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인권이 걸린 문제이고 어떤 면에서 심각한 사회 부조리의 단면이 드러난 일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온데간데없다. 건설업자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같은 본질보다는 성 스캔들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 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낯익은 문구가 떠오른다.
▲ 사회 고위층 성 접대가 이뤄졌다고 지목된 강원도의 한 별장 ⓒ연합뉴스 |
도 넘은 언론 보도, 알면서도 보는 대중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등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박시후 씨가 A씨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건 지난 2월 15일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의 동시에 박 씨의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기소 후 법정 다툼 과정에서 실명이 드러나는 경우는 있지만,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특정인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 후 언론은 박 씨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거짓말 탐지기 보도 논란까지 생겼다. 한 언론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나온 것처럼 제목을 달고 본문에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 '낚시'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많은 언론이 '성폭행'과 '임신', '약물 투약설'과 같은 단어에 집착했다. 그 과정에서 박 씨는 만신창이가 됐다.
박 씨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집중 소비되던 시점과 맞물려, 그간 풍문으로 떠돌던 '사회 고위층 성 접대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18일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힌 후, <조선일보>는 21일자 지면에 김학의 법무부 차관 연루설을 실명 보도했다. <SBS>는 그날 저녁 '8시 뉴스'에 반라의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래픽을 내보냈다.
하이라이트는 그다음 날(3월 22일 금요일) 밤이었다. <중앙일보>가 대주주인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JTBC> '9시 뉴스'에서 한 남성이 회색빛 줄무늬 팬티를 벗어 내렸다. 세상을 달군 '강원도 별장 성 접대 논란'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였다. '별장 성 접대 낯 뜨거운 동영상 2분, 뭐가 담겼기에'라는 꼭지의 뉴스 속 주인공은 재연 배우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조선일보>의 실명 보도로 사표를 냈지만, 언론은 이렇게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성 접대', '동영상', '환각 파티', '난교' 등의 키워드는 포털과 신문지상을 덮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성 접대 의혹' 별장을 찾아 확인되지 않은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인권운동가 고은태 씨의 경우도 주목을 받았다. 한 여성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성희롱 논란이 일었다. 본인이 직접 사과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고 씨가 피해 여성에게 사용한 자극적 단어들의 의미가 부각되거나 고 씨의 특정 정치 성향이 강조됐다. 그의 행동이 왜 부적절한지에 대한 논쟁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성희롱을 했는지가 주요 관심 사안이었다.
온 나라가 '야설'을 강요당하던 차에, 언론은 틈틈히 "도 넘은 '선정성·폭로' 경쟁(<KBS> 보도)"이라는 자체 비판 꼭지들을 내놓으면서 '면피'를 시도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중앙일보>는 1일자에 "선정성에 사회 매몰된 2주"를 주제로 분석 기사를 냈다. 계열사인 <JTBC>는 선정적인 보도를 내보내고, 모회사인 <중앙일보>는 사회적 '관음증'을 비판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언론은 "대중의 선전성"을 비판하고 대중은 "언론의 부추김"을 비판한다. 이쯤 되면 대중의 '알 권리' 논쟁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억압된 대중의 심리가 발현된다는 분석이나, 전 세계적으로 성추문은 언론의 단골 소재라는 '선진국형' 분석도 눈에 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들처럼 행동하고자 하는 일반 대중의 욕망이 반영됐다'는 이론도 소개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최근에 연이어 터진 사안들의 본질일까?
평범한 사건 사고도 성(性)적인 요소가 가미되면 단박에 '대형 스캔들'이 된다. 이 간단한 공식을 언론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알 권리', '모를 권리' 논쟁도 익숙하다. 분석은 자유이나 실체 없는 '놀음'은 이제 그만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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