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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군사문화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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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군사문화에서 벗어나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7> '윤창중'·'임을 위한 행진곡'의 교훈

윤창중 사태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박근혜 청와대'의 용량(容量)과 기능에 대한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그 모양 그 꼴인가 하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되는 탄식이다. 특히 '일을 낸' 윤창중 씨를 놓고는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냐"는 투로 한숨 섞인 이야기들을 쏟아 내고 있다.

그의 '시작'에서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가 계속 저지른 사건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애당초부터 윤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그동안 써 온 글들을 보면 '글쟁이'의 필수 덕목인 균형 감각이 원초적으로 실종돼 있는 것에 우선 놀라게 된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극도의 초조감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에 대해서는 멋대로 재단해 매질하거나 깔아뭉개는 우격다짐 식 군사문화까지 읽히는데 또 놀라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그를 '극우 보수 논객'이라고 '예우'해 왔다. 그러나 그의 글을 관심 있게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철저한 박정희 신봉자이면서 군사문화 예찬론자라고 단언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 별 교류도 없던 그를 '대통령 당선인 제1호 인사(人事)'로 당선인 수석대변인에 임명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지닌다. 그때 그 인사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 맡길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우려하고, '불통논란'까지 불거졌으나, 대통령은 고집스럽게 그를 청와대까지 데리고 가 초대 대변인으로 등용했다. 그 '등용'이 필경 이번 참사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결국 '박정희'와 '군사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향수가 바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소리다.
▲ 윤창중 전 대변인 ⓒ뉴시스

일부 보수논객들은 그 새를 못 참고, "젖가슴도 아닌 겨우 엉덩이를 만진 건데…"라거나, "종북세력들의 음모"라거나, "호남향우회가 의심스럽다"는 기막힌 이야기까지 쏟아내며 윤 씨를 감싸고자 했다. 양파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대응하는 청와대 요원들의 위기관리 능력도 한마디로 딱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수석비서관 회의의 '모두발언' 형식을 '차용'했다.

국민을 진심으로 떠받드는 느낌을 주는, 상황에 맞는 '적절함'과 '당당함'이 눈에 띄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잔말 말고 주는 대로 받아먹어라"는 소리로 듣고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목을 놓고, 마지못해서 하는, "내가 지금 항복하는 건 아니다"는 인상의 군사문화를 연상한 건 필자만이 아니었을 듯싶다. 당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궤적(軌跡)'을 따라 가보면 자주 '박정희'와 '군사문화'를 만나게 된다. 특히 '윤창중'으로 시작한 인사에서는 곳곳에서 '박정희 냄새'가 난다.

젊은 시절 청와대에서 박정희 씨를 보좌하던 인사, "5·16 쿠데타가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악을 쓰던 교수와 예비역장성, 박정희 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인사의 아들, 박정희 씨가 총애하던 정치인의 아들, 유신헌법을 기초한 인사의 사위 등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휴대폰 고리에 박정희 씨 내외의 사진을 매달고 다니던 예비역 4성 장군은 국방부장관에 내정됐다가 낙마하기도 했다.

'박정희'의 복권을 위해 그녀가 정치를 시작했다는 측근의 '증언'도 이미 나와 있다. 바야흐로 '박정희 문화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리는 그래서 나오는 듯싶다. 다 알다시피 박정희 씨는 이 나라 군사문화의 원조(元祖)다.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나 업무 추진 스타일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도 한 번 내정하면 결정적 흠이 드러나도 결코 되돌리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수불퇴(一手不退)'에 '불통인사'란 말이 따라 다닌다. 첫 번째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 미래창조과학부장관 내정자, 해양수산부장관 인사 때 등 우리가 다 보아왔다.

