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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안철수는 동일한 문법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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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과 안철수는 동일한 문법의 표현이다"

[시민정치시평] 민주당, 시민적 권력을 위해 복무하라

1. 대선이 불과 석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5.16 쿠테타가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고 믿는 박근혜 후보가 한국판 루이 보나파르트로 등극해서 결국 '신-유신체제'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단일화를 통해 판세를 바꿀 수 있다는 실천적 낙관주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나로서는 솔직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민주당 단독 집권은 거의 불가능할 것임에 틀림없다. 어떻게든 박근혜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많은 반-박근혜 표가 민주당 후보에게 결집될 수는 있겠지만,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아주 견고한데다 민주당은 지금껏 스스로가 못나 늘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곤 했다. 이번에라도 다를까 싶다.

안철수 원장의 승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가 그 동안 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지지 응집력도 많이 약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무런 정당 기반 없는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호소가 얼마나 먹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호소가 막연한 기대를 넘어 안정감 있는 국정 운영에 대한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여 많은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게 할 수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될 그에 대한 '더러운' 네거티브 공세 같은 것 보다는 정권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회의가 그의 승리에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서, 단일화는 하나의 지상명령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일화가 말처럼 쉽지도 않을 것이고 또 설사 그게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승리를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진짜 문제가 있다. 여러 가지 정치공학적 계산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설득력 있는 방안이 제시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느 쪽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든 승리를 가능케 할 양쪽 지지자들의 열광적 응집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도무지 자신할 수 없다. 단순한 '투표율 높이기' 운동 같은 것만으로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루빨리 구체적인 비전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받아들이기가 편치는 않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 원장 쪽으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민주당의 도움 없이 안 원장은 승리할 수도 없고 승리하더라도 그의 정권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설사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의 정권은 어떤 식으로든 민주당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차기 정권은 상당한 정도로 민주당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사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겠다고 분명한 의사조차 밝히지 않은 사람에게 그렇게 압도적인 국민적 열망이 투영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민주당 잘못에 기인한 것이다. 통합진보당마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자폭해 버린 마당에 못미더워도 민주당이 그 잘못을 어떤 식으로든 속죄하고 제대로 서게 하는 것, 우리는 지금 단지 거기에만 기대어 신-유신체제의 등장을 저지할 수 있다. 참으로 고약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 많은 이들은 지금 안철수 현상과 민주당의 위기를 보면서 정당정치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확실히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위기가 또한 시민정치의 위기이기도 하며 우리가 그 위기를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통상적인 인식 틀 속에서 보면 그 원인도 해법도 제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민주당 위기의 원인은 바로 지금껏 그 당이 시민정치와 제대로 결합하지 못한 데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시민 전 장관은 한국의 선거 지형이 '기울어진 경기장'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막강한 정치와 경제 권력은 물론이고 종교나 언론 권력 등이 함께 뭉친 기득권 및 특권 카르텔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권력 지반은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권력의 복합체가 제공하는 이익의 동인은 너무도 분명하고 그 헤게모니는 너무도 강고하다. 우리는 그 동안의 선거에서 그 응집력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정말 무섭게도 확인했더랬다. 안타깝게도 민주진보진영에는 그런 사회적 권력 지반이 너무도 약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민주진보진영은 또 다른 종류의 사회적 권력 지반을 찾음으로써 이 경기장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강남 사람'의 계급의식에 맞서는 '강북 사람'의 계급의식을 고취시키자는 식의 방향에 해법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겠고, 강력한 노동 운동 같은 대항 사회적 권력 지반도 무시할 수는 없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의 힘은 상대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과 그에 기초한 진보정당 운동은 지금 민주당보다 더 큰 위기에 빠져 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진보진영의 권력 기반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적 권력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른 권력, 곧 '시민의 힘'에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명이 가르치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바로 그 힘 말이다. 