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군축행동의 날'은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세계 군사비 현황을 발표하는 4월 15일에 맞추어 진행된 이날의 평화행동이 여느 해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이 맞고 있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시민사회-국회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높아져가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공동성명은 "북한의 즉각적인 핵무장 중단"을 촉구하고, "그 누구의 것이든 핵무기를 탑재한 무기들이 우리의 영토, 영해, 영공에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조성된 고도의 긴장상태 속에서, 난데없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제기되고 있다. 1991년 11월 "이 시간 이후 우리나라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발표와, 같은 해 12월 31일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합의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철수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선두에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있다. 정몽준 의원에게는 '전 대표'라는 호칭이 항상 따라붙는다. 정 의원은 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전 대표였다. 고로 본인의 의사 여부와 무관하게 그의 주장에는 힘이 실린다. 일부 언론이 박자를 맞추고, 새누리당 안에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심재철, 원유철 의원은 약속이나 한 듯 정몽준 전 대표가 주장한 '제한적 핵무장론'까지 들고 나온다.
▲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최근 정 의원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 제한적 핵무장론도 2년 전의 패턴을 그대로 닮았다. 지난 2월 19일 아산정책연구원이 개최한 '아산핵포럼 2013' 개회사에서 정 의원은 2년 전과 같은 주장을 한다. 정 의원은 4월 9일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워싱턴에서 주최한 '2013 국제 핵 정책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핵무장한 불량국가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당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전술핵재배치는 물론 NPT를 탈퇴하고 제한적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 제목은 '한반도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것 생각하기'(Thinking the Unthinkable on the Korean Peninsula)였다고 한다. 연설 한 달 전인 3월 8일에 있었던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가 정몽준 의원에게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을 생각하게(Thinking)했던 것일까.
정몽준 의원은 4월 14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북핵 해결할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민의 3분의 2가 전술핵이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습관적으로 핵 보유나 핵무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썼다. 정몽준 의원이 말한 '국민의 3분의 2'가 어떤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나머지 '3분의 1'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정몽준 의원이 기고한 글의 제목에는 100% 동의하지만, 내용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이 글에서 '전술핵 재배치'론의 허구성이나 무모함을 구구하게 재론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보다도 미국 정세에 밝다할 수 있는 정몽준 의원이 현 오바마 행정부의 '핵 없는 세계'라는 외교정책의 모토를 모를 리가 없다. 전 세계에 배치되어 있는 전술핵의 전향적 감축,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수단으로 전술핵보다는 전략핵을 활용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워싱턴 정가의 상식이 아니던가(물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잠복한 매파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철수된 전술핵무기가 한반도에 재배치될 경우 발생할 중국에 대한 자극이나, 북한이 적대적 핵무장 강화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 등은 생각해보지 않았단 말인가. 혹시라도 '공포의 균형'을 통해 대북 핵 억지력을 위한 목표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무기라고 하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격용'이지 '방어용'은 없다는 사실과, 전술핵무기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이를 간파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요컨대 핵 '억지력'의 논리는 완전히 비논리적이다. (중략) 철통같은 핵 격납고와 지하 방공호가 여기저기 늘어가기만 하는데, 이것은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방위능력이 탁월하다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무기로 우리 편을 공격하도록 자극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머튼의 평화론> 토마스 머튼, 조효제 옮김, 분도출판사. 69쪽.)
정몽준 의원은 지난 2월 19일에 한 '아산핵포럼 2013' 개회사에서 '개구리와 전갈'의 우화를 인용하며 전술핵 재배치론과 핵무장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정 의원이 인용한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시내를 건너가려던 전갈이 있었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는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기를 업어서 시내를 건너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에게 "너를 등에 업고 가면 날 찔러 죽일 거잖아"라며 거절했습니다. 전갈은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네가 죽으면 나도 빠져 죽는데"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믿은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운 채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내 중간에 이르렀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찔러 죽였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 개구리가 소리쳤습니다. "왜 그랬어? 우리 둘 다 죽게 됐잖아!"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그게 내 본능이야."
개구리가 남한이고 전갈이 북한이라면, 정몽준식 우화 인용법에 따른다면, 개구리와 전갈은 영원히 함께 강을 건널 수 없다. 전갈의 '본능'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라는데 어찌하겠는가. 허나, 같은 우화를 어린이집을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너는 법"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아마도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시내를 건너가려던 전갈이 있었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는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기를 업어서 시내를 건너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시내를 건널 때 전갈이 등을 찔러 죽일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꾀를 내어 전갈에게 잠자는 약을 먹인 다음 전갈의 꼬리에 있는 독침을 나뭇가지로 묶어 전갈이 등을 찌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개구리들을 불러모아 전갈의 날카로운 집게발 두개도 꽁꽁 묶었지요. 개구리는 잠이든 전갈을 등에 태운 채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중간에 이르렀을 때 잠이 깬 전갈은 개구리가 자신을 떨어뜨릴까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시내를 건넜지요. 개구리 덕분에 무사히 시내를 건넌 전갈은 개구리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개구리와 사이좋게 살았다고 합니다.
정몽준 의원이 쓴 글의 제목처럼 북핵을 해결할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본성만을 탓하면 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너는 것은 영원히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일이다. 이 땅에서 우리들 세대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개구리와 전갈이 함께 강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한다. 남과 북은 이미 작은 시내를 함께 건넌 적이 있다. 20여 년 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두 차례의 남북 정상의 만남에서 이루어졌던 '신뢰'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담겨야 할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화사한 봄날 피어난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라. '핵무기', 그건 영원히 생각해서는 안 될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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