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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전환의 열쇳말,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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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전환의 열쇳말, 기본소득

[대전환의 밑그림 – 녹색전환연구소 5주년 기념 기획연재] ③

계속되는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의 심화와 고용 지표의 악화 추세는 우리 사회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위기란 소득불평등 심화와 고용 지표 악화 자체가 위기라는 뜻에만 국한되지는 않으며,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방향 역시 위기임을 의미한다. 플랫폼 자본과 플랫폼 노동의 등장과 발전, 생산성과 고용 간, 생산성과 (노동)소득 간 탈동조화 현상, 이윤의 지대화 경향(비단 부동산뿐만 아니라 인터넷·디지털·데이터 공유지, 택시, 주문배달 등에 이르기까지) 등은 우리 삶 전반에 걸친 지대 및 지대추구 행위의 증가, 1인가구와 노인인구의 증가 등은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노동을 더욱 불안정하게 하며 이와 동시에 완전고용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복지시스템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전체 시스템은 여전히 유급노동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이를 한층 더 강화시키고자 하고 있다.


예상컨대, 위에서 언급한 경향이 앞으로 지속되는 한편으로, 노동과 복지를 긴밀히 연결시키는 '고용중심적 복지정책'을 포함하여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현재 시스템을 계속 유지·강화할 경우,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노동빈곤층의 증가,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 증대, 생태적 부담의 가중 등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또한 유급일자리 하나를 인위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은 점점 증가할 것이며(특히나 임금, 사회보험 보장, 노동조건 등의 면에서 안정적이고 괜찮은 유급일자리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며), 고용률과 실업률이라는 총량 지표의 관리는 어느 정도 성공적일지 모르나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복지시스템의 문제, 즉 사각지대, 수급대상자에 대한 잘못된 판정, 상당한 행정부담과 행정비용, 억압적·징벌적·통제적 관료행정, 각종 덫(빈곤의 덫, 실업의 덫, 고용의 덫, 불안정의 덫 또는 불확실성의 덫, 관료제의 덫, 별거의 덫 등)의 양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잘못된 진단,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된 잘못된 해결방향이 커다란 문제를 낳고 있다. 유급노동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신성시하는, 유급노동을 현재 수행하고 있거나 과거에 수행했던 경력을 기초로 생계를 유지하는,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주식, 부동산 등에서 기인한 자본소득, 투기소득에 비해서 노동소득에 더 큰 세금을 부과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책은 엉뚱하게도 유급노동 중심성을 더욱 강화시키면서도 자본소득, 투기소득에 대해서는 거의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현재의 시스템을 전환시키기 위한, 노동소득에 더 큰 패널티를 부여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전환시키기 위한, 빈곤과 불평등,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 복지시스템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각종 문제와 부작용 등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기 위한, 노동·젠더·생태 차원에서의 해방을 진전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공유복지 정책이자 새로운 복지국가, 새로운 보편주의의 핵심정책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소득이나 자산 수준, 노동 의사나 노동 참가 여부에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급여이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복지(Welfare)정책에 속하지만, 다른 복지제도와는 달리 공유복지(Commonfare)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과거와 현재로부터의 자연적·사회적 공유부(wealth of commons)에 기인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공유재(공유지; commons), 공통유산(common heritage), 사회적 공통자산 등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 하에 논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기본소득은 노동빈곤과 실업의 공존, 광범한 비정규·불안정 노동, 상대적 빈곤과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오늘날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본적·사회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사회경제적 정책으로서, 복지국가의 기존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대체 또는 해체시키는 기획이 아니라, 현재의 복지 프로그램 중 일부는 대체하고 일부는 보완하면서 전체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과 함께 도입되어야 하는 하나의 제도라는 점이다.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노동연계복지(Workfare)의 강화를 통한 '낡은 복지국가'의 길이 아니라, 기본소득이라는 공유복지 도입을 통한 '새로운 복지국가', '새로운 보편주의'의 길이다. 기본소득과 함께하는 새로운 복지국가, 새로운 보편주의가 우리 삶에 가져올 전환의 몇 가지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보다 빈곤 및 불평등을 더 효율적·효과적으로 개선하고, 기존 복지시스템이 양산하는 각종 덫으로부터 해방시키며, 젠더평등과 생태적 전환에 기여하고,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이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민주주의를 촉진할 것이라는 점이다.

빈곤 및 불평등 개선 정책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을 상당히 개선시킬 수 있다. 먼저 한 사람의 생계 영위에 충분한 수준으로 지급되는 '생계수준 기본소득' 또는 '완전기본소득'은 정의상 적어도 절대적 빈곤은 완전히 없앨 것이다. 지급수준이 이보다 낮은 '부분기본소득'이라 할지라도 그 지급수준에 따라 빈곤을 유의미하게 경감시킬 것이다. 다음으로 불평등 개선효과를 보자면, 필자와 애니 밀러(Annie Miller) 교수가 증명한 바와 같이, 면세구간이 전혀 없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는 t% 평률소득세-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Flat Income Tax; UBI-FIT) 정책은 직접효과만 고려할 경우 지니계수를 정확히 t% 개선시킨다. 5분위배율과 10분위배율 역시 (비록 선형적이지는 않지만) t값에 커짐에 따라 상당히 감소한다. 현재의 소득분포 하에서 t% 평률소득세-기본소득 정책이 실시될 경우 이로 인한 순수혜비율은 약 65~70% 수준으로 분석된다. 만약 과세를 비례세가 아니라 누진세로 설정한다면, 그리고 국토보유세-토지배당, 생태세-생태배당도 더해질 경우에는 순수혜비율과 소득불평등 개선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존하는 개별 사회복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조세-급여 체계(tax and benefit system 또는 tax and transfer system)의 빈곤 및 소득불평등 개선효과와 비교해보더라도 상대적으로 우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빈곤과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는 단지 소득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소득 이외의 다양한 차원에서의 다차원적 빈곤·박탈 또는 사회적 배제 문제에 효율적·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에도 기본소득이 우수하다는 사실은 이미 1970년대 캐나다 마니토바주에서의 민컴(Mincome) 실험, 체로키 인디언 카지노 배당, 인도와 나미비아의 기본소득 실험, 2009년 노숙자 13명을 대상으로 런던에서 실시된 현금지급 실험, 그리고 기본소득과 가장 닮은 현존 정책인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 등의 사례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입증되어왔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현금지급은 주거, 의료, 교육 등 기본재로부터의 박탈을 줄이고, (특히 빈곤층의) 금융비용을 낮추고 금융접근성을 높이며, 경제활동을 증가시키고, 사회적·정치적 참여를 활성화하는 데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젠더평등과 생태적 전환의 기반이 되는 해방적 정책


