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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한 정치·언론 권력이 '언론'을 악용하나"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3>언론 지켜내라. '공정'을 확보하라

<불순한 정치권력이 제보자인척 접근해서 언론을 악용한 상황이다> 작금의 이른바 검증 보도와 관련해, MBC의 한 고참 기자가 쏟아낸 탄식이다. 한 인터넷 신문이 보도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불순한 정치권력과 부도덕한 언론권력이 각각 특정한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의 공기(公器)여야 할 언론을 공동으로 악용한 상황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최고의 권위를 지녔거나 위인(偉人) 반열에 있는 사람이 내놓은 견해는 아닐지라도, 이들의 목소리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2012년 대선정국에서, 정치판과 언론계가 준엄한 훈계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언론에게는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시대적인 명제가 절실하게 떠올라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이 나라 언론은 지금 그 지경에까지 와있다.

안철수 대선후보 부인의 다운계약서 보도와 관련해, '다운계약 사실'이 기록된 검인계약서의 출처가 새누리당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본인이나 본인의 동의 없이는 열람할 수 없는 문제의 검인계약서는 지난달 하순 새누리당 조현용 의원이 새누리당 인사가 구청장으로 있는 서울 송파구청에 '국정감사 자료'라며 요청해 발급 받은 것이라고 했다.

새삼 2001년에는 그런 식의 다운계약이 관행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이야기도 아니고, 다운계약 사실이 잘한 일이라거나, 안철수 후보의 사과가 잘못된 것이라는 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검증'을 탓하자는 것도 아니다. 주목되는 대목은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감자료로 제출된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어떻게 바로 네거티브 선거운동 자료가 되어 언론사에 '유통'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 안철수 후보가 다운계약서 작성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다운계약서 작성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 정보인 검인계약서가 특정 언론사로 들어가게 된 과정에 새누리당 의원이 개입돼 있어 논란이 됐다. ⓒ연합


국감자료는 당초 목적대로 국정감사에 활용되고 그 과정이 언론에 취재·보도되는 게 정당한 순서다. 국감자료로 제출된 사생활 정보가 국감에 활용되지도 않은 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언론사로 즉각 유통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그 때문일까 최근 특정 후보에 대한 일련의 네거티브 보도와 관련해, "네거티브를 제조·생산·유통 시키는 '공장'이 새누리당 안에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스스로 일을 벌일 경우에는, 작년 서울시장 선거 때와 같은 역풍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치적 '술수'가 등장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의 김영환 의원은 지난 5일 국회정무위원회의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검인계약서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안 후보 쪽의 검인계약서는 새누리당에 내 주면서도, 다운계약서 작성의 의혹이 있는 박 후보의 검인계약서는 민주당에 내놓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며, 정부와 새누리당이 짜고 고스톱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최근 네거티브 보도의 극치로 떠오른 MBC의 '안철수 후보 박사학위 논문표절 의혹'도 '공급처'가 새누리당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표절인지 아닌지를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는, 해당분야 전문가의 견해가 하나도 없는, 취재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이상한 기사였다. "안 후보 측은 '후보와 논의해 입장을 내 놓겠다'고 밝혔다"고 하지도 않은 말을 반론으로 조작해 방송했다.

표절 당했다는 교수조차 표절 아니라 했다. 오보였다. 이 칼럼 서두에서 고참 기자가 탄식했듯이 MBC내부에서 험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노조는 "조중동조차 외면할 정도의 엉터리 보도를 통해 MBC를 시중의 우스개로 전락 시켰다"며 "보도책임자들은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특히 "MBC를 정권의 나팔수, 나아가 선거를 이기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한 것"이라고 비난함으로써 새누리당을 이번 사태의 배후로 지목했다.

피해자인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단정하며 공식 사과와 함께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MBC측은 아직껏 말이 없는 상태다. 언론사(言論史)에 참변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안 후보가 이미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 측은 그 점을 노렸을 것이다.

언론을 이 지경 만들어 놓은 것은 MB정권과 한나라당이다. 그 한나라당은 지금 새누리당이라 이름 바꾸어 놓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른 척 하고 있다. MB랑 최시중 씨랑 한나라당이랑 다 힘 합쳐 판을 짜 만들어 놓았으면서, MBC파업 때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언론사의 노사문제에 어떻게 정치권이 개입할 수 있느냐"고 강변했다. 사람들을 복장 터지게 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언론은 요즘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씨의 상징인 5·16과 유신을 자기 입으로 깎아 내리며 부정했다. 바로 엊그제의 일이었다. 사실상 아버지를 부정한 것이었다. 가령, 박근혜 후보의 자리에 김대중 씨나 노무현 씨가 서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 나라 언론들이 어떤 보도 태도를 보였을까를 상상해 본다. 실로 엄청난 반응들을 쏟아 냈을 것이다. '말 바꾸기의 극치' '믿을 수 없는 정치인' '이럴 수가' 등의 제목을 필두로 몇 날 며칠 그야말로 도배질을 했을 것이다.

