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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 대세? 진짜 대세 되려면…"

[시민정치시평]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대세, 협동조합 !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즘 시민사회단체와 자치단체의 대세는 확실히 협동조합이다. 사회적기업이든, 자활기업이든, 마을기업이든, 시민사회단체이든, 자치단체이든 모두 협동조합과 관련된 내용으로 수렴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입법 예고 중에 있고, 업무지침을 마련하였으며, 공무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국 순회 설명회를 실시했다. 발 빠른 자치단체들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합동으로 평균 70 ~ 80명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언론들은 해외 협동조합의 사례를 소개하기 바쁘다. 가장 앞서나가는 서울시는 11월 1일 4개 권역에 협동조합 상담센터를 운영 중이다. SK그룹의 사회공헌 재단인 SK행복나눔재단에서도, 강경식 전 총리도 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당시 보여주었던 관심보다 더 크고, 행정의 대응도 더 빠르다.

이런 관심은 협동조합설립의 환경이 변화한데서 비롯된다. 기존에는 농업협동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등 8개의 개별법에 의해 특정 분야에서, 규모화된 형태의 협동조합만이 용인되었다. 이제는 5명이 뜻을 모으면 금융부문을 제외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협동조합의 문턱이 낮아졌다. 시민들의 삶과 가까운 유기농먹을거리구매협동조합, 의료생협, 공동육아 등의 경험이 한 몫을 하였고, 200년 가까운 협동조합의 역사를 자랑하는 외국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도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회복에 저마다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협동'이라는 단어가 고단한 우리 삶에 희망이 되기 때문이리라. 이는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동력을 더 이상 경쟁과 독점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과 같은 맥락이다.

협동조합은 정말 대세인가 ?

그러나 협동조합의 긍정적인 일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시각이나,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면 당장 우리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습은 현재 협동조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나 협동조합이 성장 할 수 있는 인프라 정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설립되는 협동조합들에 대한 기존 협동조합진영의 태도 등을 고려할 때 다소 과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생소한 대상이었다. 특히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은 진보진영에서는 개량주의로, 보수진영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취급을 해 온 대상이어서 그 사례가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대명사로 알려진 농협은 군부정권에 의해 설립이 주도되어 관제 협동조합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농민조합원의 권익 향상을 외면해 온 처신 때문에 정체성 논란이 끊이질 않으며, 안팎으로 개혁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우리에게 협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주고, 협동조합이 자율과 독립성 원칙에 기초한 자발적 조직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현재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례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성공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몬드라곤 모델을 성공으로 이끈 보편적 요인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그 지역의 특수한 경험으로 한정 짓고자 하였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대한 한국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짚어볼 문제가 있다. 우선 협동조합 창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해 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자활 지원 정책으로 설립한 공동체기업의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 및 수요조사 결과에 의하면,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의사를 보인 곳은 12% 정도이며, 50% 가량은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답하였다. 사회적기업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협동조합에 대해 우호적 관심을 갖고 있지만,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검토되는 두 가지는 '주체들의 가치 지향성과의 일치성' 그리고 '기업의 여건이 지금보다 나아지는가' 이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때 나아질 것이란 확신이 서질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협동조합 신규 설립에 있어서도 예비 창업자들이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사업아이템, 경영능력, 자금의 문제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더해 협동조합의 가치와 특성을 헤아려 줄 협동조합 은행이나, 협동조합의 가치와 경영 성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 줄 협동조합 창업 지원 전문 기관이 없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협동조합이 고용의 불안정성을 제거해 주고, 취약한 사회보장을 담보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고용의 불안정성을 갖고 있거나, 사회보장이 취약한 자유계약직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와 희망은 크다. 특히 문화예술분야, 교육 분야, IT개발 분야 등에서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협동조합 설립이나, 퀵서비스, 대리기사, 간병 및 가사 서비스제공 노동자 등 파견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의 설립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이들은 고용형태, 파견 및 알선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동조합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4대 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은 모든 조건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하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협동조합 세력이 직면한 문제를 꼽아보자면 기존의 협동조합 주체들과의 협동이다. 이미 설립되어 활동하는 협동조합에는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은 농협이 있다. 이 외에 금융 업무를 담당하는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가 2500여개 정도가 있고, 중소기업간의 협동사업을 촉진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이 10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이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주체들은 기존 협동조합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기대나, 이끌어 내야한다는 고민도 크게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한국 협동조합세력의 실상이자, 기존 협동조합진영이 수행해 온 사회적 역할의 수준이 반영된 것이다. 기존 협동조합들의 경우 개별법에 의해 설립된 관계로 구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협동조합기본법 시대에 부응하는 협동조합들에서조차 신규 협동조합 설립 지원 시스템 구축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협동조합간의 협동'이라는 협동조합의 원칙에 비춰 볼 때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성남의 주민신용협동조합과 안산의 화랑신용협동조합이 신규 협동조합 설립 지원에 적극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진정으로 대세 협동조합을 꿈꾼다면…

협동조합이 진정으로 사회의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려면 역사가 알려 주었듯이 많은 실패와 성공을 통해 교훈을 얻고, 금과옥조가 만들어지고, 그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순환을 거듭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협동조합이 대세가 되려면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정부와 자치단체에게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나라마다 정부의 역할과 적극성은 차이가 있었지만,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협동조합의 자율과 독립은 침해를 받아 왔다.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가 '자율과 독립'을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한 제4원칙으로 채택한 것은 정부에 정책에 기대어 협동조합이 성장하면서 정체성 위기를 겪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정부는 협동조합이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장애가 되는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 눈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기존의 협동조합들은 협동조합기본법 시대에 부응하는 개방적이고 상호협력적인 지형을 만드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농업협동조합과 신용협동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새로이 설립되는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주요한 후원세력이 되어야 한다. 사업자금을 대출해 주고, 자신들의 인프라를 활용해 창업 준비와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시장을 함께 열어주는 노력을 해 줘야 한다. ICA의 제6원칙인 '협동조합간의 협력'이라는 원칙의 실천을 상기할 때이다.

셋째,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자조와 책임이라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지향하고, 자율과 독립이라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를 통해 한국의 협동조합은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함께 제대로 갈 수 있는 길로 비로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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