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정치판에서 작동하는 독특한 행태가 있다. '행보정치'가 그렇다. 물론 대선후보는 자신을 알려야 한다. 전국방방곡곡 어디든지,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진면목을 보이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높은 득표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 후보 모두 이 점에선 별 차이가 없다. 행보정치는 그들 모두의 자연스런 선택이다.
행보정치의 계산법은 매우 단순하다. 이미지 만들기다. 지난 대선 '욕쟁이 할머니'와의 사진 한 컷이 MB의 서민 이미지로 각인된 것처럼, 후보들은 그런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각인하려고 애쓴다. 특히 박빙의 승부가 될 이번 선거에서는 이미지가 당락을 가를 변수다. 마치 인기를 위해 인상적인 캐릭터를 잡아야 하는 연예인의 상황에 놓인 듯하다. 하지만 행보정치의 이미지는 문제가 많다. 유권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후보의 자연스런 이미지가 아니라, 연출된 이미지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행보정치에는 진정한 감동이 있을 수 없다. 이미지만 남기려니 현안이나 정책은 뒷전이다. 행보정치에는 유권자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 항상 관련 당사자들만의 잔치로 끝난다. 다양한 생각을 어우러지게 할 진정한 연대보다 말만 앞세우는 이미지, 행동하지 않을 이미지가 먼저다.
사실 '행보'의 말뜻은 단순하다.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어떤 목적지를 다녀온다"는 뜻이다. '순회'와 비슷한 뜻이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의 '행보'가 그저 순회로만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전국일주 정치행보에서 낡고 관습적인 정치행태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행보정치'는 이른바 귀하신 분의 '행차', '몸소 납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말하자면 윗사람의 권세가 강하게 풍긴다. 가령, 재래시장 방문을 '민생행보'라 부르는 건 왜인가. 민심을 살피려 '친히' 시장을 찾았다는 의미가 없다면 말이다.
행보정치는 언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시에 언론의 일그러진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미디어는 대통령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독점적으로 전달한다. 미디어의 보도태도는 행보정치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낸다. 후보들의 '행보'를 전달하는 시선에서 아직 누가 될지 모르는 미래 권력자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래서 정치행보는 미래 권력자의 행차에 가깝다. 그러기에 유권자의 시선에서 쟁점을 소개하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다. 토막 난 국민의 소리는 늘 후보의 이미지를 찬양하는 말 일색인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행보정치는 조직적이고 권위적인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왼쪽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연합뉴스 |
행보정치는 정치 전략 차원에서만 운용될 수 있다. 가시적인 성공의 이미지만을 쫓는 정치는 속이 비어있는 상품의 포장술일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구체적인 쟁점이 부각되지 못한 것도 그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는 유권자의 관심을 끌만한 이념이나 원칙이 없다. 유별나다면, 각 후보가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모두 재탕의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가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으로 뜨거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번 선거에는 '경제민주화'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논란이 없다. 더욱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당위성을 모두 받아들이다보니, 어떤 대립각도 세워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의 무반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먹고 살기도 힘든 데 세상일에 관여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활력은 경쟁적인 이념과 원칙의 대립에서 나온다. 이 대립을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활력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가장 손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쓰지 않을까. SNS 혁명 운운하면서도 막상 그 기술을 공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인색하다. 폭력 국회 논쟁 끝에 통과된 법안으로 방송사는 많아졌는데 정작 방송사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 절차상의 문제를 삼고 있지만, 이 대답 또한 행보정치처럼 단순하다. 너무도 복잡한 그들만의 셈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드러내고 싶다면, 지금까지 꾸물거릴 이유가 없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복잡한 이유 뒤로 민주주의 기본 원칙, 대표성이 훼손되고 있다. 말로는 국민에게 다가선다고 하면서도, 권력과 이권만을 꿈꿀 뿐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일종의 '좌판정치'이다. 고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을 모아 팔 물건을 거짓 없이, 낱낱이 보여줘야 한다. '고객이 왕'이어야 한다. 겉포장만 잘해놓고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길 바랄 수 없다. 게다가 상자 안에 든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더욱 그렇다. 뚜껑을 열지 않고 무엇이 들었는지, 심지어 비어있을지도 모르는 상자를 포장지만 보고 선택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토론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충분한 토론은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된다.
이번 선거는 토론이 없고, 행보만 있다. 후보들은 바삐 움직이지만, 정작 우리 삶의 터전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인 삶속엔 그들은 없다. 행보정치에는 앞으로 잘 하겠다는 미래만 있지, 미래를 뒷받침할 사실이 없다. 10월 30일 보도된 여론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유권자의 60%가 난무하는 복지공약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침묵과 무관심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나쁘게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새로움만이 침묵을 깰 수 있다. 틀에 박힌 행보정치는 구태이다. 감동을 바라는 국민에게 신선하게 비춰질 수 없다. 어두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영웅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앞으로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영웅, 국민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영웅, 무엇보다 진실한 영웅을 찾고 있다. 생각해보라. 노무현이 행보정치를 했다면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까. 생각해보면 기존 가치를 깨는 파격성 때문에 노무현은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구태를 구태라고 말할 때 진정성을 얻는다. 대선 후보들에게 이런 파격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결코 유권자 탓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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