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소송 중 하나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이 이달 말 선고된다. 2013년 8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5년2개월 만이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달 30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여운택(95)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주심인 김소영 대법관이 퇴임하는 다음달 2일 이전에 선고하기 위해 특별 선고일정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씨 등 4명은 1941∼1943년 구 일본제철 측에서 충분한 식사와 임금, 기술 습득, 귀국 후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보장한다며 회유해 일본에 갔다. 하지만 오사카 등지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1997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고, 이 판결은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이에 여씨 등 4명이 우리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 모두 "일본 판결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적 없는 이춘식(94)씨와 김규수(89)씨에 대해서도 "옛 일본제철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만, 구 일본제철은 신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채무를 승계했다고도 볼 수 없다"며 같은 결론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판결을 뒤집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면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서울고법은 이듬해 7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었다. 2005년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낸 후 8년 만에 거둔 성과이기도 했다.
이 같은 서울고법의 판결에 신일본제철 측이 불복해 재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왔다. 이후로 대법원은 5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않다가, 지난 7월 27일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공모해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고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첫 단서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나왔다.
문건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외교부로부터 해외로 파견할 법관 자리를 더 얻어내겠다는 의도를 지닌 채 외교적 마찰 소지가 있는 강제징용 재판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외교부 입장을 반영해 재판을 미룰 방안으로 심리불속행 기간을 자연스럽게 넘기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같은 재판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추가 포착됐다. 검찰은 징용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직후인 2013년 10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청와대를 찾아가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에게 소송의 향후 방향을 설명하고 법관 해외파견을 늘려달라고 부탁한 단서를 확보했다. 2016년 9월에는 외교부를 찾아가 정부 의견서 제출 등 절차를 논의했다.
검찰은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2013∼2014년 차례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 불려가 징용소송을 논의한 정황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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