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시사한 단 한 가지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추악한 이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훨씬 단순하다. "권력형 비리를 검찰이 수사하도록 두면 안된다"는 점이다. 특검은 이 대통령의 '민낯'만큼 검찰의 '민낯'이 추악했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줬다. 은폐된 내곡동 땅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검찰이 은폐해 온 진실은 더 중요하다.
'죽은 권력' MB 일가 처벌? '미래 권력' 검찰 조직 개혁!
지난 6월 1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백방준 부장)은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청와대의 업무상 배임, 시형 씨의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여부와 관련해 관련자 7명을 전원 불기소 처분했다.
주식회사 다스에 취직해 월 급여가 30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시형 씨가 12억 원에 달하는 대출 빚을 졌고, 또 다른 빚을 내 이자를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도, "김윤옥 여사의 내곡동 자택 부지를 담보로 (12억 원 중 절반인) 6억 원을 대출받은 것은 단독 행동"이라고 결론을 냈다. 심지어 시형 씨가 진술서에 "내곡동 땅 매입대금으로 (12억 원 중 나머지) 6억 원을 큰아버지에게서 빌렸으며, 큰 가방을 직접 들고 가서 큰아버지에게서 현금 6억원을 받아 주거지에 보관했다"고 적은 사실은 제대로 조사 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에 함구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광범 특별검사 ⓒ청와대 |
특검 조사 결과 이 서면 진술서가 청와대 행정관의 대필로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둘 중 하나다. 검찰은 이 진술서가 대필된 것인지도 몰랐든지, 알고도 묵인했든지다. 검찰은 당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답변서가 길지 않았지만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아 더 이상 조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무혐의 사건'을 총 지휘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의 발언이다. 그는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배임죄를 적용하면 대통령 일가에게 부담을 줄 까봐" 이른바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뒤에 말을 바꿨지만 최 지검장의 이같은 발언은 충격적이다.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최교일 지검장은 <PD 수첩>, 정연주 KBS 전 사장 사건을 수사했다. 법원이 모두 무죄로 판결했지만, 최 지검장은 초고속 승진을 했고, 결국 차기 검찰총장으로 가는 '하이웨이'인 서울중앙지검장에 낙점돼 내곡동 사건을 뭉갰다.
최 지검장 하에서 수사 실무를 책임졌던 형사 1부 백방준 부장검사의 이력도 화려하다. 백 부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들어 '실세' 보직인 법무부 법질서규제개혁 담당관을 지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 계좌 발언을 했다가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건,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박정희 전 대통령 사자 명예훼손 사건 등을 수사했다. 그는 현재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 출세를 위한 요직으로 꼽히는 춘천지검 차장으로 영전한 상태다. 특검 수사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사실들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다. 검찰이 내세우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르면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내곡동 사건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어야 한다. 이는 검찰이 자신들만의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는 편리한 방식이다. 그러나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가 "대통령 일가를 기소하기 부담스러웠다"고 개인적 판단을 토로하는 것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더러, 일선 검사들까지 싸잡혀 욕을 먹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오죽했으면 이른바 '도가니 검사'가 내부 게시판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며 글을 올리고, 이 글의 조회수가 1800명 검사 조직 속에서 2000건을 훌쩍 넘어섰을까.
특검, 이제는 검찰의 '직무유기' 수사로 2013년 준비해야
대선을 앞둔 지금 이 대통령은 과거로, 잿빛 필름처럼 스러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의 공동 관리인인 새누리당은 이같은 결말을 예측했지만, 어찌됐건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이제는 "미래를 보자"면서 청와대의 울상마저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은 형사 소추에서 면죄되지만, 그 일가는 기소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죄를 피해보고자 말 바꾸기를 밥먹듯이 하는 이 대통령 일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주변에 동원된 '권력의 하수인들'의 민낯을 보면서, 이 대통령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도덕성"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검찰을 부렸다가 특검에 얻어 맞는다"거나 "이명박도 노무현의 심정을 알게 될 것"이라는 식의 인상 비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해악'에 가까울 것이다.
특검이 "대통령을 망신주기 하느냐"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이 대통령 일가를 쥐잡듯 수사해서는 안 된다. 이제 기소에 역점을 둘 때다. 현직 대통령의 '품격'도 생각해야 한다. 시형 씨 등에 대한 기소가 가능하다면 이 대통령 일가의 무너진 도덕성은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특검은 이 대통령 아들과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기소를 준비하는 한편, 이명박 정부 5년간 망가진 검찰의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수사의 독립성"을 운운하던 검찰이 사실상 "임명직 공무원"을 자처하며 스스로 무너져 내린 그 공백을 탐사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직무 유기'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검법에 따르면 특검은 수사 기간을 15일 연장할 수 있다. 이 기간을 '부실 수사'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금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선 주자 3인이 마침 강력한 검찰 개혁 방안을 내 놓았다. 공통점이 있다. '권력에 대한 수사'는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 가능케 하고, 검찰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특검이 보여주고 있는 '교훈' 역시 이와 맥이 닿는다. '죽어가는 권력'의 주변을 뒤지는 것보다, 살아있는 검찰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고, 응당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특검이 '미래 지향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차기 집권 세력의 '검찰 개혁'에 탄력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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