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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군사문화 대물림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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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군사문화 대물림 받았나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66>다시 쓰는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

현역군인들로부터 필자가 칼부림 테러를 당한 것은, 군사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쓴 칼럼 때문이었다. 1988년 8월6일이었다. 24년 전 바로 오늘이었다. 그렇게나 오래된 이야기를 오늘 다시 꺼내 드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 군사문화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채, 오늘 이 나라에서 다시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 분명한 상황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군사문화는 힘으로 싸우거나 지킴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는 문화다. 때문에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일사불란이나 획일성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 때문에 군사문화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체제에 불편함을 느낀다. 때문에 군사문화는 민주주의 체제를 싫어하는 '태생적 한계'를 드러낸다. 다양함에 대한 그런 혐오감이 하나의 사건으로 표출된 게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자 한, 필자에 대한 '오홍근 부장 테러사건'이었다.

▲당시 필자가 받았던 편지 ⓒ프레시안
해방 후 이승만 씨가 건강한 민주국가 건설에 재를 뿌린 뒤, 4·19혁명으로 민주주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 장면 내각이 출범한 1960년 8월19일부터 불과 9개월 만인 1961년 5월16일, 이 땅에 군사문화는 점령군으로 짓쳐들어왔다. 이 나라 현대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다 알다시피 군사문화의 원조는 그래서 박정희 씨다. 전두환 씨가 뒤를 이으면서 "군사문화는 견딜만한 것"이고, "(일부 계층이지만) 협조만 잘하면 혜택도 돌아간다"며 국민들을 학습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군사문화는 병영(兵營) 안에 있어야 했다. 그게 군부대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오면 소리가 나게 되어있다. 5000만 명의 국민이 사는 나라에서는 5000만 개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그 많은 목소리들을 한 줄로 세워, 제식훈련 하듯이 이끌고 가고자 하는 게 군사문화다. 10월 유신에서 박정희 씨가 표방한 이른바 '능률 극대화'도 그런 류(類)의 것이었다. 허나 그것은 무리였다.

5000만 개의 목소리 가운데 최대공약수를 살펴 짚어가는 게 순리이고, 그게 민주적 절차였다. 그러나 그들은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없이 잔인무도하고 야비하기 까지 했다. 필자에 대한 테러 실행 방안을 놓고서도, 행동대원들이 상부에 올린 3개안(案) 가운데 제1안은 '오홍근 가족 몰살'이었다.

결재 과정에서 지휘관은 고맙게도(!) 제3안을 택해 주었다. 그게 '혼내주라'는, 왼쪽 허벅지 도륙이었다. 깊이 3~4㎝에 길이 34㎝의 상처가 난 칼질을 했는데도, 고등군사법원은 '군을 아끼고자한 충정'과 '피해자의 피해정도가 경미한 점'을 참작한다며, 주요 관련자 전원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당당함을 외면한 비겁한 판결이었다. 그런 게 다 병영 밖으로 무단 외출해 국민들에게 보여준 군사문화의 본 모습이었다.

때마침 88올림픽이 진행되거나, 이른바 민주화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가 터져 나와 국민들의 관심이 그 쪽을 뒤 쫓는 사이, 그들은 태연히 그렇게 일을 처리했다. 그해 연초 월간중앙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필자는 숱한 협박편지와 협박전화에 시달렸다. 그것들이 대부분 군(軍)에서 보낸 것들이었음에도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필자 테러사건이 터지면서 소리 없이 가슴앓이를 한 곳이 따로 있었다. 삼성이었다. 때마침 군이 발주하는 방산무기 수주와 관련해 대기업들이 총력전을 펼치던 무렵이었다. 삼성 산하 중앙경제신문의 일개 부장이 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글을 써, 골치 아픈 부스럼을 만든 게 문제였다. 삼성이 중알일보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이윽고 중앙일보에서 이상스런 작업이 소리없이 추진되고 있었다.

한참 뒤에서야 '피해자 측이 오히려 잘못했노라고 빌고 다닌'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필자는 경악했다. 사장 등 최고 경영층이 군 고위 장성들을 그루핑 해 거의 매일 밤 술자리를 마련하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해자"라며 "이해해 달라"했고, 장성들은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다는 이야기가 필자의 귀에까지 들렸다.

밤늦게 술자리가 파하고 승용차에 올라탈 때마다, 사장은 울었다고 했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를 부축하던 수행 직원의 증언이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가슴을 쳤다고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신문사 사장'의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분은 고인이 되어 있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분이 중앙일보를 떠난 뒤, 회사는 한동안 필자의 인사문제를 사전에 군부의 동의를 얻어 처리하고자 했다. 예컨대 "오 아무개 이번에 A부 부장으로 옮겨도 괜찮겠느냐"는 식의 협의 과정이 여러 차례 이루어 졌고, 그 때마다 나온 "안 된다"는 군부의 답변 때문에, 필자는 오랫동안 A부 부장자리에 갈 수 없었다. 신문사의 부장인사를 군대의 결재를 받아 시행하고자 한 것이었다. 당시 사원들은 다 안다.

