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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클릭'이 정치인 안철수의 답인가?

[시민정치시평] 중도후보냐 포괄후보냐

만약 역사의 저울이 공평하다면, 지난 시기에 노무현 정부가 죽을 쑤어 이명박 정부에 바통을 넘겨주었으니 이번에 이명박 정부가 죽을 쑨 다음에는 민주진보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올해 선거는 그런 순리가 통할지 불투명하다. 침몰 중이던 집권 여당이 4월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했으니 대선에서 민심의 향배가 어디로 향할지 참 알기 어렵게 되었다. 그 와중에 보수의 쇄신과 변화를 내세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과거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지지율을 까먹은 것이 위로가 되기는 한다. 자연연령은 이미 회갑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시대를 보는 역사적 정신 연령은 20대 '유신공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니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변화라는 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밀리고 밀리다 코너에 몰린 그녀가 마침내 제법 수위 높은 사과를 했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성찰과 진정성 있는 사과라는 게 결코 일회성 코스프레로 끌날 일은 아니지만 온건 보수와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데는 효과를 좀 보지 않을까. 그렇지만 문제는 남 걱정이 아니라, 민주 진보 '진영'에서 오만 불통의 이 여당 후보를 자빠트릴 자, 구체제를 발본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새 미래를 열 수 있는 용자는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진보개혁쪽의 변화와 쇄신이 문제다. 민주통합당에 대한 국민 대중의 깊은 실망감은 쉽게 달래기가 어려운 상태다. 온갖 구태를 만천하에 폭로한 통합진보당은 대선 국면에서 거의 변수가 안 될 것이다.

<생각>과 포괄후보로서 안철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인 그가 마침내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보기 드물게 천재적인 재능과 융합적 사고를 지닌 사람, 끊임없이 새 경계에 도전하며 사심 없이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CEO이자 교수인 그는 사실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굳이 정치를 안 해도 높이 칭송받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받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시대가 던져준 숙제를 감당하겠노라고, 낡은 정치를 바꾸겠다고 현실정치인이 되는 다리를 건넜다. 안철수는 이제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랐다.

▲ 안철수 무소속 후보.ⓒ프레시안(최형락)

나는 안철수가 한국경제를 두고 '삼성동물원', 'LG동물원' 상황에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을 때 아주 크게 공감했다. 그렇지만 그를 잘 알지는 못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청춘 콘서트'(학생들은 '청콘'이라고 한다)에서 학생들, 그리고 2030 세대가 그이 앞으로 엄청나게 몰려들 때도 '왜 안철수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고, 내가 밥 먹고 사는 춘천 강원대에 그가 와서 강연할 때조차 들러보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도 불통 불안 대한민국이 그를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은 물론 했지만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정확히 어떤 지점에 가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강준만이 안철수에 대해 '분노하는 강남 좌파'라면서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적임자'라고 말했을 때도 반신반의했고, 좀 더 '중도'로 가도록 권유했을 때는 더 의구심을 가졌다. 적어도 정치적 입장이나 식견에 관한 한, 내게 안철수는 풀어야 할 일종의 "X 파일"같은 것이었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멋진 책자를 읽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안철수의 정치적 지향점, 또는 좌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거꾸로 <생각>을 읽고 나서야 청춘 콘서트가 갖는 의미도 새롭게 다가왔다. <생각> 그리고 청콘은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복지, 정의, 그리고 평화의 세 가지로 명쾌하게 제시했다. 무엇보다 오늘날 주요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사회경제 민주화의 과제와 관련하여, 대한민국이 양극화와 격차의 심화로 거의 '공멸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그 중심에 기득권의 과보호 구조 즉 '삼성동물원'으로 표현되는 재벌 독식구조가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각>은 국민들 누구나 , 그리고 이해당사자 모두가 경제주체로서 공정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도록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로 가려면, 주주자본주의와 재벌의 고삐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내게 안철수는 한국에 착근된 어떤 창조적인 '조정된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패자를 버리고 짓밟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구체제, 개발독재이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확대 심화된 강자독식과 무한경쟁의 낡은 문화 및 사고 전반을 극복해야 한다고 안철수가 힘주어 말했을 때, 오늘날 재벌의 부가 결코 자신들만의 부가 아니라, 노동자와 국민들의 희생에 힘입은 것인 데도, 재벌들이 모든 걸 제 스스로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이익을 독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질타했을 때 큰 울림이 있었다. 내가 <생각>의 안철수를 높이 평가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철희는 안철수가 "반MB진영의 다양한 세력을 최대한 결집할 수 있는 포괄후보 (catch-all candidate)"라고 적절히 지적한 바 있는데, 나는 바로 <생각>이 그런 '포괄후보'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해 <생각>이야말로 '안철수 현상'에 부응하면서 민생연합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가치와 인식, 대강의 전략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서 안철수는 루즈벨트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는 이 또한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민생연합을 구성하는 포괄후보로서 자각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그가 대선후보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필마단기인 그가 좋은 생각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실현시켜 낼지, 현실과 부딪쳤을 때 생각이 어떻게 굴절될지 하는 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그 때문에 나는 재벌 그리고 관료를 길들이는 문제라는 게 "안철수 할아버지가 집권해도" 봉착하지 않을 수 없는 만만찮은 도전임을 강조하기도 했던 것이다.

