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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충? 우습게 보다간 큰 코 다친다!

[기고] 러시아 스킨헤드, 일본 넷우익, 그리고 일베

구(舊) 소련 붕괴 이후 나타났던 끔찍한 사회적 흐름 중 하나가 '스킨헤드(skinhead)'의 등장이었다. 이들 '10대' 보수들의 외국인을 상대로 한 무자비한 폭력은 2010년 '한국인 유학생 살해사건'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졌다.(☞러시아 스킨헤드와 당시 사회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페이지 하단 박스 참조)

러시아 스킨헤드처럼 끔찍한 공격행위는 아니지만, 한국 온라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보다 심각한 우려를 낳는 광범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바로 최근 수차례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던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 www.ilbe.com)'이다. '디시 인 사이드'의 부문별 갤러리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이 '일간 베스트' 글이 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추천 글 대부분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관리자들에 의해 삭제를 당하곤 하자, 일부 이용자들이 카페를 따로 개설해 베스트로 올라온 글을 복원했다. 이를 토대로 '일간 베스트 저장소'라는 독립 사이트가 시작된 것. 이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일베는 동 시간 접속자 수가 2만여 명에 이르며, 하루 접속 횟수만 무려 3300만 건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사이버 공간이 됐다.

▲ 4월 23일 자 일간 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캡쳐.

문제는 이 공간의 반동성과 폭력성이다. 일반적으로 일베를 보수 우파들의 해방 공간이라고도 하지만, 실제 그 심각성은 폭력과 범죄적 행위들이 마음 놓고 자행되고 있는 반인간적, 반동적 무법지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공간에 글을 쓰는 수많은 이들을 하나의 특징으로 묶을 수는 없는 것은 사실이고, 문제가 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소수가 벌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추악한 궤변, 또는 본질을 감추려는 기도에 불과하다. '추천'의 반대 버튼이 '민주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피로써 얻고 지켜온 인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성과물인 민주주의가 현재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일베를 논하기 전에 강조해 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서구식 보수 세력이란 적어도 지구상 대부분의 비(非)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니, 사실 서구에서조차 보수 세력이란 끝없는 특권·기득권·탐욕 추구 집단을 의미한다. 단지 서구에서는 보수 세력에 저항해 인민 대중이 피로 이룩해 놓은 제도적 제약으로 그들만의 독점적 이익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물며 오랜 식민지 경험과 독재로부터 벗어난 지 불과 얼마 안 된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 그리고 비중심부 사회 대부분의 보수 세력은 서구지향적 지식인의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 운운하는 순진한 바람과 달리,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모든 종류의 범죄적이며 반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일베'와 같은 공간은 보수의 적나라한 '쌩얼(민낯)'을 거침없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일베 만세를 위해 초등학생을 때리는 행위, 개와 수간하는 내용, 성기 인증, 쇼핑몰 CEO 성희롱 사건, 미스에이 수지 성희롱 사건, 울랄라 세션 고(故) 임윤택 씨의 사망과 그 아내에 대한 악플 등 선정적·폭력적 내용이 아무런 제재 없이 게재되고 있다. 또 보수와는 아무 상관없는 범죄적 수준의 반인간적·반여성적·반민주적·지역차별적·인종주의적 폭력에 대한 글이 이 난무하는 것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들은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를 찬양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로 표현하며, 여성은 3일에 1번은 패야 한다는 '삼일한'과 같은 용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5.18 희생자들의 사진을 가리켜 '홍어 말리는 중'이라는 막말을 올렸고, 자살한 민주통합당 의원의 아들에게 '노무현을 추종하다 자살까지 따라 했다'는 식의 천인공노할 망언을 싣기도 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딸 테러 기도 글, 조선족 여성 강간 계획 글 등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도저히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폭력 범죄 행위, 그것도 아주 반동적인 행위를 태연히 자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이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의 말일 뿐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회과학자들 대부분 이러한 공간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진보적인 지식인조차 이들에 대해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철부지들의 불만을 배설하는 공간일 뿐, 폄하하거나 사회 내 주변화 된 집단의 일시적인 일탈 공간 정도로 간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여론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라고도 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주장은 아직도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다.

일본의 소위 '신(新) 우익'의 영향력 확대는 바로 이런 낙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일본 우익에 대해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 속에 신자유주의적 사회 개조로 인한 불안정 고용과 구조적 청년 실업이 만연하면서 일본 사회 내에서 구(舊) 우익과 구별되는 젊은 우익들이 온라인에서 세를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넷(NET) 우익'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전통적 우익의 주장과는 다른 맥락에서 일본 내 소수 민족화 된 재일교포는 물론, 일본계 브라질인과 중국·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2ch(www.2ch.net)' 등을 비롯한 온라인에서 키웠다. 국가와 자본에 대한 불만은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듯 소수자에게도 향했다. 이들은 소수민족과 이민자의 출신국에 대한 근거 없는 비하와 더불어 애국주의·민족주의적 감정을 키웠으며, 자연스럽게 왜곡된 역사와 맞닿았다. 거짓과 왜곡이 범람했지만, 점차로 이들의 주장은 인터넷 정보에 민감한 어린 학생들에게 진실로 믿게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찌질한 오타쿠'라며 온라인에서 욕구를 배설할 뿐이라고 폄하했지만, 결국 이들은 예상을 깨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보란 듯이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게 됐다. 그 계기는 바로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있으나, 젊은층의 지지를 얻지 못해 세가 약화한 전통적인 '구 우익'과의 결합이었다.

