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과 기후변화
올해 서울 신촌에 새롭게 지어진 '신촌문화발전소'라는 장소가 있다. 도시재생사업의 예산이 직접 투여되지는 않았지만, 신촌에서 4년째 진행 중인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된 공공사업의 성과로 언급되곤 한다. 바람산 언덕 중간에 위치한 덕에 신촌의 경관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몇 차례 그 장소를 사용하다보니 의아한 점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이 건물의 외벽 형태이다. 이 건물은 유리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 건물이다. 외관의 절반 이상이 유리로 되어 있다. 건물의 유리외벽은 실내에서 신촌이라는 도시공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험을 그 장소의 사용자들에게 선물하지만,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그 장소의 에너지 효율성에 대해서는 의문도 동시에 던져준다. 신촌 도시재생의 상징처럼 홍보되는 이 장소에 기후변화와 오일피크 같은 위기적 요소가 반영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비단 이 장소뿐 아니다. 도시 재개발의 대안 담론으로 등장한 도시재생사업과 그 연장선에서 기획된(무려 50조 원이 투여되는) 도시재생뉴딜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시의 대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다른 모든 정책사업과 마찬가지로 도시재생이 우리 사회가 마주한 모든 위기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질문이 빠졌거나, 혹은 그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더웠다. 우리는 1904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거나, 1994년 폭염과 올 여름을 비교하는 기사들을 수없이 접했다. 정부는 경험한 적 없는 이 재난 상황에 각 지방자치단체에 60억 원을 폭염대책으로 긴급교부하는 대책과 함께 전기세 인하 등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폭염은 2018년의 변수가 아니라, 2018년 이후 우리 사회의 상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수의 기후학자들은 이미 올 겨울을 최대 한파가 몰려올 겨울로 예측하고 있고, 끔찍하게도 내년 여름은 올해 여름보다 더 더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 우리는 예측되는 이 재난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계속적으로 다가올 한파와 폭염에 대비해 시민들의 에너지 비용을 저감시키는 용도로 공적 자금을 투입할 것인가? 물론 시민들이 사회경제적인 조건으로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폭염과 한파라는 재난에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공공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한가? 이 지점에서도 역시 중요한 질문이 빠졌거나, 혹은 그 순서가 뒤바뀐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활성화'에 대해
우리는 '활성화'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급 관공서에 무언가의 활성화를 전담하는 부서도 많고, 각종 활성화 계획들이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 만들어지곤 한다. 우리가 놓쳤거나 뒤바뀐 질문에 대해 '활성화'라는 단어로부터 고민을 이어가보면 어떨까 싶다.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도시재생에서도, 마을공동체 사업에서도,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과제인데, 지역이 활성화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합의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도시의 장소들은 '밤 9시가 넘으면 불이 꺼진 상가'를 망한 도시의 증거로 쉽게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공적자금과 민간의 노력을 투여해 활성화시킨 상태는 '밤 9시가 되어도 불이 밝게 켜져있는 상가'를 의미할까? 그 활성화가 우리가 마주한 치명적인 위기, 예를 들면 기후변화와 피크오일과 같은 환경이슈나 임금노동시장의 한계와 극단적 양극화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위협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놓친 질문, 혹은 순서가 뒤바뀌어 뒤로 밀려버린 질문은 이런 것 같다.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 앞에 우리는 어떤 사회를 구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지금의 도시재생사업, 기후변화 대응책, 마을공동체 사업, 사회적경제 지원책 등 이른바 혁신적이라 표현되는 정책들이 좀 더 긴밀히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질문이 사라지게 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생활세계에 온전히 침투하는데 성공함으로서 더욱더 팍팍해진 개인의 일상이 담론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사회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편, 다양한 사회운동의 내용과 성과를 공공이 제도로 포섭하며 발생한 시민사회의 빈곤도 분명 질문 없는 시대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부문의 의제와 사람들이 제도의 칸막이 안으로 포섭되는 것은 사회운동의 자연스러운 성과이기도 하지만, 부문을 넘나드는 종합적 사회기획의 부재라는 중대한 도전을 우리에게 안겨준 셈이다. 단적으로 시민사회 출신이라는 경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그 예이다.
지난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동산 대책과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대한 질문에 원칙을 고수한 답변과 함께 "혁신성장과 도시재생을 위해 미래 먹거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6대 신산업단지, 마이스 산업육성은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 밝혔다. 과연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들, 부동산 대책들은 6대 신산업단지 조성 및 마이스 산업육성과 어떤 정합성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토론은 어느 순간 멈춘 것 같다. 예산의 집행권한을 위임받은 공공과 민간의 사회적인 그룹이 협력을 한다고 할 때,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민간의 가장 큰 강점은 미래적이면서 종합적인 구상의 존재일텐데, 우리는 그 강점을 잃어버린 셈이다.
'노 플라스틱'으로부터 질문을 복원하자
서울시는 지난 9월, 5대 분야 38개 과제의 '1회용 플라스틱 없는 서울 종합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행정이 나서서 플라스틱을 비롯한 폐기물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실제로 축제 등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민간단체들에게 행사를 집행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폐기물을 최소화라는 지침이 내려간 모양이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이런 장면들을 두고 지금 단계에서 공공의 이런 작동을 단정적으로 평가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상황을 중요한 기회로 인지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하는 좋은 기회 말이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일방향적으로 던져진 이 같은 공공의 지침은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일단은 압박으로 다가오겠지만, 한편 여러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그 대체품을 바다 건너에서라도 가져올 것인가?', '탄소를 적게 배출하자는 우리의 목표와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는 이 목표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 축제는 꼭 해야 하는가?' 운이 좋으면 더 좋은 질문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없고,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폭염과 한파를 막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단지 지침을 수행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질문을 발견하거나 발명해야 한다.
질문의 순간이 많아진다. 어쩌면 이 질문의 순간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담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장면일 수도 있겠다. 부디 질문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어지는 질문이 좋은 질문을 만들고, 좋은 질문이야말로 복잡하고 치명적인 위기 앞에 선 우리 사회의 운영을 민주주의에 위탁하기로 한 이 계약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행위에 질문을 던지고, 공공의 정책에도 질문을 던지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하며, 서로의 행위와 그 정책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지난하지만 절실한 토론을 더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태영 사무국장은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