안철수의 출마선언과 우클릭

과연, 생각과 현실은 다른가 보다. 아니면 내가 안철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생각>을 과도하게 아전인수격으로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안철수가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둔 며칠 전부터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안철수의 경제멘토로 캠프에 깊이 결합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나로서는 생뚱맞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회견 당일,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가 확실히 대선 출마선언을 하냐 마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나는 과연 이헌재가 동석하는지를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기자회견장에 이헌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뿐만 아니라 이후 안철수 캠프 정책기획팀장을 맡은 이원재를 통해 "이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하신 분"이고,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가 계속 위기라는 사인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전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위기관리 능력과 혁신·개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합쳐지면 좋은 한 쌍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김대중 정부에 대해 "경제 위기는 넘어섰지만 양극화는 심화됐다"고 보고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공은 권위주의 타파, 과는 재벌의 경제적 집중과 빈부 격차 심화"라고 평가해 놓고서, 경제적 집중과 양극화 심화를 맨 앞에서 진두지휘했던 인물을 '경제멘토'로 불러들이다니 이게 과연 쉽게 납득되는 일일까? 현실정치를 하려면 경제 관료와 결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이헌재 같은 '구정치' 인물을 새 정치를 표방하는 안철수표 경제정책의 대표 인물로 내세우다니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내게 안철수의 대선출마 기자회견이 퍽 놀라웠던 것은 단지 이헌재의 등장 만은 아니었다. 기자회견의 기조 자체가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안철수는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시대의 숙제라는 게 뭘까. <생각>에서는 사회경제적 의제가 전면에, 중심적인 시대 숙제로 제시되었다. 재벌 독식으로 양극화와 민생불안이 심화되고 그리하여 공멸 위기에 처한 구체제, 그런 문화 및 사고방식과 결별하는 일, 모두가 경제주체로서 공정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고 패자가 부활할 수 있도록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수립하는 일이 중심적인 시대 숙제였다. 그 반면에 출마 회견에서는 '통합'이 제일의 슬로건으로 올려졌다. 그는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라면서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로 가자고 말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면서 통합을 사회문제의 해결보다 앞세우고 있다. 물론 <생각>에서도 통합의 리더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회견에서 말하는 통합의 정치는 '증오의 종언'또는 쉽게 말해 타협이 2012년 대선의 시대정신이라고 하면서 더 '중도'로 가도록 권유한 강준만류의 생각에 화답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정치에서 이른바 '중도 통합'의 슬로건은 유서가 깊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국민대통합'을 내건 것 또한 '중도'를 잡기 위한 것이라 하겠는데 안철수 대선 전략의 초점도 이를 겨냥한 셈이다. 이에 따라 안철수의 회견에서 시대 숙제의 중심 내용은 이동한 것 같다. 안 후보는 회견에서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이 '새로운 변화'의 슬로건은 '통합'이라는 슬로건과는 엇박자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해서는 어떤가. 안철수가 말하는 요지는 대충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가 주로 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민주통합당에서는 시장개혁도 중요하나 근본적인 재벌 지배구조를 바꿔야 장기적으로 효과가 영속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철수 자신의 기본 원칙이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주의적 접근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고,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이런 이야기다.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성장 동력을 가진 상태서만 가능하다. 그 둘은 자전거 바퀴 두 개와 같다. 둘 간의 선순환을 빼고 경제민주화만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바퀴 하나뿐인 자전거다."

