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세의 고령이 된 생존수형인 18명이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호소하면서 연내 4.3재심 사건에 대한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29일 오후 4시 양근방(1933년생) 할아버지 등 4.3생존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현장에는 치매와 병마로 거동이 불편한 박순석(1928년생), 정기성(1922년생) 할아버지를 제외한 16명이 직접 휠체어 등에 의지해 법정을 찾아 재판 전 과정을 지켜봤다.
재판 개시 전 생존수형인들은 법원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명예회복을 언급하며 조속한 재판 진행을 재판부에 촉구했다.
김평국 할아버지(1930년생)는 "70년 전 왜, 무슨 죄로 끌려가서 옥살이까지 했는지 모르겠다"며 "모두 늙은이들이다. 재판을 받기도 너무나 힘들다"고 호소했다.
오희춘 할머니(1933년생)는 "지난 세월 기십(담력)도 펴지 못하고 지내왔다"며 "70년만에 이런 일(재심)이 생길 줄 몰랐다. 죽기 전에 명예만이라도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첫 공판에는 4.3유족과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등이 대거 몰리면서 높은 관심을 보였다. 70석의 방청석이 꽉 차면서 약 20여명은 1시간 내내 서서 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쟁점은 역시 공소장이었다. 이번 재심사건은 판결문이 없는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첫 공판이다. 정식 재판이 열리면서 생존수형인들의 신분도 재심청구인에서 '피고인'으로 바뀌었다.
재판부는 재심의 근거가 되는 확정 판결의 직접 자료는 없지만 청구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송돼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었다며 9월3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반면 공소장이 없는 검찰은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들의 진술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법정에서 처음 공소사실을 공개했다.
검찰측은 채 완성되지 않은 공소장을 통해 피고인 18명을 1948년 4~11월 군법상 내란실행 혐의로 옥살이를 한 10명과 1949년 6~7월 계엄령에 따라 국방경비법을 위반한 8명으로 구분했다.
각 기간 피고인들이 폭동과 내란 활동을 하거나 적을 위해 정보제공 등의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확한 범죄 일시와 장소는 특정 짓지 못했다.
형사소송법 제254조(공소제기의 방식과 공소장)에는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변호인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아 공소 기각 논리를 부각시켰다. 공소 사실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며 입증 책임이 있는 검찰을 압박했다.
변호인측은 "범죄의 장소와 시간을 특정 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차원에서 필수"라며 "공소 제기 자체가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공소는 당연히 기각돼야 한다"고 맞섰다.
검찰도 이 부분은 동의했지만 사건의 특수성과 역사적 기록 등을 고려해 공판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며 피고인 심문을 통해 공소사실을 구체화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검찰은 "기록이 없다고 공소를 기각하면 70년만에 열리는 재심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유‧무죄를 떠나 피고인을 심문하고 기록으로 남겨 공소사실을 특정 짓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판부는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여 11월26일과 27일 2차례 공판을 열어 피고인에 대한 증인 심문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를 통해 공소사실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은 향후 유사 사건에 대한 자료로 활용 될 수 있다"며 "공소 책임을 진 검찰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기는 어려운 만큼 피고인 심문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12월17일 결심 공판을 열어 검찰측의 구형과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을 듣기로 했다. 이 경우 재심 선고는 이르면 연말 쯤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