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 5일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대전역 광장에서는 영세가구점 노동자였던 박응수(당시 29세)씨가 '군부독재 종식과 단일화 쟁취'를 외치며 분신하여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정확히 25년이 흐른 어제(11월 22일) 전북 완주의 50대 남성이 단일화를 요구하는 유서와 플랜카드를 남기고 투신하였다는 비보는 단일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1987년 6.29 선언으로 대선 국면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단일화에 대한 '순진한 낙관론'이 우세하였다. 직선제만 되면 '저마다 중앙청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 요리사가 되어도 좋다'고 말했던 양김의 공언이 계속되었고, 실제 DJ는 복권되자마자 YS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에 입당하는 절차를 밟기도 하였다. DJ는 대통령직선제 관철을 조건으로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1986.11.5)하였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YS가 망명 직후 "당신이 나이도 위이고 하니 사면복권이 되면 대통령후보로 지지 하겠다"고 예기하곤 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단일화를 외치며 양당 당사를 점거하였던 대학생들의 간절한 염원도,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원로들의 중재도, 심지어는 노동자의 목숨을 건 분신도 양김의 권력욕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았다.
같은 것과 다른 것
그때나 지금이나 정권교체의 유일한 카드로서 단일화를 바라는 여망은 간절하였지만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당시 실시되었던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서는 양김의 단일화는 필요(69%)하지만 실제 이루어질 것이라는 응답(30.4%)보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40%)이 다소 높게 나타났다(<동아일보>. 1987.9.25).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단일화에 대한 찬성 견해는 64.2%(박근혜 지지층 포함)에서 84.7%(박근혜 지지층 제외)에 달하고 있다(<한겨레신문>. 2012.11.13).
같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양김의 탐욕이나 야망과 같은 '유해한 열정'을 다스릴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의 모색은 턱 없이 부재하다. 여야 없이 정치권은 후보단일화를 위한 민주적인 경선 제도도,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와 같은 합의제 헌정체제를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은 채 25년 동안 손 놓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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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단일화를 낙관하는 강력한 근거는 역사적 교훈의 엄숙함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양김은 결국 각각 집권에는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양김의 동시 출마는 지역주의의 악화뿐만 아니라 훗날 3당 합당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영남의 야당 및 민주화 세력의 결정적 약화를 가져왔다. 'YS의 욕심과 DJ의 고집'으로 인한 정치적 결별로 그들은 군부와 야합하거나 아니면 유신 잔당과 손잡음으로써 집권의 정당성에 결정적 손상을 당하였다. 또한 민통련의 해체에서 드러나듯 '정치권은 물론 민주화세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완전한 상실'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국민들의 희생과 소모적인 분열을 낳았다. 두 정부 모두 집권 과정에서 입은 지지 기반의 분열과 도덕성의 실추로 '성공한 정부'를 창출하지는 못하였다.
최초의 성공한 정부와 최초의 4년 중임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분담하라
한국 현대사에서 꼭 필요한, 그러나 아직 갖지 못한 것 중 하나가 성공한 정부이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남북화해협력이라는 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치유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부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안철수 정부이든 문재인 정부이든 차기 정권의 첫 번째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평화·복지국가의 건설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중도 자유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안철수나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문재인의 민주당 없이는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 나아가 진보정의당이나 녹색당, 그리고 개혁적 시민단체와 같은 진보세력과의 우호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즉,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성공한 정부라는 위대한 비전은 개혁과 진보세력의 지혜로운 연대와 소통 속에서만 가능하다.
진정 우리가 이 시점에서 꿈꾸어야 하는 것은 후보자들의 결단에 의한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집권에는 성공하였으나 통치에는 실패한 단일화의 역설적 비극을 수차례 경험하였다. 단일화가 성공한 이후에도 안철수와 문재인이 함께 진심으로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또 다시 실패한 정부가 되지 않기 위해 '공동정부의 비전과 내용을 담보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박근혜 후보야말로 이번 단일화가 성공한다면 최고의 숨어있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가 지난 11월 6일 제안한 '4년 중임 개헌'은 향후 권력의 공존과 연합을 가능하게 할 제도적 매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우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집권 여당 후보와 제1 야당 후보 모두 '4년 중임 개헌'을 정치공약으로 제시하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결정되든 차기 정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개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할 수 있다.
단일화가 된다면 한 사람은 최초의 성공한 정부의 마지막 5년 단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물론 성공한 정부는 앞서 설명한 대로 중도에서 진보를 아우르는 역사적 블록을 형성할 지혜와 능력의 결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새정치 공동선언에서 그동안 정치학계와 시민단체가 줄곧 제기해 온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누락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단일화가 어렵게 성사된다면 해야 할 일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함께 손잡고 전국의 유세장을 누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복지와 조세, 생태와 평화로 정책협약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선거법 개정과 개헌의 방향을 당당하게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지금 두 후보와 측근들이 버려야 할 것은 단기적·정략적 셈법이며, 가져야 할 것은 역사적 교훈이 주는 중장기적 관점이다.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최초의 연임에 성공한 8년짜리 대통령이 될 것인가? 연이은 개혁정부의 13년 집권을 통해 역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굳건한 생태·평화·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꿈, 멋지지 아니한가? 87년으로 돌아가 역사의 수인(囚人)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시대의 맏이'가 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더 없이 필요한 것은 헌신과 양보를 강조하는 주관적 결단이 아니라 공존을 가능케 할 지혜로운 역사적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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