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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이 계도한 정홍원 검사' <조선> 미담, 소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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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이 계도한 정홍원 검사' <조선> 미담, 소름 끼친다

[기자의 눈] 음악인 울린 시대의 폭력에 관한 성찰이 없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건전한 가수들을 원했다.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의 <미인> 같은 히트곡의 후속작은 <뭉치자> 같은 '건전 애국 가요'여야 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은 용납되지 않던 때였다.

1975년 한국 대중음악을 강타한 '1차 대마초 파동'도 이런 시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오늘날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도 이 시기를 전후해 남산 지하 취조실에 끌려가 '주전자 고문'을 당했다. 이런 식으로 자생적인 한국 대중문화가 초토화됐을 때 당대의 많은 '꼰대'들이 손뼉을 쳤을지는 모르겠지만, 후대의 음악팬들은 그 시절을 '암흑기'로 기억한다. 박정희 정권이 전두환 정권으로 바뀐 후에도 '관제' 가요들은 '국풍'의 이름으로 판을 쳤고, 이남이 같은 음악인은 "울고 싶어라"를 외치며 피를 토해야 했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사랑은 가고, 친구도 가고, 모두 다.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 거야.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 수많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 잊었니."

1980년 8월 이른바 '2차 대마초 파동'으로 구속됐다가 결국 서울에서 음악을 접고 춘천으로 낙향해야 했던 가수 이남이와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연'이 12일자 <조선일보>에 '미담 기사'로 났다.

두 사람은 1980년 '2차 대마초 파동' 때 인연을 맺었다. 정권 차원에서 수많은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 '가요계 정화 운동'에 이어 터진 '1차 대마초 파동'에 비할 바는 아니나, '2차 대마초 파동' 역시 당대 최고의 전위적 그룹 사운드이던 '사랑과 평화'가 해체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사건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1980년 서울지검 검사로 이남이를 구속했던 정 후보자가 2010년 1월 투병 중이던 이남이의 병문안을 하고 싶다며 찾아갔다. 정 후보자는 "이렇게 편찮으셔서 어떻게 하느냐. 그때(대마초 사건)는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하다"고 했고, 이남이는 "(서울에서) 춘천까지 먼 길을 나 같은 사람 보러 오셨느냐"고 했다. 정 후보자는 5분 정도 이남이를 만난 후 100만 원이 든 봉투를 놓고 갔다. 이 신문은 1980년대에 이남이가 출소 후 정 후보자를 찾아가 "그간 많은 것을 깨달았다"며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 가수가 되겠다고 말한 일이 있다고 전했다.

▲ 1988년 가수 이남이가 서울 강남의 연습실에서 7년 만에 재결성한 '사랑과 평화' 멤버들과 함께 신곡을 연습하고 있다. 그는 절규하듯이 기묘한 무대 스타일과 독특한 음색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남이는 1974년 그룹 '신중현과 엽전들'로 데뷔했고 1977년 그룹 '사랑과 평화'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대표곡으로 <울고 싶어라>,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등이 있다. ⓒ연합뉴스

표적은 대마초만이 아니었다

이남이는 경희중학교 밴드부에서 호른을 불면서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1966년 가수 최헌과 '차밍가이드'를 결성해 미8군 무대에 섰고, 그 후에는 무명이던 조용필과 '김트리오'를 만들었다. 이남이는 그 후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미인>으로 소울풍의 펑키한 베이스 리프를 선보였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미인>"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이남이와 음악을 한때 같이했던 조용필과 신중현은 박정희 정권이 내건 '가요 정화 운동'의 표적이 됐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유신을 선포한 후 긴급조치를 발표한 박정희 정권은 '가요 정화 운동'을 밀어붙였다. 신중현은 최근 한 케이블 티비에 출연해 1975년 전후 풍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대중음악계가 수난을 겪었다. <아름다운 강산>으로 큰 무대에 서는 날 장발 단속을 했다. 규정상 귀만 나오면 된다고 하더라. 머리핀을 귀에 꽂았는데 굉장히 반항적인 이미지로 찍혔다. 그때부터 서서히 압박을 받았고 아예 음악을 하지 말라고 활동 금지까지 당했다. (1973년에) <미인>도 나왔는데 금지가 됐다. 왜 (금지)시키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시끄럽다고 하더라. 창법 저속, 가사 저속, 사람들이 너무 따라한다고 그랬다. 아마 최다 금지곡 기록 같다. 나오는 족족 거의 다 금지였고 오늘 발표하면 내일 금지였다."

