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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야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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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야만 하는 이유

[이충렬 칼럼] '김정은·트럼프, 평양의 빅딜을 기대한다'

1. 부시행정부(2000년-2008년)의 교훈

기적과 같은 2018년이 저물고 있다. 전쟁 직전의 폭발적인 위기감에서 이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의 제도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꿈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6월 12일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더 이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외교의 프로토콜에서 북한의 미스도 있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볼 때, 미국의 융통성 없는 협상 방식이 결정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인이라기보다도, 미국 주류라는 외교 기득권 세력의 광범위한 저항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 시절의 대북 협상 실태를 되새김질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라인이 부시 행정부와 같은 인맥일 뿐 아니라 성향 상으로 보면 조금 더 강경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2000년 - 2008년)의 대북정책은 일관된 철학과 방침 없이 표류한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 할 수 있다.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는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의 한반도가 딱 그런 재앙을 맞은 셈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포진했던 네오콘은 한반도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면서 북한에 대한 혐오감에 충만하여, 북한을 완전항복시키겠다는 불가능한 시나리오에 집착했다.

그들은 국무성과 CIA에서 오랫동안 한반도를 관찰해온 베테랑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왕따'시키기에 바빴다. 북한에 대한 대화와 협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힘으로 고립시키면 북한체제도 무너지고, 북핵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도식으로 대처했다.

명목상의 협상 대표는 국무성의 크리스토퍼 힐이었지만, 협상단에는 부통령실, 국가안보회의, 국방부, 정보부 등의 각 파트에서 나온 (북한과 협상하기보다 힐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적대적인 요원으로 가득찼다. 협상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힐이 어렵사리 마련해온 합의안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워싱턴에서 번복되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힐에게 북한과 양자회담을 하지 말 것과 식사 시 서로 건배해서는 안된다는 훈령까지 지침으로 내려졌다.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의 외교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해준 보고서가 CNN의 아시아특파원 출신인 마이크 치노이가 쓴 <북핵롤러코스트>다. 미국과 북한의 20년 외교사를 다룬 600여 쪽의 이 대작은 2008년 출판되어 2010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2. 트럼프 대통령이 열어준 '기회의 문'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을 때, 부시의 공화당 정부를 기억했던 사람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반전이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진의 회의와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과의 대화 노선을 결단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악의 축' 또는 '불량국가'라 불렀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받아들였다.

미국이 변한 것인가? 아니다. 미국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동북아는 전쟁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논하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룬 것이다.

근대 역사 150년을 통해 볼 때, 미국은 한반도에 무관심했다. 아니 오히려 일본을 얻기 위해 한반도를 협상 칩으로 사용하곤 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한반도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대중국 전략의 하위 개념으로 한반도를 이해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더디고, 변화를 좌절시키려는 세력은 남한에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불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 입지는 튼튼하지 못하다. 그의 정책과 리더십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미국 내에서 힘을 키워가고 있다. 한반도 정책도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의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 지지자들조차 트럼프가 미워 그의 한반도 정책을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의 정책에서 발을 빼지 않도록 잘 조율하는 것이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정치적 운명을 건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성과를 낼 것인가? 아니면 판이 깨질 것인가?

3. 북한이 억울할 수 있다.

현재 협상의 쟁점은 북한의 '동시이행' 요구와 미국의 '선-비핵화 후-제재 해제'로 좁혀진다.

북한은 선제적으로 핵시설과 미사일 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

그런데 미국은 비핵화의 결정적 조치를 요구한다. 예컨대, 핵시설과 핵무기 리스트, 또는 ICBM의 일부 해체 등 가시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항변한다. 그 리스트를 내놓으면, 사실상 정밀타격의 좌표를 제공하는 셈이 되는 것 아니냐... 무엇을 믿고 그것을 지금 단계에서 내놓을 수 있느냐?

지금 북한이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를 미국에 제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외교에서는 상대의 체면과 위신을 지켜주어야 한다.

지금 미국의 요구는 북한이 수용하기 어렵다. 이것을 어떻게 중재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제재해제)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지금 북한과 미국은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상호불신이 있어 누구도 먼저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신뢰의 기초가 될 진정성은 서로 확인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불용'을 부르짖으면서도 한반도에서의 '전쟁불가방침'을 천명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통한 경제건설노선'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인정했다.

마이크 치노이 기자의 <북핵롤러코스트>는 북한 지도부도 숙독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북한 지도층은 '아 그때 미국의 내부상황이 이랬었구나'하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천재일우의 협상 파트너를 북한은 잃어서는 안된다.

4. 남한이 미국안보의 인계철선이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남한에 주둔한 미국은 대한민국 안보의 '인계철선(TRIP WIRE)으로 불렸다. 동두천에 주둔한 미 제2사단은 전쟁발발 시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어있어, 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냉전 시기, 미군의 존재는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막는 완충판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북한이 고립되면서 워싱턴은 북한을 진지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한 무지와 무시의 댓가가 오늘의 북핵문제의 진정한 원인이었다.

워싱턴은 북핵으로 미국이 테러와 핵공격에 노출된다고 불안해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지난 70년동안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해왔다. 그런데 국민의 70-80%가 화해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종전과 항구적인 평화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고 있다.

흔히들 히틀러의 유럽점령야욕을 허용한 쳄벌린 영국수상의 사례를 북한사례에 인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과연 북한이 히틀러의 독일제국과 같은 위상인가? 한반도 주위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4대국이 둘러싸고 있는데, 북한이 동북아 패권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가? 북한은 자신의 안전보장을 요구할 따름이다.

북한과 미국의 '죄수의 딜레마'를 깰 수 있는 역할은 남한이 부득이 맡을 수밖에 없다. 냉전 시기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도왔듯이, 이제 북한의 위협을 해소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이 미국안보의 인계철선이 되겠다는 역할을 자청하자. 한국이 담보국이 되는 것이다.

5. 김정은·트럼프, 평양회담에서 빅딜을!

김정은 위원장은 착잡할 것이다. 이 교착상태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남한에 대한 조속한 답방도 협상의 모멘텀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경호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한을 방문한다면, 남한 국민 사이에 결정적 신뢰를 쌓게 될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고려 지점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를 건너뛰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과 위신을 손상하지 않고, 빅딜을 끌어낼 방법은 없을까?

12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내년 초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으며, 2-3군데의 장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언젠가 김정은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2차 북미정상회담은 평양에서 갖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체면 손상 없이 큰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평양 가서 종전선언을 했는데, 다시 북한을 적대국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미국은 한국이라는 동맹국을 잃게 될 것이다.

평양에서의 극적 타협점을 기반으로 다시 김정은 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의 적대관계는 완전히 청산될 것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래 한반도 정세가 가장 긴박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 민족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세계 패권국을 견인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없었던 찬스다. 한반도를 둘러싼 장기판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움직이자. 북한과 남한 지도부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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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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