 자급자족형 폐쇄 경제가 압도적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자동차 시장의 과점적 시장 지배력을 활용하여 할부금융과 신용카드업(현대캐피털), 증권업(HMC증권), 물류업(글로비스), 광고업(이노션), 전산개발업(오토에버), 건설업(현대엠코) 등을 영위한다. 이들은 그룹 자체의 물량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후 외부 시장을 공략해왔다. 지난 10년간 이들의 몸집을 급속히 불려가며 정몽구 회장과 그 가족의 개인적인 재산 축적에 악용해 왔다.

삼성, LG, SK, 한화 등 다른 그룹들의 행태도 비슷하다. 수십 개의 재벌 집단이 봉토를 나누어 자급 경제를 하며 영역 다툼을 하는 모습은 중세 봉건시대와 유사하다. 춘추시대에 주나라왕의 힘보다 봉건 영주의 힘이 강했듯이, 현대 한국 재벌들의 영향력은 국가기구를 능가한다.

▲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남양유업 김웅 대표(오른쪽 네 번째) 등 임직원들이 '영업 직원 막말 음성 파일'로 불거진 강압적 영업 행위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 한국의 봉건 영주, 재벌과 이권 집단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 역시 폐쇄적으로 세습하며 공급을 제한하여 자신의 이권을 추구했던 봉건시대의 동업자 조합인 '길드'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은 소득 수준 상위 5% 안에 들어가고 유사한 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의 3배 정도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터무니없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자식에게 일자리를 세습하는 권리까지 쟁취하기도 했다. 이들 역시 우리나라를 봉건제로 '퇴보'시키는 이권 집단이다. '진보'란 봉건적인 압제와 신분 차별을 혁파하여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의 사회로 만드는 과정이다. 소수가 자기들만 더 큰 이권을 얻기 위해 비정규직, 하청업체와 임금 격차를 확대해가는 것은 명백히 반동적인 퇴보다.

재벌의 지배 집단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조의 부당한 요구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적대적 공존의 부작용으로 국민 경제는 멍이 들고 수많은 서민들은 일자리 없는 설움과 빚 독촉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2013년 들어 현대차는 노동조합의 태업 때문에 생산량이 부족해지자 국내 대신 중국에 생산 기지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터무니없는 고임금에 통상임금을 대폭 올리는 문제까지 발생하자 한국지엠(전 대우차)은 계획했던 8조 원 규모의 투자마저 다른 나라로 돌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외교적 결례와 법질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지엠대우의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에 직접 만나서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 고임금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리라. 만약 지엠대우가 8조 원의 투자를 다른 나라로 돌린다면, 뒤이어 봉건적인 구조가 국민 경제를 몰락시키는 사건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 같아서 두렵다.

한국 사회가 소수의 재벌을 중심축으로 관료 집단, 전문가 집단, 고임금 노조 등 기득권 집단 20%가 80%의 서민을 착취하는 구조의 신분 제도가 굳어져가며, 봉건적으로 퇴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의 횡포는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봉건적인 억압 관행이 일부 드러난 것일 뿐이다.

수십 년간 '갑' 노릇을 해왔던 포스코의 임원은 항공사 승무원을 봉건시대의 노예 부리듯이 대했다. 기업주에게 아부하며 갑의 권력을 행사하던 남양유업의 간부들은, 조선시대 지주의 하수인이었던 마름처럼 대리점 주인들을 소작농 취급해왔다.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들에 대한 횡포는, CJ그룹이 수십 년간 끊임없이 담합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봉건적 사법 체계가 만들어낸 습관적인 만행이다.

80% 서민의 권익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은 봉건적 억압 장치를 이용하여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던 '장자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엘리트 카르텔의 업보다.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언론사의 최고위 인사들이 주범으로 가담했던 '장자연 사건'은 악질적인 범죄 행위였음에도 언론사의 권력을 이용하여 덮어버리고 국법 질서를 유린한 사건이다. 이런 일에 익숙했을 법한 기자 출신 윤창중의 유흥 습관이 어땠으며 여성에 대한 의식이 어땠는지 짐작하게 된다.

봉건적인 신분 구조가 강화될수록 경제는 후퇴하고 사회는 부패하고 민심은 황폐해진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봉건 체제는 언제나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서 전복된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자체장은 국민들이 낸 세금을 써가며 20% 기득권층의 이익에 종사하는 한국의 간접민주제적 정치 구조는 엘리트 카르텔만을 위한 봉건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소외된 80%의 서민도 국가의 정책에 자기 의사를 더 반영할 수 있는 직접민주제적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봉건적 신분 사회로 퇴화하는 것을 막고 풍요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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