'5·16이 뭐길래'나 '유신이 깔아놓은 한(恨)과 눈물' 등의 문패를 내걸고 시리즈도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사과했을 때 이 땅의 언론들은 순한 양이 되어 조용히 넘어갔다. 박수 소리까지 들렸다. 사실은 그게 다 박근혜 후보를 '예뻐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된 일이었다. 공정(公正)이나 균형보도보다 그게 더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안철수 출마 포기 협박' 사건 때도 언론들은 그랬다. 일견 성격이 분명해 보이는 사건이었는데도 언론들의 방향은 초장부터 정해져 있었다. 박근혜 캠프 쪽 정준길 씨와 안철수 캠프 쪽 금태섭 씨의 20년 우정이 금 씨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헌신짝 되었다는 이야기로 발전시켜 나갔다. 사설이나 칼럼도 그런 쪽으로 갈 길을 잡았다. 박근혜 후보도 때맞춰 친구 사이의 대화를 놓고 불출마 협박이라 하는 것은 구태(舊態)정치라고 펌프질을 했다.

정준길 씨 통화 현장 목격자인 택시 운전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한 진보신문의 끈덕진 취재가 없었다면, 안철수 후보 쪽 금태섭 변호사는 정치적 출세를 위해 20년 우정을 배신한 속물이 되었을 것이고, 안철수 후보는 '목동의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추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사태가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도 언론들은 입 싹 씻고 걸맞는 보도를 외면하고 있다. 예뻐할 준비를 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에게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거보도에서 특정후보를 예뻐할 준비를 하고 있거나 미워할 준비를 하는 것은 언론이 결코 범해서는 안 될 절대 금기사항이다. 예뻐하거나 미워할 준비를 하고 보도를 하면 아귀가 맞지 않거나 스텝이 꼬여 필경 우스운 꼴이 되기 십상이다.

지난 2일 아침 7시15분 우연히 한 케이블 TV를 시청하다가 필자는 바로 그 예뻐하거나 미워할 준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보도를 보았다. <40대·'PK' 표심, 승부 가른다>는 제목의 이 리포트에는 대선후보 3명이 각각 직접 육성으로 연설하는 모습이 녹취되어 포함되어 있었다.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인터넷에서 그 리포트를 뽑아 보았다. 후보 3명의 녹취부분을 중심으로 비교해 본다.

<(기자 리포트) ···부산 경남지역에서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격차, 오차범위 안에서 박빙입니다 ···박 후보로서는 전통적인 강세를 어떻게 지켜내느냐가 관건입니다
[녹취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부산시민 여러분께 그동안 고마웠던, 그 신세를 꼭 갚고 행복한 부산시민이 되실 수 있도록 우리 한번 해봅시다. 여러분>

<(기자 리포트) ···무엇보다 강세 지역인 호남에서 안 후보의 우위가 여전합니다. 문 후보가 호남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녹취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반드시 정권교체 이뤄서 호남의 한을 풀고, 참여정부가 호남에 진 빚도 몇 배로 갚겠습니다">

<(기자 리포트) ···안 후보로서는 잇단 검증 공세 속에서 변동성이 큰 수도권과 2030세대 지지세를 이어 가는 게 관건입니다.
[녹취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정말 앞으로 더 엄중한 잣대로,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세 후보의 녹취부분 길이를 재 보았다. 필자에게 스톱워치가 없어 글자 수를 헤아렸다. 박근혜 47자, 문재인 36자, 안철수 (맨 마지막 '감사합니다' 5자를 포함해) 33자였다. 물론 산술적으로 길이가 꼭 같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의도적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내용이다. 박·문 두 후보는 지역 주민들에게 잘 해보겠다는 각오를 말하고 있으나 안 후보는 5일 전 다운계약서와 관련된 사과 내용을 녹취부분으로 쓰고 있다. 다운계약서 작성사실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이런 짓 하면 안 된다.

때 마침 TV 해설에서 박근혜 후보를 '심하게 예뻐하고 있는' 한 정치평론가의 편향 일변도의 언행이 문제가 되었다. 해당 언론사 노조가 출연정지를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보도나 해설이나 '선(線)'을 넘으면 소리가 나게 되어있다. 언론이 선을 넘으면 나라와 국민이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으로 너무 오랫동안 그런 환경에 길 들여져온 게 사실이다.

특히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그까짓 선거,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공정을 살려내야 한다. 언론을 살려내야 한다. 불순한 정치권력이 헤집으며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도록 우선 언론이 스스로 막아내야 한다. 지금은 그게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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