절대 '지지 않으려는' 그 막무가내 식 면모가 바로 군사문화라고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대통령 본인도 때맞춰 "(내가 미는 것은) 결코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전 국민이 보고 있는 TV화면을 통해 그랬다. 박정희 식 국론통일(國論統一)이 강요되던 군사문화 시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충격적인 '명령형(命令型) 말씀'이었다.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요동을 친다. 군사정권의 잔인한 학살 기억에 몸서리치면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 속으로 끝없이 운다. '광주'는 목숨 걸고 피 흘리며 불의(不義)에 저항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상징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아는' 함성과 역사가 눈 시퍼렇게 뜨고 굽어보고 있는 '사람 냄새나는 동네'다. 최근 그 '광주'를 멱살 움켜쥐고 뽈깡 들었다가 내려놓은 사람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다.

'광주' 5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어이 못 부르게 함으로써 5·18을 패대기쳐 보고자 했던 것 같다고들 말한다. 그의 시도는 성사되지 못했으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는 데는 일정부분 성공한 듯하다. '시도'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급기야 박승춘 보훈처장이 올해 작심을 하고 수천만 원의 예산까지 장만해 '별도의 노래'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광주'는 그리 쉽게 지워질 수 없게 되어있다.

박승춘 그는 누구인가. 육군 중장 출신으로 2011년 2월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되었다. 그해 12월 광복회 워크숍 강연에서 공무원인 그가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로 살게 된 것은 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입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누구를 뽑아야 할지 다들 아시죠"라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눈에 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장차관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새 정권에서도 그의 직책을 그대로 맡도록 유임 발령을 받은 사실상 유일한 인사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김병관 내정자의 '버티기 끝 낙마'로 안보공백을 메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서둘러 유임이 결정되었고, 헌법상 4년 임기가 보장된 감사원장과 임명 된지 3개월 밖에 안 된 국민권익위원장은 '특별한 사정'이 적용돼 유임된 경우다)

그의 '박근혜를 향한 충성'은 일찍부터 눈물겨운 데가 있다. 그는 육군중장 전역 직후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란 반공교육기관을 설립해 퇴역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와 함께 '박정희'와 '군사문화' 홍보에 온몸을 던진다. 그는 특히 '박정희의 유신' 옹호에 지극정성의 공을 들였다. 박근혜 후보의 흉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 밀어 붙였던 것 같다.

'유신반대는 종북이다' '(종북세력은)사회주의 건설 목표를 숨긴 채 반 유신·반 독재 민주화 투쟁을 빙자해 세력 확산을 기도했다' 이런 게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가 예비군·민방위 교육에서 강조한 주된 내용이었다. 보훈처장으로 임명되고 나서는 국발협이 교육범위를 더욱 넓혀갔다. 2011 ~ 2012년 국발협은 2600회의 동원예비군 안보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 지청들이 '적극협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총선을 4개월 앞둔 2011년 말 그의 국가보훈처는 박정희 씨를 미화하고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을 종북활동으로 깎아내리는 동영상 DVD 1000세트를 만들어 마구 뿌려대기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승춘 처장에게 '광주'는 '눈엣가시'로 비쳐졌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군사문화가 빚어낸 불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 비위에 거슬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박승춘 씨에게는 5·18때 공수여단장이었던 안현태 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문제를 놓고, 보훈처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 전력까지 있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2012년 5월 박처장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광주'는 이 나라 현대사에 중대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다. 그 '광주'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고, 그 '상징'을 '손 봄'으로써 '광주'를 다소라도 지워 보려한 게 박승춘 씨다. 우리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사람이고, 때문에 이례적으로 새 정권에서 유일하게 연임 발령을 받은 '박근혜의 사람'이라는 대목에 주목한다.

때문에 우리는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에 반하는 일을 추진했을 리 없고, 대통령의 동의나 묵인 없이 그처럼 '엄청난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라도 '박정희'와 '군사문화'를 뛰어 넘는 게 옳다.

아버지 대통령이 딸 대통령의 도달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보리 고개 극복이나 중화학공업 육성이나 유신독재나 생사람 죽이기가 지금 시대적과제가 될 수 없음도 두 말할 나위없다. '창조경제'와도 너무나 동 떨어진 이야기다. '향수'를 지우기 힘들다면 '박정희'와 '군사문화'는 박물관에 보내는 게 방법이다. '박정희'와 '군사문화'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윤창중 사태와 임을 위한 행진곡 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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