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스마트, 빅데이터, AI, 플랫폼 경제... 유수의 대기업 전략 보고서에서부터 지자체 마을 축제에까지 침투한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얘기다. 우스갯소리로, "모든 부처 보고서 앞머리엔 4차산업, 스마트, 빅데이터가 붙어 있다"는 말이 돌았었다. '규제 완화 = 일자리 창출'은 수학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방직기를 부수는 노동자 취급을 받았다.
정부가 기업들이 요구해 온 공적 데이터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플랫폼 경제' 구축을 위해서라고 한다. 플랫폼 경제는 자본주의의 미래일까? 아마 그럴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미래이지, '사람'의 미래는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에게 안겨주는 '공공 빅데이터'나, 공룡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플랫폼 경제'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까? 100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기본 소득과 로봇 노예제가 대안이라고?
많은 이들은 자본에, 기업에 시민들의 재산을 빌려주면 '착한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기술 진보'라고 믿는 것들, '일자리의 보고'라고 믿는 것들이, 대부분 인력과 비용을 줄이는 데 활용될 것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종종 잊는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이 정부 주도의 데이터 혁명, 이를 통한 플랫폼 자본주의 고도화에 관한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그 두 번째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 공유지분권에 입각한 사회배당으로 ① : 규제 완화가 일자리를 파괴한다
정부의 혁신성장에 대한 비판은 규제 완화 정책의 역진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재정을 투입하는 데이터 기술 R&D PIE에 대한 비판도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중심으로 역진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력 양성에 재정을 투입하지만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역진적인 정책이라고,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된 일자리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면,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터 경제나 플랫폼 경제에 대한 대안적 논의는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혁명의 시대에 임금노동 일자리의 보호와 확대만을 경제정책의 유일한 지표로 보는 태도는 일종의 '러다이트(Luddite)' 좌파의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기술혁명이 자동으로 유토피아를 이끌 것이며 일자리도 늘 것이라고 말하는 기술만능주의적 우파의 입장만큼이나 유해하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입장은 언뜻 보면 정반대의 입장이지만 기술혁명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끌기 위해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침묵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러다이트 좌파와 대안적 조직형태 및 분배방식 모색 사이에서
기재부에서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데이터 기술 발전이 20개월 이상 늦었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데이터 기술 R&D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것은 데이터 기술 R&D의 역진성을 없애고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을 아래로부터 전유할 틀에 대한 사고이다. 20개월 이상 늦은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려면 빅데이터와 플랫폼 경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 요구된다.
데이터 기술 R&D PIE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분배를 직접적으로 개선하는 산업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위에서 간략하게 서술한 플랫폼 자본주의의 동학으로부터 데이터 기술 R&D PIE의 역진성을 해소할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끌어낼 수 있다.
첫째,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의 본래적 메커니즘이므로 필연적 독점화를 막을 수 없고, 이는 플랫폼 소유자가 공공(public)이거나 공유(common)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플랫폼의 소유관계와 무관하게 플랫폼 경제의 생산성은 네트워크 효과에 의존한다. 플랫폼 기업을 대신할 대안적 조직형태, 즉 공영 플랫폼도 네트워크 효과를 반감시키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둘째, 플랫폼 자본의 이윤 원천인 빅데이터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유지(commons)이며, 이와 같은 데이터 공유지(data commons)에 빅데이터 영구기금과 같은 적절한 법률적 형태가 부여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 구체적인 모델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공유지에 근거하여 플랫폼 기업이나 플랫폼 기업이 개발한 인공지능에 대해 공유지분권을 설정하는 방식, 또는 플랫폼 자체를 사회 전체의 소유로 바꾸는 방식이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이와 같은 공유론적 대안은 분배차원의 기본소득(basic income), 곧 보편적 사회배당(social dividend)과 결합되어야 한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수익의 원천이 빅데이터이기 때문에 수익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배당하는 것은 정당하다.
