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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사기극'에 "빚 8억, 월 이자 3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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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사기극'에 "빚 8억, 월 이자 300만 원"

[르포] 다시 찾은 서부이촌동 "외지 사람들이 경매장으로 몰려간다"

코레일과 서울시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용산 사업)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내놓았던 3월 20일 서부이촌동을 찾았던 <프레시안>은 사업이 최종 무산된 4월 29일 이곳을 다시 찾았다. <편집자>

광풍이 지나간 서부이촌동의 공기는 쌀쌀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사람들은 "사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기정사실이잖나"라고 힘없이 입을 모았다. 한강변에 있지만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이곳에서 낯선 사람을 보면 으레 "기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는 한 주민은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자리를 피했다. 31조 원짜리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용산 사업)의 '꿈'이 백일몽으로 귀결됐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코레일은 4월 29일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 및 29개 출자사에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의 사업 해제를 공식 통보했다. 지난 3월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가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이자 52억 원을 갚지 못해 디폴트가 발생한 지 50여 일 만이다. 2006년 사업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던 용산 사업은 첫 삽을 뜨지도 못한 채 종지부를 찍게 됐다. 코레일은 후속 조치로 사업 무산 시 받기로 돼 있는 2400억 원의 이행보증금을 서울보증보험에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시와 코레일, 대기업의 '장밋빛 환상'에 동원된 서부이촌동 주민들에게 돌려받을 보증금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사업은 청산될 수 있지만 삶은 청산될 수 없다.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시작됐다.

벼랑 끝 '용산' 다시 보기
"서부이촌동, '용산참사'보다 더 많이 죽을 수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은 어쩌다 사기극으로 전락했나
③ "용산을 10년 안에 개발? 정신 나간 짓이었다"

고통스러운 주민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송이요?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이 '피해 봤으니까 빨리 처리해줄게'라고 해요? 그게 아니잖아요. 3년에서 5년 갑니다. 그러면 뭐하며 버팁니까. 엄청난 고민이에요. 동네가 심각해요. 나도 기초수급자 됐습니다. 신용 조회가 안돼요. 여기, 저 같은 사람 많아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부이촌동에서 만난 상인 박영산 씨(가명)는 연신 "답이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에는 소송을 조직하고 있는 이른바 '동의자 모임'이 돌린 꾸깃꾸깃한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 2007년 통합 개발을 추진하면서 '용산 사업' 지구에 편입시킨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상호 씨(가명)는 "소송할 사람들은 30만 원씩 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동의자 모임 중심으로 소송을 내겠다는 모양인데, 그게 되겠나"라고 말했다.

코레일과 서울시, 출자사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일단 동의자 모임에 속한 일부 주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11개 구역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5월 초 용산 사업 자산관리위탁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과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PFV),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 27일에는 서부이촌동 인근에서 조촐하게 가두 시위도 했다. 박찬종 변호사가 이들과 함께한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소송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분위기는 썰렁하다.

▲ 서부이촌동 풍경. ⓒ프레시안(최형락)

코레일 정창영 사장은 4월 30일 <연합인포맥스>와 한 인터뷰를 통해 "민간 출자사나 서부이촌동 주민이라 해도 소송을 섣불리 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패소자들이 소송 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제 생각에 코레일은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만만한 정 사장의 말처럼 서부이촌동 주민들에게는 행동에 나설 동력이 별로 없다. 소송 비용 부담 문제도 그렇지만, 심적으로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지난 6년간 개발 찬성(개발 동의자 모임)과 개발 반대로 나뉘어 갈등을 빚어왔다.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개발을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제각각이었다. 여기에 상가 소유자, 상가 세입자, 주택 소유자, 아파트 소유자 등의 견해가 모두 달랐다. 2200여 가구별 사적인 사정까지 겹쳐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공통 이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 자체가 의문인 상황이다. 도시 개발 사업의 폭력성은 이 지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통합 개발을 줄곧 반대해온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사업 청산을 환영하고 있다. 대림아파트의 한 주민은 "드림허브가 부도나서 망한 것 아니냐. 이를테면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사람을 상대로 '내가 손해 봤으니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하면 그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소송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리(아파트 주민들) 쪽은 소송을 안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서울시가 이주 대책 기준일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두 번째로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빨리 해제해야 한다"며 "6년간 재산권이 묶인 상황에서, 이 두 가지를 빨리 해주는 게 주민들을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탈출구 없는 주민들…"집값 오른다고 해 빚졌는데, 집이 경매로 넘어가"

주민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빚이다. 이들에게는 탈출구도 없다. 한 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동네의 한 할아버지는 빚이 8억 원이다. 한 달에 이자만 300만 원 낸다. 그분 말고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집 하나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 자식들이 '집값 오르니 담보 잡고 대출 받자'고 꼬드기니, 별 생각 없이 대출 받은 분들 꽤 된다. 기초수급자 조건은 되는데 집이 있다고 해서 (수급자가 되지도 못하고) 어렵게 사는 분들도 많다."

▲ 오세훈 전 서울시장(자료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민들의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 업자는 "모르긴 몰라도 백 건 이상 경매로 넘어갔다. 부동산 매매가 제로인 상태인데, 서부이촌동에서 물건을 찾는 외지 사람들은 전부 경매장으로 몰려가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이 업자는 "가구당 평균 3억-4억 원 이상 빚을 졌다고 하는데, 빚은 개인 사정 아니겠나. 누가 어떻게 알겠느냐. 더 심각한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집을 경매에 내놓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물음에 이 업자는 싱겁다는 듯 "뭘 어떻게 해. 패닉으로 접어들겠죠"라고 답했다.

소송에 참여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는 한 주민은 "그냥 시간을 돌렸으면 좋겠다. 6년 동안 집도 못 고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그냥 앉아서 돈만 까먹고 있었는데, 이제는 말할 힘도 없다"고 심경을 표현했다.

또 다른 주민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주민들의 삶은 서울시가 책임지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오세훈 전 시장이 서부이촌동을 무리하게 편입시켜 이 사단이 났는데, 이런 '사기극'에 대해 서울시가 보상금을 내놓든지, 상인들에게 창업 자금을 지원하든지,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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