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방북해 거둔 성과는 놀랍다. 남북 간에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예방하는 조치 등을 포함한 광폭합의는 입이 벌어질 지경의 성취다. 문 대통령의 능라도 경기장 연설과 남북 정상 내외의 백두산 천지 방문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정도다.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에 관해서 명확한 철학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과 경로에 대해서도 뚜렷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 관계에 관해 큰 그림을 그리는데 더해 디테일까지 강한 정부를 믿고 지지하지 않을 시민들은 드물다.
부동산에도 큰 그림을 보여주길
하지만 부동산 문제로 넘어오면 답답한 마음 뿐이다. 내가 볼 때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민들에게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시민들은 치솟는 서울 아파트 가격에도 화가 나지만,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어떤 철학과 정책목표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하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들도 부동산에 관한 명확한 철학과 뚜렷한 정책목표 아래 나온다기 보다는 시장상황에 대응하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이 짙다.
나는 지금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에게 필요한 것이 세련된 정책조합이 아니라 부동산에 관한 철학과 정책목표를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즉 문재인 정부가 '이 정부는 불로소득을 용인하지 않겠으며, 토지와 천연자원은 모든 시민들과 후손들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공동의 가치이다. 이 정부는 부동산에 관한 이 같은 철학 아래 부동산 공화국을 점진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보유세와 공공임대제를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사용하겠다. 보유세를 통해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고, 중산층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양질의 공공임대 주택을 획기적으로 공급해 시민들의 주거불안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대통령의 육성으로 시민과 시장에 던지는 것이 긴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에 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정책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지를 시민과 시장이 분명히 알면 시민과 시장은 그에 걸맞게 스스로를 조직하는 법이다. 관건은 정부가 시민과 시장에게 무슨 신호를, 어떻게 주는가이다.
사회경제 개혁과 남북 관계 개선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남북 관계와 부동산 등 국내 문제는 확연히 다르다. 남북 관계는 지향해야 할 가치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명확하고,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과 경로도 비교적 간명하며, 국내 여론도 압도적으로(심지어 재벌조차) 우호적이다. 반면 부동산 등 국내에 산적한 현안들은 달성해야 할 목표의 설정부터 시작해 목표를 이루는 방법과 경로까지 모두 논쟁적이다. 게다가 여론도 이해관계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등 국내 현안은 현상유지(부동산과 교육을 보면 그것도 난망이다)에 만족하고, 남북 관계에 올인해 지지율을 유지하고 국정을 이끌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어렵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런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근본적 사회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둘 다 성공할 수 있으며 시너지가 난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회경제 개혁은 말(馬)에 해당하고, 남북 관계는 마차에 가깝다. 말이 마차를 끄는 법이지, 마차가 말을 끌 수는 없다. 일시적으로 마차가 말을 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건 곧 교정될 착시에 불과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