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점을 통과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진전과 교착을 반복하며 숨가쁘게 전개되어 온 지난 1년, 정 전 장관의 혜안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정 전 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판이 바뀐다'라는 주제로 정세토크 10주년을 기념한 토크콘서트를 열고 독자들과 만났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세토크를 10년 정도 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분석을 준비하다 보니 나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정확한 분석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정세토크 180회째인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정 전 장관은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북미 협상과 관련해 또 다른 모멘텀이 필요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나서줘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고위급회담과 관련 "과거의 사례를 보면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다시 잡기는 쉽지 않다. 분위기를 일신시킬 수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북한과 미국은 자기들끼리 타협하기가 어렵다"며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번 더 나서줘야 할 것 같다"고 주문했다.
그는 "남북 정상이 만나서 북미 간 대화를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에 합의한 다음, 이를 미국에 통보해서 미국이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지난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 노력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밝혔을 때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중재 외교를 벌였고 결국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본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며 "이처럼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남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크콘서트는 정 전 장관의 기조 발언에 이어 방청객들과 자유로운 질의 응답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이날 기조 발언 및 질의 응답의 주요 내용이다.
■ 기조 발언
정세토크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 하고도 4개월이 됐는데,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북한학이나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분들도 정세토크를 많이 보고 참고한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북한의 관료들도 저한테 제가 언론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하더군요.
정세토크를 10년 정도 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분석을 준비하다 보니 나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정확한 분석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최근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북미 간 비핵화와 그에 따른 상응조치를 둘러싼 회담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원인을 알아보려면 우선 지난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의 논의를 살펴봐야 합니다.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나온 공동성명은 이전의 북미 간 핵 합의와는 전혀 다른 순서와 논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기존의 다른 합의들과 비교했을 때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선 북미 공동성명에는 첫 번째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북미 수교를 하자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관한 이야기이고 세 번째가 돼서야 북한의 비핵화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1994년에 체결된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는 북한의 핵 활동 중단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3개월 이내 북미 수교를 위한 협상을 개시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세 번째에는 경제 지원에 해당하는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지원이 언급됩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그 다음에는 북한-미국 및 북한-일본의 수교, 경제 지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등이 거론되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합의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즉 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북미 수교 등의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 논리가 투영돼 있습니다. 물론 9.19 공동성명은 동시 이행을 약속했기 때문에 제네바 때보다는 북한의 선 행동에 대한 강조가 약화됐죠.
그런데 지난 6월 북미 공동성명의 경우 비핵화가 가장 나중에 명시돼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이 우리와 수교해주고 군사적으로 치지 않겠다는 보장해주면 왜 우리가 경제적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핵을 가지려고 하겠나"라고 했는데요.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정 부분 받아들인 것은 이번 공동성명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가진 단독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을 갖게 됐고, 스스로 큰일을 해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7일(현지 시각) 중간선거 이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내년 초에 2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면서도 "서두를 필요가 없고 급할 것이 없다. 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바뀐 데는 실제 북미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실무자들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무자들은 북한이 비핵화 및 북미 수교에 대해 의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역이용하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즉 지금 북한이 마음이 급하니까,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북한의 '선(先)행동'을 이끌어낸 뒤에야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대통령이 느긋하게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대통령에게 이를 건의했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꾸준히 북한의 선 행동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건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건데요. 냉전 이후 미국의 외교가 독단적으로 흘러갔다는 경향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이 있었을 때 미국은 다른 국가와 외교에서 그 나라와 자신을 일대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를 자신의 아래로 여겼죠.
이런 와중에 북한이라는 작은 나라가 핵을 가지려고 하다니, 미국 입장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불량한 정권으로 취급했고 악마화했습니다. 국제 정치에서 도덕이라는 가치를 끌어 오는, 매우 비현실적인 접근을 선보인 셈이죠.
그동안 수많은 협상이 있었고 밀고 당기기가 있었지만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는 미국의 인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도 미국을 믿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겨나게 됩니다. 결국 북핵 문제를 오래 다뤄왔던 실무자들은 북한이 먼저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지게 된 것이죠.
이들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등 결정권자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고, 결국 현재 트럼프 정부는 과거에 북핵 문제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관행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열릴 계획이었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불발된 이유도 북한과 미국이 계속 접점을 찾아가는 와중에 북한의 더 많은 행동을 바라는 미국의 요구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일행이 실제 베이징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시간을 한 번 변경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미국에 종전선언이나 제재 완화 등과 관련해 확실한 답을 달라고 했을 겁니다.
북한도 미국 뉴욕에 유엔 대표부를 두기 때문에 이 채널을 통해서든 혹은 다른 채널을 이용해서든 계속 이러한 의사를 타진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미국 측에서 희망적인 메시지가 나오지 않자, 결국 김영철 일행은 비행기 편을 취소하고 다음에 만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걸 북한이 연기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북한이 먼저 연기를 제안한 것은 맞지만, 미국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핵 리스트와 종전 선언, 제재 완화 등을 둘러싸고 북한의 조치를 끌어내면서 자신들의 상응 조치는 확답을 하지 않는 식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무부는 당시 고위급회담 연기를 발표하면서 북미 양측의 스케줄이 허용할 때 다시 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북미 간 갈등이 있다는 해석을 피하려는 시도인데요. 그런데 과거의 사례를 보면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다시 잡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일신시킬 수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대로 놔두면 북한과 미국은 자기들끼리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번 더 나서줘야 할 것 같습니다. 남북 정상이 만나서 북미 간 대화를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에 합의한 다음, 이를 미국에 통보해서 미국이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도보다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종전과 불가침 약속을 해주면 왜 자신들이 핵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겠냐면서, 이 부분만 해결되면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을 겁니다. 이전부터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뜻을 확인하고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힘을 쏟은 겁니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 과정에서 양측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밝혔죠. 이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만나 여기서 판이 깨지면 모두 곤란하니 부드럽게 하자, 트럼프가 연락하라고 했으니 이에 맞춰 조치하라며 중재 외교를 벌였습니다. 결국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었죠.