현존하는 다양한 조건부 복지 급여와 서비스는 수급자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그들을 각종 덫에 빠지게도 한다. 일을 하게 되어 (노동)소득이 증가하게 되면 그만큼 복지급여 수급액이 감소함으로써 빈곤의 덫과 실업의 덫이 발생한다. 자산조사 기반 복지급여의 복잡성, 수급자격 획득 여부의 불확실성, 사정 및 급여전달 과정으로 인한 급여지급 지연 등으로 인해 임시직, 단기직 등의 일자리를 구하지 않게 되는 불안정의 덫 또는 불확실성의 덫도 나타난다. 수급자격 기준의 모호성과 담당공무원의 능력과 재량 문제 등으로 야기되는 수급자격의 오분류 문제, 이로 인해 초래되는 사각지대와 부정수급 문제 등에 기인한 관료제의 덫도 생긴다. 또한 혼자 살 때 보다 같이 살 때 수급가능성 및 수급액수가 낮아짐에 따라 별거의 덫도 발생한다.


기본소득은 현재의 조건부 복지프로그램이 초래하는 이러한 각종 덫들로부터 상당히 또는 완벽히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수급자격 오분류로 인한 사각지대와 부정수급 문제에서도 자유롭고, 관료제의 덫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복지시스템의 억압적·징벌적·통제적 성격도 해방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혼자 살 때보다 같이 살 때 소비에서의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in consumption) 면에서 유리하게끔 하여 오늘날의 1인 가구 (및 이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공급 소요) 증가 문제, 저출산 문제 등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노동시간 감축, 아동, 노인 돌봄 영역 등을 비롯한 사회서비스 정책의 확대, 젠더평등 지향적인 일·가정양립지원정책 마련 및 조직문화 개선 등과 동반될 경우, 기본소득은 유급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에서의 젠더평등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생애주기상의 특정 시점에서 각 개인의 유급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노동시간 배분이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측면을 줄이고, 각자의 형편과 선호에 따라 노동시간 배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확장시킨다. 또한 빈곤 문제를 경제성장과 개발로 대처하고자 하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의 압력을 유의미하게 낮춤으로써 생태적 전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생태세와 생태배당을 결합한 구체적인 정책은 저소득층의 경제적 상황을 이전보다 개선시키면서도 이들의 에너지 사용상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 계기를 조성한다.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높이는 경제민주주의 정책

일자리와 관련하여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남은 선택지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거나 매우 열악하고 힘든 것으로 보일수록, 사람들은 현재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힘든 상황을 감내하도록 강제 당한다. 매우 안타깝게도 그러다가 다른 선택지로 넘어가보지도 못한 채 자살(실제로는, 사회적 타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규직의 안정적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장시간, 고강도, 고스트레스의 노동과 위계적·수직적·비합리적 조직문화를 참아낸다. 비정규의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장의 생계를 영위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과 자신의 일을 대신할 잠재적 경쟁자들이 많다는 인식으로 인해 열악하고 힘든 현재의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견딘다. 정규직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인식 하에, 그리고 첫 직장이 어떠한지에 따라 향후 자신의 노동경력과 미래보수가 상당부분 규정된다는 인식 하에,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많은 청년들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릴지라도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하여 가장 빛나는 시기의 재능과 노력,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붓는다.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노동과 삶의 극심한 불안정성은 청년을 비롯한 개개인의 재능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혁신과 도전,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유급노동과 무급노동(가사노동, 돌봄노동을 포함하여), 여가, (재)교육과 (재)훈련 등을 재조직할 수 있게 하며, 개별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강화하여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개선시키는 경제민주주의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특정한 생애주기에 놓인 한 개인의 삶의 선택지에 '(잠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중요한 선택지 하나를 추가한다. 이로써 임금, 노동조건 등의 면에서 불합리한 사측의 제안 및 조치에 대해 실질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노동자 개개인에게 부여한다. 또한 노동조합에게도 기본소득은 일종의 '파업기금'으로서 기능하면서 기업 측의 부당한 제안 및 조치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부여하며, 생계유지와 차별대우 적용 등을 무기로 한 사측의 노조분열책동에 의해 흔들리는 정도를 (상당부분) 완화시킬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생애주기상의 한 시점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를 갖게 된 특정 개인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에서 언제든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된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모두에 기여할 수 있는 경제민주주의 정책이다.


아울러 기본소득이 유급노동 영역 밖에서의,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다양한 활동인 자원봉사활동, 노인 및 아동 돌봄노동, 생태·환경 보전 운동 등을 촉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필요할 경우, 참여소득을 기본소득과 나란히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은 생계 압박을 완화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 일하거나, 소유, 관리, 운영, 조직 등의 면에서 평등한 노동자 소유 기업(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을 포함하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기본소득은 이렇듯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삶 전환의 핵심 열쇳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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