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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사회'가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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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사회'가 된 까닭은...

[기고] 이 나이에도 못 배운 것들

사람들이 즐겨 걷는 도시 근교의 둘레길은, 대개 성인 세 명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의 너비로 되어 있다. 세 사람이 팔을 자연스럽게 흔들면서 오고 가기에는 다소 좁다는 의미다. 그러니 누군가 혼자 둘레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반대 쪽에서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걸어오면 필경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상체를 살짝 도사리면서 비켜가야 된다. 누가 몸을 비켜야 할까? 혼자 걸어가는 사람? 혹은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중 한 명? "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요? 세상에!"

동네 뒷산에 있는 둘레길을 가보면 비가 조금 오는 날에도 우산을 받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날 혼자 우산을 받고 걸어가고 있으면, 반대쪽에서도 우산을 받고 오는 사람과 좁은 산책길에서 엇갈리게 될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도 서로가 부딪힐 염려가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우산을 받고 있을 경우에는 각자 가장자리로 약간 옮겨 걸음으로써 우산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네?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쓰지 않고 그냥 당당하게 걸어가면 상대가 알아서 피한다고요? 세상에!"

좁은 골목길, 혹은 이상하게도 아주 좁게 만든 도로 옆 보도를 걸어가다 보면,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과 팔을 부딪히지 않도록, 지나칠 때 한 쪽 팔을 조심스럽게 내 몸쪽으로 붙이거나, 아예 엉덩이 뒤쪽으로 팔을 조금 밀어넣게 된다. "네? 무슨 죄 지었냐고요? 상대에게 꿀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요? 세상에!"

도서관이든 관공서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면 여닫는 현관문들이 한결같이 크고 무거워서 새삼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 무거운 문은 앞 사람이 밀고 들어간 후에 놓아버리면 도로 뒤 쪽으로 닫히는 힘이 상당하다. 그래서 내 뒤로 사람이 따라 들어오는 기척이 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뒤를 한번 슬쩍 본 후, 혹 누가 뒤따라 오면 그 육중한 유리문을 그냥 놓지 않고 가볍게 잡고 있다가 뒤따라오는 사람이 문을 잡은 후에 손을 떼게 된다. 몇 미터 뒤에 사람이 오고 있다면, 그렇더라도 잠시 문을 잡고 있다가 마치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인계하듯이 조심스럽게 잡은 문을 넘기게 된다. 뒤따라 오는 사람은 아! 오늘따라 하늘의 구름이 너무 멋있어, 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네?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다고요? 그러면 내가 마치 구차한 '을'이 된 것 같아서 싫다고요? 세,세상에!"

둘레길을 산책하든, 도심을 걷든, 혹은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가든,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에서 내가 남을 배려하는 것은 크게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그 배려를 받는 상대방에게 이러한 행위는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지 같은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내가 이름도 모르는 어떤 타인으로부터 배려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그 날따라 흰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초등학교와 가정에서 당연히 배워야 했던 것들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내 또래 성인들이 유치원에서,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그것'을, 어렸을 적 부모에게 배웠어야 했을 '그것'을 학교도 부모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더 늦기 전에 어딘가에서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젊은 세대와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글쎄…)

도대체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연예인 가십거리와 보고 싶지도 않은 온갖 오락과 쇼로 가득찬 프로그램과 뉴스를 쏟아내고 있는 언론방송이 이제 이 역할을 담당해 주기를 바란다. 어디를 가야 맛집이 있고, 어느 연예인이 결혼했고, 어느 가수가 얼마짜리 빌딩을 산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최소한 공영방송에서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아예 없어지기를 바란다. 대신 그 자리를 교양 프로그램으로 채워주면 좋겠다. 자체 제작하든 해외의 그 고급스런 교양 프로그램을 사오든 말이다.

그래야 우리는 함께 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교통질서를 제대로 지키며, 환경을 보존하고, 학교에서 객관식 문제풀이를 이제 당장 집어치워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자각'하게 될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이 국회의원, 기자, 판검사, 의사, 교수가 되어서는 안되는지에 대한 확실한 '분별력'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사회'가 된 우리사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무시되어서 그런건 아닐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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