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남한을 찾은 리종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이 사과 및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며, 남북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6일 경기도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경기도와 (사)아태평화교류협회가 주관한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한 리 부위원장은 "오늘 북남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이적인 사변들은 북과 남이 손을 맞잡고 일본의 과거 죄악을 파헤치며 다시는 우리 후대 들에게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도 긍정적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정립이 없이 현재를 논할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며 "일본 당국은 과거 조선인민에게 끼친 일제의 죄악을 절대로 용납지 않으려는 북과 남의 결연한 의지를 똑바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 부위원장은 "일본 당국은 패망 7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도 과거 범죄 청산을 회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슨 일본인 납치 문제만을 떠들면서 오히려 우리 공화국을 물고 늘어지는 적반하장"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강제 동원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자국의 납치자 문제만을 제기하는 일본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당국은 이제라도 조선인 강제 납치, 연행과 관련한 모든 진상을 철저히 조사 규명하여 세상에 공개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납치, 연행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피해자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며 충분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리 부위원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당연히 북한 여러분들의 의향도 받아들이고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유키오 전 총리는 "일본의 (타국에 대한) 식민지화와 전쟁을 일으킨 역사적인 사실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하고 무한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강제적으로, 특히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대기업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가서 억지로 노동하는 상황에 놓인 많은 분들이 목숨도 잃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는 이러한(강제 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저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키오 전 총리는 "1991년 야나이 순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해결된 것은 한일 양국이 가지고 있는 외교 보호권을 상호간에 포기했다는 것이고,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 답변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다면 사법권을 통해 결론이 나온 것에 대해 일본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은 것을 해당 기업과 일본 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키오 전 총리는 "한일 정부 간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상호간에 노력해야 된다"면서 "그렇지만 일본에도 징용 문제를 해결해서 한일 간에 긴밀해질 필요가 있고 일본과 북한이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꼭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남북관계 개선, 멈출 수도 주춤거릴수도 없어
리종혁 부위원장은 이날 국제대회에서 올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에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도 남북이 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 부위원장은 "지금 조선 반도에서는 극적인 변화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제23차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과 남의 뜨거운 마음이 하나가 되어 펼쳐 보인 감동적인 모습들은 동족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 그리고 평화는 전쟁에 비할 수 없이 고귀하고 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증명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단 몇 달 사이에 세 차례의 북남 수뇌 상봉과 조미(북미) 수뇌 상봉이 이뤄지고 역사적인 북남 공동 선언들과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은 조선반도는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도래하는 평화의 시대, 역사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었다"고 추켜세웠다.
리 부위원장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 자주 통일과 번영에로 향한 성스러운 대행진은 이제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강렬한 희망과 확신이 북과 남 겨레의 가슴 마다에 꽉 차고 넘치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여기서 발걸음을 멈출 수도, 주춤거릴 수도 없다"고 밝혔다.
유키오 전 총리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아주 친밀하게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나왔다"며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반도 국면의 변화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유키오 전 총리는 "지난해 말에 북측에서 봤을 때 (자신들의) 미국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핵 미사일을 개발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라는 것을 하나의 무기로 삼고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키오 전 총리는 "북한이 다시 (핵과 미사일 개발로) 원상복귀 할 것이다, 핵 협상을 포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유키오 전 총리는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가장 우선시하고, 이 때문에 북한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일본에서 큰 문제인데,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일본이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한 채 밖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유키오 전 총리는 "일본은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이루고 그 결과물로 납치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아베 정권의 구상은 맞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남북을 하나로 통일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에 일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두 번째 기조연설을 진행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된 것과 관련 "북한이 상응 조치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이른바 '리비아 방식'의 핵 문제 해결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먼저 조치를 취하더라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 체제 안전에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북한과 미국,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북한 비핵화 촉진-감시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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