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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년도 안됐는데..'사실적시 명예훼손' 부메랑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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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년도 안됐는데..'사실적시 명예훼손' 부메랑 속출

미투 참여자들도 하나둘 피소.."유교사상 기반한 법..개정해야"

한 달 남짓 남은 2018년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로 촉발된 '미투(#metoo·나도 겪었다)' 운동이 대표적인 이슈로 꼽힌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성폭력·성차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직장 등 조직 내에 숨어있던 '갑질' 문화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되레 폭로자가 처벌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운동 초기부터 제기됐다.

실제로 미투 운동이 만 1년을 맞기도 전에 최근 들어 미투 참여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를 당하는 사례가 하나둘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폭로 내용이 사실이어도 수사기관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면 폭로자가 처벌을 당할 수 있다"면서 "현행법의 맹점 때문에 미투 운동과 같은 공익적 목적의 폭로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엔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인 2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4월 유명 콘텐츠 제작업체 '셀레브' 내의 상습적인 갑질과 성폭력을 폭로했던 김 모(31)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김씨는 올해 4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셀레브 대표 임 모 씨의 갑질·성폭력을 폭로했다.

김씨의 폭로는 "임씨가 직원들에게 일상적으로 욕설·폭언·고성을 퍼부었고, 회식에서는 기본 소주 3병을 마시도록 강권했으며, 2차·3차로는 남녀 직원을 모두 룸살롱에 데려가 여직원까지 여성 접대부를 선택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임씨는 폭로 이튿날 "회식을 강요하고 욕설·고성으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게 사실이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고, 다음날에는 셀레브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그러나 임씨는 한달여 뒤인 6월 초에 김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임씨는 고소장에서 김씨가 SNS와 언론을 통해 폭로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자신의 사과문 내용을 뒤집었다. 그는 김씨에게 5천만원을 배상하라는 명예훼손 민사소송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수사하는 송파경찰서는 김씨를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지만, 참고인 진술에 따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김씨와 임씨 주장이 극명히 갈리고 있다"면서도 "김씨가 폭로한 내용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임씨 명예가 훼손됐다고 판단되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초 촉발됐던 미투 운동이 다소 잠잠해진 이후에 성폭력·갑질 폭로 지목을 받았던 이들이 되레 폭로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올해 2월 언론계 미투에 앞장섰던 전직 기자 변 모 씨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했던 한 언론사의 부장급 기자로부터 최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올해 3월 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저술가 은하선 씨도 이달 초 같은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들은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지만, 경찰 수사에서 과거 성폭력이 사실로 판단되더라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여성계에서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수사를 받는 자체가 2차 피해"라는 지적도 한다.

법학계에서는 현행법과 기존 판례에서도 공공의 이익이 있는 폭로의 경우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는 점 등을 고려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진국 중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독일·일본·프랑스 등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들은 매우 엄격한 조건을 적용해 공익 목적 폭로자를 보호한다. 유엔도 '진실 방어'를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김현수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례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이유는 유교 사상으로 인해 문화적으로 '명예'라는 것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투 운동 등 폭로가 있을 때 이 조항으로 인해 가해자는 도덕적 책임만 지고 실제 처벌은 폭로자가 받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무도 폭로를 하지 않게 된다"면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은 폐지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갑질 폭로 사건이 불거졌을 때 상황을 목격했거나 함께 근무했던 주변인들이 참고인 조사에서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폭로자의 형사처벌 수준이 달라진다고 제언한다.

신진희 성폭력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는 "사법부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유죄로 볼지언정 벌금형이나 기소유예·선고유예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참고인들이 진술을 꺼릴수록 폭로자는 폭로 내용이 사실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커져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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