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노무현 정부도 그랬다"는 말은 이 정부 초반부터 단골 레파토리였다. 2008년 4월, '노무현 정부 대못 뽑기'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한미 쇠고기 협정으로 '촛불 홍역'을 겪고 난 후 "사실 협상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했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로 국가 기록물을 불법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죽은 권력'이 '산 권력'의 발목을 잡았다는 논리도 나왔다.
이후 검찰은 노무현 정부의 비리 의혹을 캐기 시작했고,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에도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이명박 정부 임기 끝까지 청와대 확성기를 통해 퍼져 나왔다.
청와대와 발을 맞추던 새누리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 당국 관료들을 불러야 한다"고 청문회 증언대에 세웠다. 노무현 정부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논리였다. 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기소될 때였다. 일부 무죄 판결을 받은 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 대통령의 형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USB에 담긴 것은 노무현 정부의 사찰 자료 80%"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도 불법 사찰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정당한 직무감찰로 보이는 부분들도 '노무현 정부 불법 사찰 의혹'이 됐다. 청와대의 주장을 받은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 사찰 의혹을 특검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해, 결국 민간인 불법 사찰 특검은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도 그랬다"는 말은 국가 권력이 개인 김종익 씨를 만신창이로 만든 '현 정부 비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다. 본질과 상관없이 '노무현 정부'가 거론된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
노무현 이름 빠지면 입장 발표가 안되나?
임기 3개월을 남긴 시점, '노무현'이 또 언급됐다. 사건을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특검 수사를 받았다. 최종적으로 억대의 증여세 포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국세청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경호를 총괄했던 인사가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청와대가 특검팀의 결론을 반박하는 입장을 내는 와중에 뜬금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거론됐다.
최금락 수석이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도 사저가 건립되고 경호시설이 건축되고 난 뒤 경호부지 값이 취득 시점에 비해 크게 올라서 취득 당시의 감정평가 금액으로 부담 비율을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 바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언급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이 있자 최 수석은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부지의 경우, 나중에 사저가 들어오고 (땅 값이) 올랐다"고만 설명했다. 땅 값이 올라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땅 값이 올랐기 때문에, 더 비싸게 사야 된다는 것인지, 그 논리를 도통 분석할 수가 없다.
노무현 재단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청와대 발표문을 읽어봤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내곡동 사저와 노무현 사저는 케이스도 완전히 다른 얘기다. 우리 측에서 말할래야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호부지 땅 주인, 사저 터 땅 주인이 다르다. 내곡동과 같은 '지분 섞기'가 가능하지도 않았다. 부담 비율을 나눌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땅 값이 올라서 논란이 된 적도 없다. 게다가 땅 값이 올랐다고 오른 땅값 만큼을 국가에 내야 할 일도 없다.
4년 9개월 동안 4년 9개월 전에 임기를 끝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들어야 했다. 전직 대통령이라 비교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 아들이 수사를 받았고, 그 결과가 발표되는 자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돼야 할까? 청와대는 "우리는 노무현 정부를 뛰어 넘었다. 극복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노무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콤플렉스인지, '잃어버린 10년'의 한이 너무 큰 탓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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