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것(비핵화와 남북관계)이 함께 나아가는 2인용 자전거이며, 중요한 병행 과정으로 생각한다. 워킹그룹은 그 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20일(현지 시각) '한미 워킹그룹'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강조한 말이다. 그는 또한 "양국이 상의 없이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에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진전에 뒤처지지 않도록 보장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국내 보수 언론들도 일제히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면서 미국 측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미국과 국내 보수 진영은 "남북관계가 비핵화보다 앞서가는 안 된다"는 점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착시 현상'을 수반하고 있다.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비핵화보다 앞서가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남북관계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착시 현상이다. 본질적인 이유는 미국이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완화와 같은 상응조치 제공을 꺼리면서 비핵화의 속도가 처지고 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의 비유를 인용하자면, "2인용 자전거"에서 미국이 페달을 밟지 않거나 브레이크를 걸면서 착실히 페달을 밟고 있는 한국을 비난하는 꼴이다. 적반하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또 하나는 한국보다 미국이 비핵화에 더 관심이 많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한 착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키로 했다.
특히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선 15 만명의 평양시민들과 김 위원장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비핵화를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가? 말로는 비핵화를 외치면서 행동은 거꾸로 가고 있지 않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종전선언도 계속 뒤로 미루고 있고, 대북 제재 해제의 문턱도 계속 높이고 있지는 않는가? 북한의 목을 더 강하게 옥죄면 정말 비핵화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급한 용무를 봤다고 여긴 탓인지, 최근 부쩍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하면서 '북한이 굴복하고 나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언행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는 미국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핵심적인 사유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내 보수 언론들도 미국을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비핵화를 위해 조속히 상응 조치를 하나둘씩 취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 마디만 나오면 엉뚱하게도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소재로 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팀도 각성해야 한다. 대북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등과 관련해 대통령이 혼자 뛰는 듯한 모습이 계속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미 워킹그룹을 슬기롭게 활용해야 한다. 비핵화가 늦어지고 있다고 해서 남북관계 개선마저 가로막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시적인 한미간의 협의틀이 구성된 만큼, 비핵화와 관련된 미국측의 성실한 상응 조치 이행을 요구하면서 남북관계와의 병행발전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을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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