이 시민적 권력은 본질적으로 이익의 논리에 기초한 사회적 권력과는 그 근본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것의 핵심은 한 마디로 '민주적 연대성'에 대한 추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곧 같은 정치적 운명 공동체의 공동의 성원이라는 데 대한 자각 위에서 시민들 스스로가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의 원칙 위에서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더욱 더 민주공화국답게 만듦으로써 모든 시민의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려는 모든 집합적 노력 속에 그 시민적 권력이 있다. 이것은, 가령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지켜내었고 평생을 공동선을 위해 헌신해 온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힘으로, 사회적 권력과는 다른 문법을 통해 발현된다. 안철수 현상 또한 바로 이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내 생각에 보수적이고 심지어는 반동적인 뿌리를 가진 민주당이 오늘날에 이르러 얼마간의 민주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정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민적 권력이, 사실 못 미더워도 딱히 다른 대안이 없어, 민주당을 자신의 요구를 실현시켜 줄 도구로 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이런 시민적 권력의 위임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할 때 마다 위기를 반복해서 겪어 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고, 지금의 위기 또한 그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3. 정당정치 또는 제도정치와 시민정치의 이분법은 잘못이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옳지만, 너무도 고리타분하게 교과서적이다. 적어도 민주진보진영에게 그 둘은 곧 하나다. 민주당은 말하자면 시민적 권력의 대리자로서만 올바른 정당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시민적-민주적 연대의 논리에 따라 강고한 사회적 권력을 규제하려 하는 시민적 권력의 민주적 도구로서만 그 참된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시민정치와 제대로 접속하지 못해서 위기를 맞은 것이지, 정당정치 그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정당으로서의 성공은 시민적 권력의 요구와 문법에 충실할 때에만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이 점에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기껏해야 시민운동 출신 명망가 몇을 영입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형식적인 결합은 했어도 올바른 시민적 권력의 요구와 문법에 충실하도록 혁신은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사회적 권력의 논리에 따른 기성 정치 문법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했고, 결국은 시민들이 마련해 준 밥상을 차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민주당은 지금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실천적 낙관주의를 완전히 버리지는 말자. 이미 늦기는 했지만, 민주당이 스스로의 운명과 참된 정체성을 제대로 깨닫기만 한다면 결정적으로 늦지는 않았다고 믿어 보기로 하자. 안철수 현상을 빚어 낸 장본인이기도 한 민주당이 이제라도 시민적 권력의 문법에 충실한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면(가령 안원장에 대한 일방적 양보 요구나 지난 서울시장 경선 때 같은 경선 룰 몽니 같은 것은 더 이상 안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당 정권의 토대를 굳건하게 시민정치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성공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일은 민주당이, 설사 안철수 원장이 단일 후보가 되더라도 그를 확고한 민주당의 후보로 만들고 또 그 반대의 경우라도 그에게 투영된 시민의 열망을 제대로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지향과 조직과 운영 방식을 제대로 혁신할 수 있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민적 권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목소리 높여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지금 민주당의 위기가 단지 어떤 노선이나 정치적 구호의 위기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뢰의 위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명령을 받들겠다는 단순한 시늉만으론 안 된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민심이 '정치 신인' 문재인 후보에게 쏠렸던 것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것과 동일한 문법의 표현이다. 단순히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의 유산을 계승하되 그 실패로부터도 교훈을 얻어야지 결코 '노무현 프레임'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권력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시민적 대의에 헌신할 수 있는 시민적 권력의 올바른 대리자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다.

언제나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며, 무엇보다도 시민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거기서 표출된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어 내고 실현하려는 굳건한 의지와 신뢰할만한 능력을 보여야 한다. 심지어 필요하다면 무슨 포퓰리즘 혐의 같은 것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더 많이 시민에게 다가가고 더 근본적으로 시민의 열망에 부응할 일이다. 이렇게 자신이 시민적 권력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시킬 수 있게끔 정치 행태와 양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 때에만 민주당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것만이 우리 시민들을 신-유신체제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시민사회도 나서야 한다. 시민사회는 민주당이 바로 이런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견인하고 올바른 단일화 과정도 이끌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대표성과 신뢰성을 갖춘 전국 단위의 시민정치 조직체의 결성을 위한 노력 같은 것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서 문재인 지지냐 안철수 지지냐 하는 문제 따위는 아주 사소한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올 해의 대선 과정은 단지 특정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굳건한 시민정치의 토대 위에 선 제대로 된 정당정치의 확립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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