▲ 지난해 3월 10일 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누가 김태희를 쫓아냈는가>에 출연한 사쿠라이 마코토. 그는 "일본에서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배우의 광고 촬영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인이라면 그런 배우를 광고에 기용하는 기업에 불이라도 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쳐

이 같은 결합의 상징적 인물이 바로 '재일교포의 특권을 반대하는 모임(재특회)'을 비롯한 여러 우익 연합 단체를 이끌고 있는 사쿠라이 마코토이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졸업 후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집안에 틀어박히게 된 상황이 '재일교포를 비롯한 외국인들 때문'이라는 온라인에서의 거짓 선동에 휘말렸다. 이후 과격한 우익 논객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그는 아베 총리 등이 소속된 구 우익 조직과 접촉하게 된다. 결국 그는 우익 조직의 연대를 도모하며 이들과 함께 오프라인으로 진출한다. 여기에 한류 확산에 불만을 가진 집단까지 포섭해 이들은 온 라인에서 급속하게 세력을 확산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잠잠했던 일본 시민 사회의 불만이 공론의 장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이들의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불안정한 사회는 불만에 가득 찬 청년을 양산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우익적 선동에 쉽게 매료되면서 우익 집단에 동조했다. 결국 소수민족 상권 및 거주 지역에서 해당 소수민족에 대한 반대 시위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대중 시위를 조직할 정도로 이들의 세력은 크게 성장했다. 러시아 스킨헤드의 폭력적인 공격보다 온라인에서의 광범위한 선동을 바탕으로 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시위가 어떤 면에서는 더 위험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유럽과 미국, 러시아 등에서 일어난 인종주의 집단의 조직화 또는 그들에 의한 조직적 공격은 없다. 또한 일본처럼 온라인 우익 집단이 오프라인의 조직화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구 우익과 신 우익 간의 결합도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베와 같은 온라인 사이트의 등장은 오프라인에서도 오래 전부터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각양각색의 보수적, 극우적 분위기가 확산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로의 개조 속에 우리 사회도 정권에 대한 불만이 여성이나 이주민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민과 여성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볼 때 이런 극우적 흐름의 저변은 이미 크게 확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현상은 과거 보수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하층 계급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비록 오프라인 조직화에 성공한 몇몇 이주민의 반대 카페 활동은 신 우파들 중 인종주의적 측면이 드러난 단체 활동이기는 하지만, 소위 '민주 정권' 아래에서 이주노동자와 여성에 대한 인권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사실은 아주 쉽게 여타의 보수적 의제와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일베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공신 중 하나로 꼽았듯, 낡은 반공주의와 왜곡된 민족주의, 애국주의, 가부장제적 이념으로 젊은 층에서 외면 받은 구 우파 정치 세력이 이들 젊은 극우 집단의 등장을 내심 환영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 유지라는 자본의 입장을 대변해 (그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지만) 다문화 정책을 앞 다투어 홍보했던 구 보수 우파와 달리, 신 우파는 이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인종주의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양성평등·(사회)경제 민주화·복지 국가 등에 대한 반대에 있어서 서로 방향이 일치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수위만 조절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일베와 같은 집단의 구성원은 '찌질한 집단', '주변화 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수는 젊은 층이고 주변화 된 집단일 수 있으나, 여느 보수 반동 우파들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이용자들은 스스로 SKY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증명한 사례도 있으며, 의사· 교수·변호사 등 자신의 직업 인증까지 벌인 적이 있다. 최근 낸시 랭의 BBC 인터뷰를 좌절시키기 위해, 그리고 '보스턴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강요하기 위해 그 내용을 영어로 타전한 작자들이 넘쳐 났다. 러시아의 스킨헤드 조직의 이념 확산에서 보듯 이런 미래의 지배 집단이 사회 전 영역에 있어 보수 반동화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세련된 보수 반동화 선동이 아직 가치관·세계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린 청소년을 세뇌해 거짓 확신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심각한 보수화를 겪고 있다. 보수 일색의 언론 지형으로 인해 여전히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믿는 국민들도 상당수이고, 국민연금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의 서명 역시 10만 여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의 억지로 법안 상정이 좌절되기도 했다. 이같은 왜곡된 여론 형성의 주요 근거지가 일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베는 이미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소수의 공간'이 아니다.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지지하면서도 여성을 극도로 혐오하고, '종북'과 '동성애'를 연결시키는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조합이 얼마든지 이루어지는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무상의료·무상교육 등의 정책을 지지하는 우리네 '좌파'보다 더 좌파적인 서구의 보수 세력은 겉으로는 문명사회에서 허용한 수위를 넘는 인종주의적·반여성적·반인권적 폭력에 반대하며, 이런 범죄적 행위에 대해 보수 정권일지라도 단호하게 처벌하고 있다. 올림픽 당시 일베의 표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인종주의적 표현만으로도 스위스 축구 선수와 그리스 육상 선수가 자국 국가대표를 박탈당한 일이 있다. 이제 우리도 국제적 기준에 맞는 법을 제정해 보수라는 탈을 쓰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범죄행위에 철퇴를 가해야 할 때다. 또한 이러한 범법 행위를 자신들의 특권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보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주고, 사실상 지지·후원·연대하고 있는 보수 세력의 결합 기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 스킨헤드, '일베'의 미래?

