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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왜 북한에 '퍼주기'하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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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왜 북한에 '퍼주기'하려 했나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6> 박근혜 정부, 브레이크 고장났나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조치는 한마디로 너무 나간 자충수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후련하게 느낄 사람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긴장을 고조시킨 조치라는데 이의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정부 측 설명은 국민의 신변안전 보호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이야기 같다.

개성공단에 남아있는 근로자들은 인질상태도 아니었다. 응급환자도 그때그때 남쪽으로 이송되고 있는 데다, 공단에 남아있던 근로자들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나, 밥을 굶어야할 정도의 처지도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공단 입주기업들도 사태의 호전을 기다리면서 철수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던 중이었다. "문제해결을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 제의에 대해 '내일(26일) 오전'까지 답변하지 않으면 중대조치를 취하겠다"는 갑작스런 사실상의 '최후통첩'은 이런 판국에서 나왔다.

말이 없던 북측은 그 '내일 오전'이 지나자 "공단 인원들의 생명이 걱정된다면 철수하면 될 것"이라며 "철수할 때 신변안전 보장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는 담화를 내놓았다. '신변안전' 문제를 내세운 우리 측으로서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단에 남아있던 근로자들은 모두 철수한다. 문제는 다음에 둘 수(手)가 없어진 점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퇴로를 차단한 악수를 둔 게 뼈아픈 대목이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는 또 한 번 '너무 나가는' 우(愚)를 범했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 나가는 게' 너무 잦다는 점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곧 죽어도 꿇리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게 북한의 태생적 한계다. 적어도 자존심 덩어리로 보인다. 따라서 무릎 꿇리거나 타도하려해서는 다뤄지지 않는다. "자금줄 말려가면서 북한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대들면 호되게 혼내고, 그 못된 버르장머리 고쳐놔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중국도 있고 러시아도 있다. 중동을 상대로 한 미사일 등의 무기장사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원 귀환이 시작된 27일, 개성 주재 기업들 및 관계 기관 차량들이 마치 전쟁 난민을 연상케 하듯 최대한 많은 짐을 차에 싣고 줄지어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내려오고 있다. ⓒ뉴시스

이른바 친여 보수매체들은 연간 수입 1억 달러나 되는 달러박스이기 때문에도 북한이 개성공단은 절대로 폐쇄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의 매일 노래 불렀다. 북한이 공단 폐쇄 가능성을 발표하자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인질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이 가능하고 검토 중이라고 호언했다. 보수매체들은 한 술 더 떠 아파치 헬기니 공군 전투기니 특수부대를 동원하는 '작전'의 시나리오를 내놓기도 했다.

국가안보실장은 "급하거나 위기라고 해서 섣부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대화의 계기는 북한이 만들어야 한다"고 큰 소리쳤다. 그 닷새 뒤 대통령은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다. 정부조직법을 놓고 여야가 맞서 있을 때도 대통령은 "내가 제시한 방안은 결코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목청을 높인 적이 있다. 조금씩 참았어야 했다. 고장 난 브레이크가 문제인 듯하다. 개성공단에서 고장사태는 피크를 이루는 듯하다.

다 알다시피 개성공단은 단순히 북측의 싼 임금으로 상품을 만들어와 파는 그런 공장지대가 아니다. 군사분계선에서 10㎞ 떨어져 있는 그 공단은 당초 서울을 겨냥한 장사포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던 북측의 병영(兵營)이었다. 100만 평의 부지에 120여 개의 공장이 들어서면서, 북한의 포대들은 그 만큼 북쪽으로 물러서서 자리 잡게 되었다. 개성공단의 당초 계획은 2012년까지 공단부지 800만 평과 1200만 평의 근린시설 용지가 완공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북측의 포진지들은 그만큼 더 북쪽으로 물러섰을 것이다. 우리 안보가 훨씬 더 탄탄해졌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더 굳어졌을 것이다. 남북경제 사정에도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퍼주기 논쟁' 때문에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퍼주기 시비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DJ는 생전에 "지금은 '퍼주기' '퍼주기'하지만, 머지않아 '퍼오기'를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미래의 '퍼오기'가 아니더라도, 이른바 퍼주기는 '평화의 비용'으로 보아도 이익이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보수론자들은 퍼주기 한 돈으로 북한이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도 쏘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MB정권 들어서 전혀 퍼주기 안 했어도 북측은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도 더 개량해 쏘아댔다. 퍼주기 논쟁은 기득권층이 계속해 배타적이익을 누리기 위해, 상대 정치세력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방편으로 악용한 측면이 강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1990년대 초반 중동의 이란·시리아 등 적성 국가들에 둘러싸여 항상 생존방안을 모색해야하는 이스라엘이 동북아시아의 북한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인접 적성 국가들이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을 수입해다 배치함으로서 이스라엘 안보가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온갖 채널을 동원해 은밀히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다.

드디어 1993년 1월 이스라엘 외무차관 에이탄 벤처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두 나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광산개발과 농업분야 기술지원을 위해 1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북한은 이란 등 이스라엘 적성국가에 미사일을 수출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국의 안전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엔테베 작전하듯이 특공대를 북한에 파견해 미사일 제조시설을 파괴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본 듯하다. 말하자면 '평화의 비용'으로 퍼주기를 하겠다는 게 이스라엘의 절박한 판단이었다. '한나라당'이나 '가스통 부대'같은 보수단체가 없어서였는지,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퍼주기 시비가 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북한의 협상은 성사되지 못했다.

협상사실이 미국 측에 '발각'돼 제지됐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군비증강을 위해 '미사일 수출' 등 북한의 위협은 필요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하기위해, 이스라엘-북한의 협상이 성사돼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스라엘이나 미국이나 자국의 국익을 따져 움직였을 것이라는 소리다. 그게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생존법칙이다.

조선조 제14대 임금 선조는 후금(後金)에 이은 청(淸)나라가 '떠오르는 해'였는데도 '지는 해'인 명(明)나라만을 죽어라고 섬겼다. 그렇게 비롯된 괘씸죄 덕분에 두 차례의 호란(胡亂)이 빚어져 수십만 명의 백성이 살해되거나 청나라에 끌려갔다. 필경 제16대 임금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 태종에게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 세 번 무릎 꿇되, 한번 꿇을 때마다 두 손을 땅에 대고, 세 번씩 머리가 땅에 닿게 하는 항복의식)의 치욕적인 예를 올렸다.

오늘날에도 복잡한 국제정세를 헤쳐 가며 국익을 지켜내려면, 어떤 한 나라와만 편향되게 가까이 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런데도 MB는 그렇게 했다. 그는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의 형은 "MB가 뼈 속까지 친미(親美)이고 친일(親日)"이라 말했다. MB는 그러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도외시했다. 균형 감각의 상실이었다.

미국이 명나라처럼 '지는 해'이고 중국이 청나라와 같은 '뜨는 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역 규모도 미국보다 훨씬 크고 지정학적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중국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특히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과 러시아 쪽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옳았다. MB의 남북관계 파탄도 따지고 보면 거기에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지금은 개성공단에서 허둥대는 이유를 원점에서부터 따져봐야 할 때다. 기분 같아서는 '호되게 혼내고, 못된 버르장머리 고쳐놓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은 굴복 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누차 이야기했지만, 타도할 수 없다면 북한은 우리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게 정답이다. 이스라엘에서도 배워야 한다. 그게 국익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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