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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산업, 정부 지원은 늦고 대기업들은 '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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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산업, 정부 지원은 늦고 대기업들은 '군침'

[막걸리 열풍과 남겨진 과제②] "산업 발전 아닌 농가 진흥책으로 접근해야"

'막걸리 열풍'을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이 다방면으로 나오고 있다. 막걸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진입 여부를 저울질하는 주류업체들이 나오고, 정부 역시 국세청과 농식품부 주도로 적극적인 육성책을 모색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막걸리 소비량의 90% 이상이 국내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명품화·차별화를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

이러한 방법이 장기적으로 막걸리 상품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지역 영세 제조사들이 밀려나고 대기업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지역마다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특산품을 양성한다는 취지와도 배치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육성책 역시 관련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어 실질적인 지원책이 바로 나오기도 어렵다.

일각에서는 막걸리를 산업의 차원이 아닌 농촌 경제 활성화의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질러 폭락하고 있는 쌀 문제를 해결하는데 막걸리만 한 게 없다는 것이다. 술만큼 곡류를 원료로 한 제품 중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 없다는 것도 이유다.

막걸리 지원책은 쏟아지지만 예산 확보 여부도 모호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막걸리 세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막걸리 제조사에 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영세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원산지표시 의무화 등 품질관리를 체계화하고 지역특산주 지정 등을 통해 영세업체들의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낙연 농림수산식품위원장과 정장선 지식경제위원장의 공동 주최로 '막걸리 세계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프레시안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원구원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은 "막걸리 제조사 가운데 전통주에 포함된 업체는 7개뿐"이라며 "지역원료를 50%만 사용해도 되는 지역특산주의 개념을 확대해 막걸리를 전통주산업 육성정책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본부장은 또 "영세한 막걸리 업체들의 주된 애로사항은 원료의 안정적인 조달에 있다"며 "지역특산원료 확보를 위한 계약재배 및 수매지원을 확대하고 원산지 표시 의무화와 품질인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학교 한경대 교수는 "막걸리가 안정적으로 산업화되는 기반을 갖추고 세계인의 주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통주에 대한 무관심, 지나친 규제, 싸구려 술이란 기존의 관념을 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정부가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막걸리산업 지원을 위한 육성전략이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문규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은 이에 대해 "소비자가 품질 좋은 술을 신뢰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주종별 품질규격을 세분화·전문화한 후 품질인증제를 단계적으로 확대 추진하겠다"며 "소규모 제조업체의 생산시설을 HACCP(식품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 수준으로 현대화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조속히 시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막걸리 산업 육성에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후에나 가능하다.

현재 내년 예산안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 두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이 통과돼도 내년 7월에나 본격적인 지원책이 이뤄질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관련법이 통과되기 이전까지는 사실상 지원 방안이 없다"며 "막걸리 열풍 등을 고려할 때 지원에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별다른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전통주를 연구하는 한 교수도 "품질관리 체계 구축 등을 위해 조사기관 등이 하루빨리 지정되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농식품부에서는 관련법이 통과돼 예산이 나와야 시작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시기를 놓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 잇단 진출 타진…대규모 유통망으로 밀어붙이기 우려

오히려 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업계다. 국순당은 지난 5월 출시된 '국순당 생막걸리'가 3개월여 만에 100만 병 이상 팔리면서 올해 3분기에만 16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국순당의 주가 역시 연초 3000원대에서 12월 현재 3배 이상 뛴 90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전통적인 전통주 제조사들이 막걸리 붐을 타고 올해 매출이 크게 반등하자 다른 주류회사들도 막걸리 시장 인출을 잇달아 타진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그룹은 지난 10일 전통주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들은 전통주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드는 데 대한 비난 여론을 우려해 일본에 막걸리를 수출하는 사업에 국한하겠다고 밝혔다. 제조 방식은 역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통해 이루어질 계획이다.

CJ제일제당 역시 막걸리 시장 진출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전체 전통주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국순당·배상면주가·롯데주류BG에 대기업들이 가세하면서 영세 제조업체들은 더욱 구석으로 몰릴 우려가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가진 장점은 물량 공세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규모로 갖추고 있는 유통망"이라며 "현재도 영세 업체들이 개발한 막걸리를 백화점 등에 납품하려 하면 유력업체들이 방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잘 팔린다는 막걸리 제품을 보면 수입 밀가루나 쌀로 만든 저가 제품이 대부분"이라며 "대기업들로서는 막걸리 판매 자체에 대한 이익보다 주식 등의 기업가치 상승을 노리고 뛰어드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17일 토론회에서도 이학교 교수는 "올해 막걸리 제조사 중 최대 수혜를 보고 있는 업체는 저가의 가공용 외국산 쌀 원료 기반으로 저비용 유통망을 통해 전국으로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며 "지금껏 다양성을 유지해오고 있으며 문화적 상품으로서 지역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영세한 소규모 주조장은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막걸리 열품을 틈타 대기업들이 잇달아 시장 진출을 선포하고 정부에서도 지원책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지만 영세 제조사들에게 실질적인 육성책이 될 수 있을 지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프레시안

"막걸리 제조사 지원은 산업 진흥이 아닌 농촌 진흥책 되어야"

이 때문에 막걸리 산업을 고급화·차별화를 통해 몸집을 불리는 차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지역 농업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장기철 막걸리바 친친 대표는 "최근 일부 제품에서 유통 기간을 늘리는 기술이 도입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막걸리는 10일 이내의 유통 기간을 가져서 지역 내에서나 물량이 도는 방식"이라며 "유통 네트워크나 마케팅 보드의 역할을 국가가 해줄 수 있다 해도 장기적인 차원의 비전일 뿐 현실적인 육성책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산업 논리로 봐도 주세를 걷을 수 있는 대상은 일부 대기업일 뿐 나머지 업체에 대한 지원은 농가 진흥책에 가깝다"며 "막걸리의 원료를 수입쌀에서 국내 쌀로 대체하자는 주장은 품질 개선뿐 아니라 남아도는 쌀을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사용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역의 영세 제조사들일수록 수입원료 사용 비중이 높고 질도 낮아서 대기업들의 연구개발을 따라갈 수 없다"며 "프랑스 와인의 성공 뒤에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발효 기술 연구가 있었듯 우리도 국세청 연구소나 효모와 곰팡이를 연구하는 여러 연구소 등에서 기술을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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