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조선일보>와 힘을 합쳐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는 주장이 국정감사에서 나왔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015년 초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청와대-금융위원회-<조선일보>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정 전 부위원장이 안 전 수석에게 보낸 문자는 너무나 생생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강효상(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 현 자유한국당 의원) 선배와 논의했습니다. 기획기사로 세게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자료 이진석에게 이미 넘겼습니다"(2015년 2월11일)
"형님 조선이 약속대로 세게 도와줬으니 한은이 금리 50bp(0.5%포인트) 내리도록 서별관회의 열어서 말씀하셔야 합니다"(2015년 3월3일)
공교롭게도 <조선일보> 3월2일과 3일치 1면에 '경기부양 팔짱 낀 韓銀(한은)의 시대착오', ''3低(저) 수렁' 빠진 경제, 韓銀(한은)이 끌어올려야' 제목의 기사가 실린 바 있고, 한국은행은 2015년 3월 12일 기준금리를 2%에서 1.75%로, 6월 11일 1.75%에서 1.5%로 총 50bp(0.5%포인트) 인하했다.(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금리인하, '청와대-금융위-조선일보'커넥션 의혹)
박근혜-최경환이 뿌린 투기의 씨앗이 열매를 맺다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작당을 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압박했고, <조선일보>가 거기에 적극 협력했는지를 내가 알 길은 없다.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건 박근혜-최경환이 뿌린 투기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마침내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피투성이 싸움 끝에 만들어 놓은 종부세 등의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들을 그라운드 제로 상태로 만든 게 이명박 정부라면 '빚내 집사라'고 시민들을 강권해 지금의 부동산 광풍을 일으킨 건 박근혜-최경환이다.
50~60%였던 LTV를 70%로 높이고, DTI도 60%(이전엔 서울 50%, 인천-경기 60%)로 완화한 것, 재건축 가능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고, 재건축시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을 완화한 것, 주택청약제도를 유주택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하고. 전매제한 기간을 2~8년에서 1~6년으로 단축한 것. 이게 최경환이 부총리에 취임하고 한 투기부양책의 목록이다.
이른바 초이노믹스에 힘입어 가계신용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비중과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은 2008년 311조1584억 원에서 2016년 545조8396억 원으로 폭증했다. 특기할 건 주택담보대출규모가 이명박 시대 5년간 93조 원이 증가한 반면, 박근혜 정부 4년간 무려 141조 원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맥을 못추던 서울의 아파트 가격 상승이 본격화된 시점이 2014년 무렵인데, 지방에서 한껏 가격을 올려 놓은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대도시의 아파트 가격 평당 매매가는 2009년~2016년 사이에 약 70%가량 폭등했다) 투기세력과 슈퍼리치들이 최경환의 신호를 받고 서울로 집결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박근혜-최경환에게 사법적 단죄를 할 수는 없겠지만...
박근혜-최경환이 일으킨 부동산투기 광풍은 문재인 정부 들어 태풍으로 변해 민주공화국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부동산이 서로가 서로에게 이리인 사회를 만들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한국사회는 뼈저리게 경험하는 중이다.
'빚내서 집사라'고 시민들을 강박해 투기광풍을 일으킨 박근혜-최경환을 사법적으로 단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최경환이 저지른 범죄적 정책 결정이 한국사회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물론 투기 광풍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작금 서울을 강타한 투기광풍의 정치적, 정책적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게만 묻는 것도 공정함과 균형감각을 상실한 태도다. 부동산 투기의 원인(遠因)을 박근혜-최경환이 제공했고, 보유세 개혁에 미온적이었던 문재인 정부는 투기의 근인(近因)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관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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