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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늘려 학교 폭력 예방? "은밀한 곳 데려가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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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늘려 학교 폭력 예방? "은밀한 곳 데려가면 그만"

학교 CCTV 확대 정책 논란…"엄벌주의 정책 실효성 없다" 비판도

경북 경산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1학년 최 모 군이 남긴 유서에는 "주로 CCTV 없는 곳이나 사각지대, 있다고 해도 화질이 안 좋아 판별하기 어려운 데서 맞습니다…내가 당한 것은 물리적 폭력, 조금이지만 금품 갈취, 언어 폭력 등등. 학교 폭력을 없애려고 하면 CCTV를 더 좋은 걸로 설치하거나…"라는 대목이 있다.

이 같은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마자 학교의 CCTV(폐쇄 회로 텔레비전) 설치 실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사건이 알려진 지 3일 만인 14일 긴급 차관회의를 열고 CCTV 확대 방침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15일 서울 종로구 명신초등학교를 방문해 CCTV 설치 현황을 확인하고, 확대 방침을 재확인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창의 교육'이 학교 폭력 근절의 근본 대책이라고 강조했지만, 관가에서는 CCTV 화질 및 설치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전국 학교 98%에 설치됐다는 CCTV…정부 "더 늘리고 화소 높이겠다"

'창의 교육'을 내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학교 폭력 및 학생 위험 제로 환경 조성' 분야가 있다. CCTV 설치 확대 및 배움터 안전 지킴이 제도를 운영하고, 학교 폭력 전문 상담, 치료 인력 확충 등의 방안이 포함돼 있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4대악 척결' 대상 중 하나가 학교 폭력이었다는 것도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 또렷하다.

정부는 14일 내놓은 종합 대책을 통해 "최근 CCTV 설치·운영, 외부인 출입 관리 등 단위 학교의 학생 안전 역량의 중요성이 증가됨에 따라 3월말까지 학교 안전 실태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실태 조사 결과를 분석해 학교 내 주요 진입 동선, 주요 우범 지역 등을 중심으로 고화질 CCTV를 확대 설치하고, 취약 지역 학교를 중심으로 지자체 CCTV 통합 관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현재 CCTV 설치 학교 비율 98%를 2015년까지 "98% 이상"으로 확대하고, 현재 77%인 40만 화소 이상 CCTV 설치 현황과 관련해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100만 화소 이상의 고화질 CCTV를 추가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체 학교의 32%에 불과한 경비실을 2015년에 86%까지 구축하고 △학생 보호 인력 자질 검증(범죄 경력 조회) 등을 강화하고 △경찰청을 중심으로 신학기 동안 일진 등 폭력 서클 집중 단속 실시 및 상습·보복 폭행 등 중한 사안의 경우 강력 사건에 준해 엄정히 처리 △학교 폭력 예방 교육 전면 실시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학교 안전 점검차 서울 종로구 명신초등학교를 방문, 교무실에 설치된 학교 주변 CCTV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CCTV 많아지면 학교 폭력이 정말 예방될까?

그런데 CCTV 설치 확대가 학교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정답일까? 행정안전부는 올해 예산에 CCTV 설치 명목으로 615억 원을 추가로 배정했다. 실시간 모니터링 인력 예산 199억 원을 포함하면 8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CCTV 설치와 관리에 투여되는 셈이다. 이미 계획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CCTV 확충'을 '긴급 대책'인 것처럼 내놓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CCTV 확대가 학교 폭력 예방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성명을 내고 "CCTV가 학교 폭력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한 후, 확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CTV 설치와 학교 폭력 예방 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료 하나 없는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대책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내놓은 나머지 대책도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0년 1월 정부는 '제2차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2005년에 발표된 '제1차 5개년 개획'에 CCTV 확대가 처음 추가됐다. 이와 함께 학교 지킴이 확대, 휴대전화 '알리미' 서비스 도입 등이 추가됐다. 그렇지만 처벌 강화 및 예방 교육 실시 등 큰 틀에서 내용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과 함께, 발표 당시에도 교육계에서는 "1차 계획의 재탕"이라는 박한 평가가 나왔다.

이후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2차 계획을 조금씩 수정해 발표해 왔다. 2011년 7월 총리실이 발표한 '폭력·따돌림 없는 학교 추진 계획'에도 여지없이 CCTV 확대가 포함돼 있고, 역시 2차 계획을 조금 수정해 발표한 것이라는 비판을 비켜가지 못했다.

'감시와 처벌' 말고 '자치와 교육'으로

이 같은 학교 폭력 대책 '재탕' 현상은 결국 학교 폭력 관련 대책을 관료들의 시각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감시, 통제, 처벌 대책 등에 초점을 맞춰왔으며, 이러한 방식의 대책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 폭력으로 경찰에 검거된 학생은 2만3800여 명으로 1년 전보다 8.7% 늘었다. 같은 기간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구속된 학생 수도 333명으로 전년 대비 223.3% 증가했다. 그러나 일선 교사나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느냐"고 물으면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 힘들다. 최근 스스로 삶을 마감한 최 모 군 사례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서울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성봉규 군(가명)은 "우리 학교에 CCTV가 있긴 있다. 있을 만한 곳은 있다. 교실에는 없다. 복도랑 창고, 화장실 출입구 있는 데 있다. 도난, 담배 피우는 것 감시 등의 목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성 군은 "CCTV를 추가로 설치한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담배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CCTV를 피해서 피우면 된다"며 "화장실과 같은 은밀한 공간에 데리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학교 밖에서도 폭력은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성명을 통해 "이번 대책은 학교와 가정과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살펴보지 못한 채, CCTV 사각지대만 살피는 기계적이고 대증적인 사고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 학생의 호소는 기계적인 감시만으로 학교 폭력이 감지될 수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 근절 대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음을 정부만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그간 단속과 엄벌주의는 학교 폭력 사실을 더욱 깊숙이 은폐하고 마구잡이식 검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며 "이는 엄벌주의식 정책이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대안으로 △인권 교육 강화 △담임 업무 정상화 △학생 자치 활동 활성화 등 학생과 현장 교사 중심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전교조는 "학생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작은 행위라도 그 사람의 동의를 얻어서 해야 한다는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인권 교육"이라며 "인권 교육도 강화하고, 담임 및 학교 수준에서 학교 폭력 교육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학교 행사 도우미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학생 자치 활동을 활성화하여 교육 활동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학교 폭력 문제도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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