이처럼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남한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6자회담이 진행됐을 때 미국의 동아태 차관보는 통일부 장관을 만나 북한을 설득해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습니다. 실제 북미 접촉이 이뤄지면 북한이 딴소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교육을 잘 시켜달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한 데에는 남한에서 북한으로 쌀과 비료가 가는 동안 북한은 남한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영향력이 있고 이걸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이죠.
남한 역시 남북이 긴밀해진 상황을 이용해서 북한에 미리 협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미국과 협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설득하면 북한이 우리의 메시지를 듣고 수긍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을 설득할 수 있었고 이걸 가지고 미국에는 "우리가 이만큼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너무 터무니 없는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접점을 만들어 놓으면 의장국인 중국에 회의를 소집하라고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 질의 응답
Q. 일부에서는 북한이 먼저 핵 탄두나 미사일 일부를 넘기는 이른바 '프론트 로딩', front-loading‧초기 이행)을 실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세현 : 현실적으로 그 방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마음이 변했고 미국의 실무자들이 북한의 선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계속 동시 행동만 고집하면 판이 깨질 위험이 있습니다.
Q.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남한의 재벌 총수들에게 했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데요. 그냥 한 마디 던진 것이 아니라 꽤 오래 재벌 총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세현 : 북한이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이게 잘 안되다 보니 리선권은 자신이 뭘 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 앞에서 경제협력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이건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들을 의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원수님'이 남북 경제협력을 원하는데 남한은 미지근하고, 그런 와중에 본인이라도 나서서 남한 재벌들을 혼내주는 모습을 보이면 위에서 자신을 좋게 봐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의도에서 했든 리선권의 발언은 대충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렇게 넘어가면 북한 버릇 나빠지게 하는 겁니다. 고위급회담 대표 교체하고 확실한 항의 표시를 해야 합니다.
Q. 앞으로 협상 동력을 살리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김정은이 미국에 가야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당연히 미국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에 들어가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바람직하지만, 워싱턴 D.C에서 북미 정상이 만난다면 싱가포르에서의 만남보다 훨씬 상징성이 클 겁니다. 북한이 정상국가라는 점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때로 기술적인 이유가 행동을 제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까지 가는데도 중국의 비행기를 빌려 타고 갔습니다. 이건 사실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거든요. 미국 갈 때도 중국 비행기를 빌려서 들어가는 것을 결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남북미 3자가 워싱턴 D.C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들러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하고 이후 함께 전용기를 타고 미국에 가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남한과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일단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경제 문제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나 북핵 문제에서 아직 국내 정치적으로는 입지가 있는 상황입니다. 임기도 좀 남아있고요.
문제는 북핵 문제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으로 흔들리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미국에서 탄핵 등의 이슈가 생겨서 트럼프 대통령이 흔들릴 경우 북미 간 협상이 성큼 성큼 나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게 우리에게 문제인데요.
아직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간 협상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있는 것 같습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언급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서두르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북한과 만남은 가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북미 간 속도가 좀 늦춰질 수는 있어도 회담 자체는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의지를 계속 이어가도록 북한이 뒷받침해줘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즉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줄 수 있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주면 회담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걸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이미 올해 4월 경제 개선에 힘쓰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한 바 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해야 하는 정치적 목표가 있습니다. 이를 잘 연결시키면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Q. SM-3 미사일 도입 등이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요?
정세현 : 이게 미사일 방어체제(MD) 편입 문제와 연계돼있는 건데요. 정부는 일단 MD 편입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과 어떻게 이야기할지가 중요합니다.
미국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한국을 MD 체제에 편입시키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를 비롯해 김대중 정부 등 이후 정부들은 MD 체제 편입을 긍정하지 않았죠.
이번 정부 역시 그러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보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과거 정부였으면 미국의 요구에 주저 앉고 사무소 개소를 진행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결국 미국을 설득해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미국을 달래가면서 진행한다면 MD 편입 문제도 지혜롭게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Q. 미국이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외교에서 상대방의 도덕적 진정성을 가지고 협상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이 너무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미국은 김정은이 다급하니까 자신들이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를 잘 해주지 않아도 북한의 필요 때문에 결국 미국 요구대로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수교만 해주면 핵을 버릴 것처럼 이야기하니까 진짜인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속도는 느려지더라도 결국 한반도는 냉전 해체 방향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은 북한과 관계를 맺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냉전의 반쪽이 이미 허물어진 동북아에서 북미, 북일 관계마저 허물어지면 냉전은 해체되는 겁니다. 이거야 말로 판이 바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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