심지어 그동안 쓴 칼럼을 모아 책을 출간 할 때도, 회사에서는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제목을 달지 못하게 했다. 병실에 누워 있을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만 보장 된다면 언론은 번듯하게 바로 설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이 빌고 다닌 상황' 이후 필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못지않게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

MB도 최시중 씨를 앞세워 그런 약점을 악용해 비열하게 언론의 숨통 조인 것을 우리는 목도했다. MB가 국민 우습게 본 것 또한 그런 선배 대통령들의 군사문화에서 배운 것임도 우리는 안다. 그런 군사문화가 이 땅에 발을 붙인지 반세기가 지나고, 필자에 대한 테러로 부터도 거의 한 세대가 돼가는 요즘,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것은 한국형 신화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내년 2월25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는 이야기는 달리 표현하자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도 된다. 그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새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건 그래서 초미의 관심사 일 수밖에 없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 나라 여당인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박근혜 의원을 놓고, 군사문화를 연상시키는 여러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그녀와 관련해서는 물론 좋은 이야기들도 많다. 허나 새누리당 안에서 조차 여러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다, 박의원 본인의 언행에 객관적 사실까지 겹쳐 바야흐로 심각해 질 가능성까지 엿보이고 있다. '사당화(私黨化)'니,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이니, '일사분란'에 '유신회귀', '수렴청정 대왕대비'란 소리도 들린다. 이런 것들은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박 의원 자신도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는 것을 전 국민의 50% 이상이 지지하고, 유신헌법을 80% 이상의 국민들이 찬성했다는, 터무니 없고 기막힌 소리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 박근혜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유신헌법이나 유신헌법 재신임 안건이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적어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국민투표가 정당한 절차와 공정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고 믿는 사람 거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비상사태와 계엄령이 선포되기도 하고, 투표 안건에 대한 찬반 운동까지 금지된 서슬 퍼런 분위기 속에서 투표가 진행되었다. 그게 다 국민투표에서 패배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해놓고 벌인 작태었다. 말하자면 '승리'가 100% 보장되도록 판을 짜놓고 밀어붙인 군대식 '작전'이었다.

박근혜 의원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보고 우겼는지 몰라도,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닌 유신헌법과 관련해 그런 거짓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박근혜 의원의 태생적 체질에 아버지 박정희 씨의 군사문화가 혈맥을 타고 흐른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군사문화식 고집을 부린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 전 국민의 70% 이상이 완전 국민경선제를 찬성했다. 다른 경선 후보들도 그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단호히 거부했다. 사람이 원칙과 룰(rule)에 따라 가야지, 사람에 맞춰 원칙과 룰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자면 박근혜 의원의 '원칙'에 대한 견해는 군사문화식 견해다. 군사문화에서 패배는 용납되지 않는다. 경선방법을 바꿀 경우 만에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경선 패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박 후보는 '원칙론'을 고수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는 논의·타협하는 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원칙도 바꿀 수 있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는 쪽이다. 그게 '원칙'이라는 말에 대한 민주주의 식 해석이라 했다. 합리적이고 타당성이 있다면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경선제에 대한 문제도 처음부터 사고방식을 달리 했다면 지금 같은 '망신스런 경선' 사태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과정을 전후해서 드러난 박 의원과 새누리당의 행태에서도, 그녀와 그 정당이 섬기고 있는 문화가 바로 전형적인 군사문화였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회 복도에서의 박 의원 말 한마디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정두언 의원과 사퇴하겠다는 이한구 원내대표의 가야 할 길이, 본인들이나 의원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리 결정되었다. 박근혜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두말없이 그리 되었다.

그녀가 복도에서 기자들에게 그 문제에 관한 '속내'를 말하는 사이, 의원총회 회의장에 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스마트 폰으로 박 의원의 발언을 검색해 서둘러 문자를 주고받느라 법석을 피웠고, 당 지도부도 그녀의 '뜻'을 받들어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나 의원들의 '좌우지간 바빴을 광경'이 눈에 선한 대목이지만 사실은 그게 다 박근혜 의원이 '그러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 보는 게 맞다.

아버지 박정희 씨 못지않은 그녀의 군사문화가 지금 새누리당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원조 박정희 씨로부터 흘러온 군사문화가 그의 딸 박근혜 의원을 통해, 획일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새누리당을 흠뻑 적셔놓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해야 한다며 기를 쓰고 노력한 기간이 건국 이후 10년 밖에 되지 않는 나라, 군사문화가 더 좋다고 섬기는 사람들이 그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말하는 나라, 우리도 민주주의 한번 본 좋게 해봤으면 좋겠다.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칼럼을 썼다가 식칼 테러를 당한 필자가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다시 군사문화를 청산하자는 글을 쓰고 있다. 참으로 감회가 한없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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