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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단일화보다 정치쇄신이 중요한 이유는?

[김윤태 칼럼]<6>정치개혁, 단일화 수단 아니라 국가 비전!

야권 단일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새정치 공동선언'을 위한 협상팀이 가동 중이다. 그러나 정치쇄신에 관한 합의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며칠 전 안철수 후보는 정치권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회의원 정원 축소, 중앙당 폐지, 지방의회 정당공천 폐지를 제안했다.

이에 대응하여 문재인 후보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찬성했지만, 국회의원 정수 축소에는 반대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원 정수 축소에 찬성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가 오히려 국민의 대표성을 제한하고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과연 국회의원 정수가 정치쇄신의 최대 쟁점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국회의원 정수 축소 논쟁의 허실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사례는 단순하다. 한국의 국회의원 1명당 약 16만명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반면, 미국은 72만명, 일본은 약 26만명 유권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통계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심각한 증거의 '선택 편향'의 문제를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원제를 갖고 있는 일본의 상하 양원을 합하면 17만명 수준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반면에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국가를 비교하면 오히려 한국보다 국회의원 정수가 많다. 국회의원 1인이 영국에서는 9만6천명, 프랑스는 11만명, 독일은 13만명의 유권자를 대표한다. 상하원 의원을 합하면 더 적어진다.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극회의원 1인당 약 2만6천명을 대표한다. 결국 한국의 의원 정수는 주요 국가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그러면 인구 비례당 의원 정수가 많은 국가의 정치가 모두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의원 정수가 많아 다양한 계층과 직능대표가 의회에 진출하여 국민의 의사를 대표한다는 전문가의 평가도 많다. 결국 정치개혁의 핵심 요소는 양적 문제가 아니라 질적 문제이다.
▲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정치쇄신의 질적, 제도적 차원이 중요

현재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대단히 큰 것은 사실이다. 국회의원과 국회에 대한 신뢰가 거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거대 양당 후보와 별도로 제3후보를 지지하는 '안철수 현상'이 폭발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안철수 현상'이 정치쇄신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 정당의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물론 정치계급의 기득권 포기와 특권 폐지는 정치쇄신의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그러나 정치쇄신이 곧 정당과 국회의 기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빈대 잡으려다 집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정치쇄신의 방향은 정당과 국회의 부정이 아니라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창조적 결합'이 되어야 한다. 반정치, 탈정치 방향이 아니라 정치의 재활성화와 정치권의 근본적 쇄신이 필요하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공적영역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정치적 소통의 욕구가 급속하게 증가했다. 이런 점에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정당의 국고보조금 축소와 같은 양적, 소극적 제안보다 미래 지향적 시민정치의 참여를 확대하는 질적, 제도적 개혁을 제시해야 한다.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창조적 결합을 추구해야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의회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의회 대표로 선출된 소수의 정치계급은 선거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무능, 예산 낭비가 있어도 견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유권자들은 투표일에만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고 다음 선거까지 노예처럼 지내는 셈이 되고 만다. 결국 2008년 '촛불시위'처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정부의 처사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

현 단계 정치쇄신의 핵심 과제는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소극적 부정이 아니라 국회와 시민사회의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더 많은 참여와 토론을 보장하는 '심의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국회 표결 이전에 국회의 본회의와 상임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논의의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국회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공청회와 토론회의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회 윤리위원회에 시민대표가 참가하는 시민배심원제를 설치하여 국회의원의 특권을 규제해야 한다. 국회가 정치계급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도구가 되지 못하도록 시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국회 축소가 아니라 강화가 필요

한국 정치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행정부의 독주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부자감세와 같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책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회에서 통과되고 있다. 입법부가 아니라 '통법부'라고 불릴만하다. 현재 허용되는 행정부의 입법권을 가능한 빨리 제한해야 한다. 행정부의 '청탁 입법'도 막아야 한다. 유럽 국가에서는 당연히 의회가 입법권을 주도한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의회만 입법권을 행사한다.