1975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는 '대마초 파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박지만이 대마초를 하다가 박정희에게 걸려 대마초 단속이 본격화됐다"는 소문이 시중에 나돌던 시절이었다. 어찌 됐든 이 무렵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들은 '대마초 사범'이 돼 줄줄이 구속되고 활동 정지를 당했다.

박정희 정권이 조직적으로 '가요 정화 작업'을 밀어붙인 후에도 그 여진은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그런 사회 분위기가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1980년 '광주 항쟁'이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나서 3개월이 지난 후인 8월 '2차 대마초 파동'이 터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대중음악계 안에서 '전위'로 평가받던 '사랑과 평화' 멤버들이 구속된다. 그 가운데 이창남(이남이의 본명)의 이름이 있다. 이듬해인 1981년에는 '국풍81'이라는 관제 행사가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치러졌다. 사실상 '전두환 주최, 허문도 기획' 행사로, 1만3000명의 문화예술인이 동원됐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광주 항쟁'을 짓밟은 신군부가 표방한 '건전 문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정홍원 검사는 이런 시국에 '사랑과 평화' 대마초 사건을 수사했다. <울고 싶어라>는 '사랑과 평화'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해체되기 직전 이남이가 괴로운 심정을 담아 즉석에서 작곡해 마지막 무대에서 불렀던 곡이다. 이남이는 이 무렵을 이렇게 기억했다.

"음악을 포기하고 용인 누님댁 농장에서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었습니다. 수없이 울기도 했고 술도 많이 마셨죠. 음악에 대한 향수가 솟구칠 때마다 <울고 싶어라>를 불렀습니다." (<경향신문> 1988년 5월 17일자)

이 인터뷰에서 이남이는 "검찰에 잡혀 있었다"는 표현도 썼다.

▲ 정홍원 국무총리 지명자가 7일 인수위원회에서 총리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미담' 기사가 불편한 까닭

<조선일보>의 '미담' 속에는 사회 계도에 앞장서며 피의자를 세련되게 훈계한 훌륭한 검사 한 명이 등장한다. 이남이를 구속할 때 정홍원 검사가 사감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은이가 자유분방하면 딴생각을 품는다'는 것이 법리를 떠나 당시 사회적으로 조성된 '대마초 가수' 처벌의 주된 논리였고, 정홍원 검사는 그 논리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행동한 것뿐이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 가수가 되겠다고 정홍원 검사에게 착한 다짐을 한 이남이의 사연은 박근혜 당선인이 내세운 '법질서 확립'의 모범 사례가 될 '건전 기사'로 뽑힐 만한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미담 기사'에는 독재 정권이 자행한 거대한 문화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표적이 된 이남이를 비롯한 음악인들이 좌절의 늪에 빠져야 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모든 건 대마초를 피운 개인 탓'이라고 전제하는 것 같아 찜찜하다는 말이다. 정치권력의 폭력은 그런 식으로 희석되고 슬금슬금 정당화된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대마초를 매개로 이른바 '불량 가수'들을 청산할 때, 권력이 대중문화까지 잡아들였다는 것을 저들은 알까? <조선일보>의 "'울고 싶어라' 가수 이남이, 총리 후보 때문에 '엉엉'" 기사는 그래서 불편하다. 개인적으로 근래 읽은 '미담' 중 가장 소름끼치는 '미담' 기사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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