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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학원, '박정희' 이름은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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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학원, '박정희' 이름은 빼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68>소유과정·인물평가도 검증 필요

이른바 '박정희 대학원'이 엊그제 2012학년도 1기 입학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정식 이름은 '영남대학교 박정희 정책 새마을 대학원', 이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앞에 내건 국제 특수대학원이다. 새마을학과와 공공정책리더십학과 등 2개과에,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15개국에서 온 정치인·사회운동가·고위공무원들 30명과 내국인 2명해서 모두 32명이 신입생으로 등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사정이 매우 풍족해 보인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전원 장학금과 월 100만 원씩의 생활비에 기숙사가 제공된다는 설명이 있다. 영남대 측은 이 대학원에 경제학, 지역학, 복지행정학, 산림자원학 등의 전임교수 14명을 배치했다고 했다. 대학원 명칭에 '박정희'라는 특정인 이름이 들어간 것은 우리가 짐작 할 수 있듯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닐까싶다.

영남대는 그동안 입시부정 사건으로 20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었으나, 2009년 정상이사 체제로 바뀌면서, MB정부의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박근혜 후보에게 '설립자 유족' 자격을 부여해, 7명의 이사 중 4명의 추천권을 주었다. MB정부가 사실상 박근혜 후보에게 영남대 운영의 전권을 준 셈이었다. 실질적인 '주인'의 자리에 앉혀준 것이었다.

비록 박정희 대학원 입학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으나(외부의 시선 때문이었던 듯하다), 효심 지극한 박근혜 후보는 이날, 안 계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랑과 긍지와 무량한 감개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는 견해를 달리하며 당혹감까지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작년 10월 박정희 대학원이 설립되었을 때 만해도 많은 사람들은 "설마"했던 게 사실이다. 영남대학교는 박정희 씨가 빼앗은 '장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판국에 이처럼 단숨에 본격 출범하리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홈페이지 ⓒ프레시안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앞세운 대학이나 대학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다른 대학도 아닌 '영남대학교'에, 다른 사람도 아닌 박정희 씨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대학원이 등장한다는 것은 차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요컨대 박정희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영남대학을 소유했으며, 박정희 씨 개인이 한 종합대학 대학원 명칭 앞에 이름을 내걸 만큼 추앙 받는 일생을 살다간 사람이냐는 질문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박정희 대학원 설립 이전에(그 보다도 더 훨씬 전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평가되고 정리되었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구나 박정희 씨는 철권통치를 시작하면서, 그 누구도 친일 행적이나 남로당 전력 등 자신의 과거를 언급조차 못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국민들이 '알고 싶고' 또 '알아야 할' 대목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많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도 재산 빼앗긴 사람이나 유신치하 피살자들의 유족 등 피해자들의 소송과정에서 단편적으로 밝혀진 내용에 불과하다.

다 알다시피 영남대학은 1967년 박정희 씨가 대구대(지금의 대구대와는 다르다)와 청구대를 통합해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설립이사 명단에는 박정희 씨가 빠져 있었으나, 1981년 개정된 영남대 정관에서 그는 '교주(校主)'가 된다. 사후(死後)에 교주가 된 셈이다. 2009년 정상이사 체제 복귀 후 그는 박근혜 후보 측 이사들에 의해 교주에서 '설립자'로 신분이 바뀐다.

교주가 된 이후 1988년 국정감사 등에서, 박정희 씨나 박근혜 당시 이사가 재단에 출연한 액수가 한 푼도 없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박 씨 일가가 영남대 주인이 맞느냐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권 포석 차원에서 아버지가 돈 한 푼 안들이고 '대학주인'의 자리에 앉았다는 비난에 대비하기 위해 교주를 설립자로 바꿨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찌됐건 돈은 한 푼도 내지 않았고, 사지도 않았으면서도 박정희 씨와 그의 두 딸은 사립종합대학의 주인도 되고 설립자도 되고, 이사장도 되고 이사도 되었다.

대구대학은 유명한 경주 최부자의 후손으로, 상해 임시정부 최대 후원자였던 최준(崔浚)이 1947년 설립한 대학이었다. 1964년 대학 형편이 어려워지자 최준은 이병철 당시 삼성회장에게 학교 운영을 맡겼으나,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이병철은 대학을 정부에 헌납한다. 이후락 씨가 중간에 들어 대학을 넘기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다.

청구대학도 약점이 잡혀 당시 중앙정보부의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이 1950년 '제2의 독립운동가 양성'이라는 기치아래 전 재산을 털어 세운 대학이었다. 1967년 경리부정과 신축교사 붕괴사고가 터지면서 형사문제가 생기자 이사회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설립자를 배제한 채 정부에 학교를 넘겼다고 했다.

의문이 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두 대학의 설립자들은 '대학을 자발적으로 헌납했다 치더라도', 정부에 넘겼는데 왜 그 대학들이 개인의 소유가 되고, 이른바 '영남대 설립자 유족'에게 사적(私的) 연고권이 생겨났는지 궁금하다. 그게 정의로운 일인가.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 측은 "자발적으로 헌납한 게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박정희 씨에게 '노후대책'으로 '대학 총장'을 권유한 사람들도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후락 씨가 박정희 씨 개인의 노후를 위해 영남대학을 관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슴 아픈 것은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이나 청구대학 설립자 최해청 모두, 개인적으로 일본 경찰의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까지 겪으면서, 항일투쟁에 재산을 바치던 독립운동가들 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귀하게 쓰던 재산이, 손가락 깨물어 혈서까지 쓰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던 개인에게, 고스란히 넘어간 대목이 참으로 참을 수 없이 가슴 아프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나 부산일보의 '장물'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그랬듯이, "영남대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박정희 대학원도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인 국민행복 캠프에서 기획조정 특보를 맡은 최외출 교수가 초대 원장이었다(현재 대학원장은 이재훈 교수). 최 교수는 영남대학 부설연구기관인 박정희 리더십연구원의 원장도 겸하고 있으며 박 후보의 정책자문역인 '5인 공부모임' 소속이라 했다.

박정희 리더십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박정희 씨의 사진이 '영원한 빛'이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와 있다. '소박한 서민, 한국인의 애환과 숨결을 읽을 줄 알았던 토종 한국인, 민족중흥·조국근대화가 삶의 본질 그 자체였던 대통령'이라는 자체 평가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피죽도 못 먹던 시절에 보리 고개를 몰아낸 대통령이기도 했다. 맞는 이야기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박정희 씨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은 아니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어떤 한 개인의 일생을 이야기 하면서 어느 한쪽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말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공과 과를 다 드러내놓고 평가하고 정리해 갈 필요가 있다. 특히 박정희 씨는 조명 받지 못한 측면이 다른 사람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일생을 산 사람이었다. 친일 행각과 남로당 조직책, 밀고, 인권탄압, 장기집권획책, 사법살인 등 결코 추앙 받을 수도, 용서 받을 수도 없는 참혹한 일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생이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들이 많았다.

박정희 씨 치하에서 이룬 소중한 경험을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가르쳐주고 지원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 후진국 인재들을 위한 새마을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오해 받을 수 있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인의 이름을 앞에 내거는 대학원의 설립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꼭 필요하다면 그 사람 일생에 대한 꼼꼼한 조명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때문에 지금은 새마을 대학원 정도면 족하다.

'박정희 대학원'에서 박정희란 이름은 빼는 게 옳다. 독립 운동가들의 재산이 아니더라도, 대학 같은 교육기관의 소유권이 특정 정치인의 손바닥 위에 놓이는 일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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