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정기적으로 받는 뉴스레터 중에 '서유기' 라는 이름의 뉴스레터가 있다. 서유기는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등장하는 소설의 이름이 아니고, '서울을 유혹하는 마을 만들기'의 줄임말로, 서울의 마을 풀뿌리 모임을 활성화 하는 목적으로 2012년 4월에 설립한 (사)마을에서 매주 발행하는 소식지이다.
이 소식지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제껏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마을 만들기'가 아파트가 점령해 버린 서울 한복판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결성되고, 준비모임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도시에서 우리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이웃과의 소통과 유대를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열망의 힘이 작용했는지 총 92개의 주민주도 민관협력 마을공동체 분포를 나타내는 '2012년 서울 마을공동체 지도'가 최근 인터넷 기사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속도감 있는 마을 공동체 활성화는 지역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지역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묵묵히 일해 왔던 지역 활동가들과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활성화 정책이 만난 결과이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활성화 정책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지난 3월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조례를 공포하고,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에 725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였으며, 7월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수탁기관 선정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부모커뮤니티 공동 교육', '마을예술창작소', 청소년을 위한 '마을 북카페'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2차 사업 공모(1차 공모는 7월에 실시)가 진행 중에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커뮤니티 발전정도에 따라 지원 대상을 '씨앗마을-새싹마을-희망마을' 3단계로 구분을 하여 교육 및 사업발굴에서부터 구체적인 사업계획의 실행까지 커뮤니티 발전 단계에 부합하는 사업 내용을 지원을 한다는 점이다. 획일화된 지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마을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큰 탓인지 걱정이 앞서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정책의지가 지나쳐 주민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압도 하는 것은 아닐지, 정부 지원을 계기로 사업이 급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또한 지원 기간 동안 시간이 있으니 어찌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런 걱정은 정부 주도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적기업육성 정책 경험에서 비롯된, 일종의 트라우마이다. 애초 시민사회 진영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던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의 제도화 이후 오히려 시민사회 진영의 주도성과 자발성은 후퇴하고 정부 주도로 이끌어지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예산 투입 방식을 통한 정부 지원 정책이 양적 성장을 위한 유인책으로서는 효과가 있었으나 질적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내적 동력으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1일자로 시행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의해서 현재 680개의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과 1000여개를 넘는 지자체 지정 예비사회적기업이 있다. 이들의 존립에는 정부의 인건비 지원정책이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법 시행이 7년차에 이르고 있는 동안 사회적기업의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은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현재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을 주된 사업 내용으로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은 다수가 근본적인 수익성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사업 내용 상 부가가치가 낮은 데 비해 보호된 공공 시장은 취약하고, 노동 능력의 취약성으로 인해 생산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 한계로 인해 면밀한 자기계획이 취약한 상태에서 정부의 지원 정책을 활용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자 했던 단순한 접근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늪에 빠지게 되었다. 사회적기업의 유인정책인 인건비 지원이 과잉 고용을 유발하고, 인건비 지원이 중단되면 시장의 취약성으로 인해 고용이 감소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한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진정성 있는 사회적기업가들 보다는, 자기전략이 부재한 채 정부 지원만을 믿고 사회적기업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정의 실적주의가 이를 부추긴다. 정부 지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실리주의가 우선하고 있어, 사회적기업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정부 주도로 육성되어진 사회적기업의 경험을 빗대어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우려하고 속단하는 것은 주체들의 면면을 일일이 파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의 경험은 반면교사로 충분히 삼을만한다.
너무나 잘 알려진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 공동체 성미산 마을은 현재 크고 작은 커뮤니티가 40 ~ 50개 이르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명실상부한 지역 공동체로 자리를 잡는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주민들의 필요를 상호협력을 통해 해결해 왔던 자발성과 협동정신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이는 협동조합의 도시라 칭하는 원주도 다르지 않다. 커뮤니티의 필요를 먼저 느낀 주체들이 있었고 그 필요를 주민들과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해온 세월이 있었다. 이들이 주는 메시지는 소통과 유대감을 통해 회복하려는 마을 공동체의 성장 동력은 마을 주민들의 참여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필요와 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들의 자발성과 주민들의 협동 문화가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되는 과정을 통해 강고해졌음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필요한 조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필요와 의지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정책을 대함에 있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망의 여유와 솔직함 그리고 진심이라 생각한다.
먼저, 우리는 알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의 마을공동체에 대한 필요와 의지라는 진정한 동력이 있어서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나서는 것인지, 정부의 지원정책이 주민들의 동력마저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의해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는 것인지 말이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반드시 사회적기업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서울시의 지원이 중단되었을 때도 꾸준하게 계획을 실천해 갈 수 있는 의지와 조건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자기 계획 수립과 긴 시간 투여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을 공동체 사업은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은 있을지언정 끝이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부의 자기만족적인 기획 사업은 재고해봐야 한다. 사회적기업의 부정적 경험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주민들의 필요가 기획되도록 해 지원을 받기 위한 정형화 된 '공식'같은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공통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에 '진짜' 필요한 사업을 기획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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