소련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식에 의한 급격한 체제 전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경제 상황 악화와 보편주의적 국가 주도의 사회 복지 시스템 붕괴는 실업과 빈곤이 만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졌다. 급격한 체제전환이 가져온 극단적인 사회양극화 현상 속에서 1990년대 내내 자살, 범죄, 질병, 고아, 노숙자, 유아사망률 급증 등 거의 모든 지표상에서 전시 수준을 넘는 끔찍한 현상이 이어졌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사회 하층 계급과 그 자녀를 중심으로 소수민족과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 재벌들이 유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시아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움직임은 점차 외모상 확연히 구별되는 러시아 내 여타 소수민족이나 구(舊)소련 타 공화국 출신들, 그리고 중국인 같은 아시아계나 아프리카계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과 그에 기반을 둔 물리적 공격으로 이어졌다.

▲ 러시아 스킨헤드 ⓒwww.stormfront.org

소련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식에 의한 급격한 체제 전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경제 상황 악화와 보편주의적 국가 주도의 사회 복지 시스템 붕괴는 실업과 빈곤이 만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졌다. 급격한 체제전환이 가져온 극단적인 사회양극화 현상 속에서 1990년대 내내 자살, 범죄, 질병, 고아, 노숙자, 유아사망률 급증 등 거의 모든 지표상에서 전시 수준을 넘는 끔찍한 현상이 이어졌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사회 하층 계급과 그 자녀를 중심으로 소수민족과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 재벌들이 유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시아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움직임은 점차 외모상 확연히 구별되는 러시아 내 여타 소수민족이나 구(舊)소련 타 공화국 출신들, 그리고 중국인 같은 아시아계나 아프리카계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과 그에 기반을 둔 물리적 공격으로 이어졌다.

'러시아 스킨헤드'로 상징되는 러시아의 외국인 혐오증은 한국인 사망사건으로까지 발생,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졌다. 그러나 빡빡 깎은 머리에 검은 옷과 군화를 착용한 특정 스킨헤드 그룹이 10대 조직원이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 자신들의 조상들이 2차 대전 때 독일의 나치에 의해 대규모 학살을 당했는데도 철없이 독일의 철 십자가를 들고 히틀러를 찬양하며, 히틀러 생일에 외국인들을 공격한다는 식의 선정적 보도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된다. 실제로 히틀러나 나치를 찬양하는 집단보다는 러시아와 슬라브 민족의 순수성을 찬양하는 인종주의 집단이 훨씬 더 많다. 뿐만 아니라, 이런 조직들의 이데올로기와 조직자들은 10대가 아니라 성인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외국인 혐오 범죄는 특정 조직의 조직원들만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매우 놀랍게도 스킨헤드 조직의 과격한 방식에 대해서만 이견(異見)을 보일 뿐, 상당수의 러시아인은 스킨헤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었던 다수의 민중은 스킨헤드의 조직원이 아니더라도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선동에 빠져있다.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기득권을 확장하려는 지배 엘리트는 민중의 불만이 왜곡되어 분출하는 것을 굳이 막으려 하지 않았다. 동시에 소수민족이 장악하고 있던 상권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는 오히려 이 같은 사실을 방조했다. 심지어 정치권력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데도 말이다. 결국 애국주의,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사회전반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으면서 대중은 당시 불거지고 있던 서구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비판의식을 마비시켜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지지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인종주의적 공격과 살해와 같은 끔찍한 상황을 방치 혹은 방조하던 러시아 정부를 향해 질타가 시작됐다. 러시아는 뒤늦게나마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을 여러 방송국 채널에서 열띠게 진행했다. 대부분의 논자들은 황당하게도 이들 스킨헤드 구성원 대부분이 10대인 점을 들어 이 문제는 파시즘이나 인종주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과 같은 경제적 문제로 봤다. 따라서 청소년 문제이며, 어느 사회에서나 있는 청소년들의 일탈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논자는 급격한 개방으로 서구의 자유분방한 문화가 유일돼 마약과 섹스, 폭력이 확산됐다며 전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치부했다. 따라서 소수민족뿐 아니라 러시아인도 당하고 있는 문제이며, 인종주의적인 범죄는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어느 경우든 설사 인종주의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이는 '인종주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문제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이런 인종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무고한 소수민족과 외국인들이 공격당하고, 살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의 범죄행위가 아니라, 집단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내 동조 세력 또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본질적 측면이 쉽게 간과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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