민생과 직접 관련이 있는 최저임금위원회와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행정부가 아니라 국회에 설치해야 한다.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고 행정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허용하는 제도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 또한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행정부의 고위공직자 임명 절차를 바로 잡고 국회의 인사 검증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쇄신의 궁극적 방향은 국회가 민의를 대표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선 국회의 연중 상설 개회가 필요하다. 미국, 영국, 유럽 국가에서는 연중 개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회가 쉬는데 국회의원이 급여를 받을 수는 없다. 국회 예결위의 예산편성권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 상임위에 감사원 감사청구권을 부여하고, 장기적으로 개헌을 통해 행정부의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에서도 감사처는 의회에 있으며, 행정부의 모든 활동에 대한 감사를 실행한다.

정당 해체가 아니라 정당의 활성화가 중요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당 개혁이 필수적이다. 현재 한국 정당은 가장 큰 문제점은 정당과 시민사회의 분리이다. 정당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직능단체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와 다수대표제는 지역주의를 온존시키고 양대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선거에서 많은 사표가 발생하고 소수의 권리를 무시당한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한 독일, 스웨덴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다양한 계층과 소수집단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당적 협력을 존중하는 '합의민주주의'가 발전하였다.

반면 일부 선거캠프 인사들이 주장하는 '원내정당'과 '중앙당 폐지'의 제안은 이미 2004년 열린우리당의 실험에서 실패로 끝났다. 그러한 정당제도는 소수집단을 무시하고 정치계급의 과두제를 온존시키는 미국식 정치의 역기능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선거자금을 사용하는 미국의 정치제도는 기업의 지배력은 더욱 키우는 한편,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제도를 강화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거대한 영토와 연방제라는 역사적 조건에서 탄생한 미국식 원내정당을 민주적 개혁으로 보는 오해와 편견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다른 한편 정당의 당직 및 공직후보 선출을 위한 방법의 개혁을 위해 더욱 풀뿌리 당원과 국민의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중앙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정당의 민주적 운영'이러한 헌법의 정신에 위반된다. 특히 당원이 아닌 외부 인사들이 정당의 공직 후보를 결정하고 소수의 과두제가 당원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전략공천을 결정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 정당의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법도 당원의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앞으로 빨리 정당 지도부의 선출은 당원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한편, 공직후보는 시도당 또는 지역당 차원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당내 경선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후보 경선을 관리해야 한다.

중앙당의 공직후보 선출권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 민주화에 필수적 요소이다. 하지만 중앙당의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곧 중앙당의 폐지와 국고보조금의 축소로 이어진다면 정당은 왜소화되고 말 것이다. 정당의 정책생산 역량이 부족하면 효과적으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없다. 오히려 정당의 정책개발 능력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원의 독립과 예산의 파격적 지원이 시급하다. 독일의 경우 아데나워 재단, 에버트 재단, 나우만 재단이 정당과 연결되어 정책개발, 시민교육, 국제외교를 전개하고 있는데, 재원은 정부예산으로 충당한다. 공익재단인 독일의 연구재단은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미국의 연구재단과 다르며, 정당의 장기적 이념과 정책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정치쇄신인가?

우리는 현재 초미의 관심사가 된 정치쇄신이 단순히 '대선용 수사' 또는 '단일화의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비전의 필수 요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선거에서 정치쇄신이 공약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쇄신이 없다면 국가 발전을 이룩할 동력을 만들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정치쇄신 자체가 국가발전의 비전은 아니다. 정치쇄신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통일 시대의 비전을 이룩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쇄신이 없다면 우리는 국가 비전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정치쇄신의 궁극적 방향은 행정부의 관료적 지배를 견제하고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와 시민의 참여 활성화를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둘러싼 논쟁은 민생과 동떨어진 의제이고 정치쇄신의 본질을 호도하는 주제일 뿐이다. 지금 당장 불필요한 논쟁과 미국식 원내정당의 환상을 던져버리고 정당정치의 개혁과 시민정치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정치쇄신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만 2012년 대선의 성격을 과거와 미래의 구도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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