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 설립 허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제주도의 결정이 주민 공론조사 결과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하고, 법 개정 등을 통해 허가 취소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6일 보건의료 단체 연대체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반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병원 허가 취소 운동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을 개정해 영리병원 설립의 법적 근거를 없애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한 것은 지난 10월 4일 숙의형 공론조사위윈회의 '불허' 권고를 뒤집은 반민주적 폭거"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자신이 수용한 민주적 절차를 통한 결정을 뒤집은 원희룡은 지사 자격이 없다"며 "원 지사 퇴진 투쟁에 나서는 제주도민운동본부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연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원 지사는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하는 조건부 허가라며 뭔가 달라진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공론조사에서 이미 도민들이 거부했던 것이고 현행법에도 없는 조항"이라며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국내 병원자본의 우회투자 의혹도 명쾌한 해명이 없다. 무엇이 구린지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는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제주도가 내세운 명분에 따라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서도 영리병원이 개설될 길이 열렸다"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한 역차별 문제제기나 국내 법인의 우회 투자, 영리병원 허용에 대해 국내 성형외과·건강검진병원의 역차별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이미 영리화될 대로 영리화된 국내 의료체계는 영리병원 허가로 더욱 영리화 추구로 내달릴 것"이라 경고했다.
이들은 영리병원 허용의 악영향에 대해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고, 이에 따른 의료 불평등도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그나마 최소한의 규제를 하고 있는 건강보험 체계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주도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보건의료를 '혁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 허가를 막을 수 있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박근혜 정부가 홍준표의 진주의료원 폐원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묵인방조한 것과 같다"고 정부도 비판했다.
이들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선거 공약으로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금지'를 분명히 했다. 이 공약은 깨졌다"며 "지금이라도 이 공약에 조금이나마 진정성이 있다면 앞으로 시민사회와 정의당이 발의할 영리병원 설립금지 법안 발의에 민주당이 같이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앞서 제주도는 전날 녹지국제병원과 관련해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 과로 한정했으며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으므로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하며 "향후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허가 취지 및 목적 위반시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할 방침"이라고 했었다.
제주도는 다만 허가 방침을 밝히는 보도자료에서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고려해 도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원 지사는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려운 결정이지만 불가피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라며 "공론조사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제가 공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얼마든지 사과하는 입장"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원 지사는 그러나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단계에 온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며 허가 결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비영리 병원으로 전환해 보자고 투자자 측에 권유를 여러 차례 했지만 거부했다"며 "(투자자 측은) 자기들은 당연히 제주특별법에 따라 들어왔는데 지금 와서 국내 사정으로 비영리를 강요하면 모든 법적 수단을 다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의 까다로운 승인 조건을 2015년에 이미 받았고(충족시켰고) 거기에 따라서 다 지어졌기 때문에 저희가 불가피한 허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며 "왜냐하면 그 병원 입장에서는 투자도 이미 다 했고, 복지부가 지으라는 대로 다 짓고 인력까지 134명을 다 채용을 해 놨다. 그래서 허가서만 나오면 바로 영업을 시작하는데 원점에서부터 다 뜯어고치라고 하니까 투자자 입장에서는 못 받들이겠다는 것"아라고 투자자 측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보건의료체계 붕괴 우려에 대해서는 "다른 (영리)병원들이 만약 개설되려면 복지부 허가, 지자체 허가를 다 거쳐야 하는데 현재 외국인 투자 병원에 대해서 정부는 영리병원을 추가로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이게 국내 일반 병원에 확산되는 것은 국회에서 의료법을 전부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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