이렇게 보면 데이터 기술 R&D PIE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데이터 기술 R&D PIE는 공유지분권에 근거한 사회배당을 도입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출발조건이 된다. 관건은, 국가재정의 투입이 단순히 데이터 기술력을 높이고 플랫폼 자본이 등장할 조건을 만들어 주는 일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데이터 기술 R&D PIE를 추진하되 데이터 기술 스타트업 사업에 50% 이상의 공유지분권을 설정하고 향후 수익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배당할 수 있도록 소유권적 장치를 수립해 두어야 한다. 또한 국가공유지분을 단순히 국가의 재정수입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사회배당을 실시해야 할 이유는 플랫폼 경제의 생산성이 네트워크 효과에 놓여 있고 빅데이터의 주인은 사회구성원 모두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공유지의 설립과 플랫폼 경제에 대한 공유지분권 설정
이렇게 한다면, 플랫폼 경제가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아닌가의 논란, 또는 디지털 전환이 노동소득분배율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서 사회구성원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되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 '유지분권 플랫폼 경제'는 데이터 기술 R&D PIE의 역진성을 완전히 해소한다. 이러한 모델은 플랫폼 기업들에게 빅데이터 인클로저를 허용한 후 조세를 거둬들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공유부(common wealth) 배당 방식이 될 것이다.
공유지분권 모델은, 지속적인 조세 수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인클로저를 허용하고 결과적으로 공유부가 줄어들게 하는 모델보다 효과적이다. 더욱이 플랫폼 경제로 인하여 고용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면, 대중과세에 근거한 20세기형 복지국가 모델 또는 조세형 기본소득 모델이 지속가능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면에, 공유지분권 플랫폼 경제에 입각한 사회배당은 이러한 위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지속가능하다. 이미 진행되어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된 토지 인클로저에 대한 해법은 토지보유세와 토지배당의 결합처럼 조세형 모델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만, 지금 진행 중인 사태인 지식 인클로저, 빅데이터 인클로저에 대해서는 조세형 모델이 아닌 공유론적 대안이 훨씬 유용하며 근본적으로 정당한 접근방식이다.
공유지분권에 입각한 사회배당은 일찍이 제임스 미드(Meade, 1989)가 제안한 바 있다. 미드의 모델에서는 사회 전체의 주식자산의 대략 50%를 국가가 소유하지만, 국가는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으며 단지 배당권만을 행사한다. 국가공유지분권을 근거로 하여 사회 전체의 자산소득의 절반은 '사회 배당(Social Dividend)'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된다.
미드의 모델은 사회 전체의 주식소유에 관한 제안이라서 오늘날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는 난감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 모델을 데이터 기술 R&D PIE에 적용하여 데이터 기술기업에 대한 퍼주기가 아니라 향후 플랫폼 경제에 대한 공공지배와 사회배당을 실현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데이터 기술 R&D PIE의 초기 자금은 조세로 형성된 국가재정이며, 결국 국민이 낸 것이다. 이에 대한 소유권을 자본을 조달한 국민이 가지며 수익도 국민에게 배당하는 것은 자본주의 소유 원리에도 합당하다.
특히, 국가가 공유지분권을 통해 거둬들인 이익을 일반 재정에 편입시키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배당해야 하는 이유는 설령 공유지분권의 법률적 소유자가 국가라고 하더라도 그 수익은 빅데이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에 대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동소유는 나머지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민간기업에 대한 과세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1조 원의 재정으로 시작한 플랫폼 경제가 발전하여 적어도 한국어 사용권에서는 중국어권의 플랫폼 기업인 알리바바나 텐센트처럼 비중이 커진다면 그만큼 공유부가 증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데이터 기술 R&D PIE는 공공데이터의 개방이라는 매우 민감한 탈규제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이 문제에서 비식별 기술이나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공공데이터의 소유권이다. 즉 공공데이터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소유이며, 따라서 공유지분권 플랫폼이나 공공플랫폼에 대해서만 개방해야 한다.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시가 2016년 채택한 디지털 아젠더(Digital Agenda)는 '시 데이터 공유지(City Data Commons)'를 법률적 체계로서 형성하고 상업적 이용은 플랫폼 협동조합이나 공공플랫폼에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한 경우에만 공공데이터 개방이 빅데이터 인클로저가 아닐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기업에게 빅데이터라는 공유 자원을 퍼주는 꼴이 된다. 데이터 기술 R&D PIE를 처음부터 공유지분권 모델과 결합시킬 필요성은 이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울러, R&D PIE의 또 다른 영역인 민간참여에 대해서도 단순히 기업참여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빅데이터에 대한 공동소유권에 입각하여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데이터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알고리즘도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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