위의 생각에서 안철수는 민주통합당의 개혁론을 근본주의적 접근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연 민주당의 개혁론이 근본주의적 접근이라 문제인가? 그리고 안철수는 성장 동력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는데, 이것 자체는 지금은 새누리당이 선점한 꼴이 된 경제민주화 의제에만 맴돌지 않고 자신의 강점을 잘 치고 나간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 동력 또는 성장의 질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대목이 약화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문에 "개혁은 뜨뜻미지근할수록 좋다"라고 보는 이헌재류의 생각이 침투해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중도후보냐, 포괄후보냐

이상과 같이, 나의 눈에는 <생각>에서 피력된 출마선언 이전의 안철수와 출마 선언의 안철수는 퍽 다르게 비친다. 그가 제시하는 시대의 숙제, 낡은 체제, 새로운 미래라는 말 모두에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그래서 안철수가 추구하는 '2013체제'가 어떤 모양이 될지도 새삼 궁금해진다. 나는 좌절하고 미래 불안에 떨고 분노한 20+30+40 세대들이 '닥치고 변화'를 위해 '안철수 현상'이라는 새 물결을 일으킨 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가 보기에, 청콘에서 <생각>에 이르는 안철수가 "반MB진영의 다양한 세력을 최대한 결집할 수 있는 포괄후보"의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면, 출마선언의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사이의 제 3의 길 또는 틈새에 터하려는 중도 후보로 우클릭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깃발을 중도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 이 안철수의 정치적 선택은 과연 '안철수 현상'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안철수에게 던지는 나의 물음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줄푸세'가 단지 이명박과 박근혜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철수도 지적한 바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 또한 그 함정에 빠졌고 특히 후반에 죽을 많이 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치 신인 안철수 자신은 ? 그는 혹시 대선 정치 셈법에 치중하다 너무 일찍 현실과 타협했다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줏대 또는 뚝심- 정치적 영혼은 너무 거창한 말이고-이 약하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로 가자는 건 좋은 말이다. 중도, 중간 지형에 터해 독자적 기반을 넓히려는 전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공 극우독재와 시장만능주의가 중첩돼, 뿌리 깊게 똬리를 튼 기득권 동맹체제는 어떻게 하나? 안철수 자신도 말한 바, 양극화와 미래 불안을 심화시키고 다수 대중에게 공정한 실질적 기회를 박탈하는 '기득권 과보호구조'는 어찌할 것인가. 그걸 대충 덮어 두고 통합 또는 타협의 정치로 가자는 것인가. 안철수의 중도지향 정치와 전략에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한 숙고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포괄후보로서 자신의 위치를 너무 쉽게 다운그레이드시킨 게 아닌가.

안철수의 '새 정치' 역시 신자유주의적 줄푸세와 모두를 위한 경제민주화 사이 어디쯤에서 정박할 것이다. 내 말의 요지는, 그가 너무 일찍 줄푸세 쪽으로 '우클릭 조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산토끼에 욕심내다 집토끼까지 잃는 실수를 하게 되지 않을지'(홍헌호), 높은 지지율에 취해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된 열망에 응답하지 못하고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포괄후보의 위치를 쉽게 저버림으로써 민주통합당 혁신을 강제할 힘도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루즈벨트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루즈벨트가 당대의 기득권체제, 미국식 재벌 독식체제와 얼마나, 어떻게 치열하게 싸웠는지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중도후보냐 포괄후보냐, 안철수 후보의 미래는 아직 열려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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