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프레임을 선점했다"는 보수 언론의 대대적 의미 부여에 도취된 이명박 대통령은 이게 얼마나 위험한 무기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총리 후보자가 낙마했고,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진땀을 빼는 동안 국민의 눈높이는 사전적 의미의 '공정'에 맞춰졌다. 그게 바로 '공정'을 바라보는 민심이었다.
이명박의 공정과 박근혜의 쇄신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박근혜 의원이 4.11총선을 치루며 내세웠던 고강도 '쇄신'이 슬슬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국회가 열리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관철시키려 하자 많은 의원들이 "내가 놀고 있는 줄 아느냐"며 반발했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복도에서 단 몇 마디로 반대 의견을 일축했다. 눈물을 머금고 세비를 반납한 의원들이 꽤 된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 불체포 특권 포기 문제가 터졌다. 새누리당에서 나온 최소 63표의 '정두언 체포 동의안' 반대표의 진상은 지금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돼 버렸다. 박근혜 의원은 16일 토론회에서 "당연히 통과돼야 하는 것이므로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다"며 "(의원들을) 너무 믿었다. 100% 믿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근혜 의원의 이 '믿음'을 배반한 사람은 누구인가? 없다. '박근혜식 쇄신'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애초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눕기에 적당하지 않은 '소형 사이즈'였을 뿐이다. 새누리당이라는 말을 빼더라도, 149명의 거대한 집단에 개인적 완벽함을 투영하고 있는 박 의원은 아직 이 사태의 원인이 뭔지 파악을 못하고 있다.
▲ 박근혜 의원 ⓒ네거티브 |
정두언 의원의 거취 문제만 봐도 그렇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지금 정두언 의원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박 의원은 "탈당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화살을 정두언 의원에게 돌려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만 가지고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식 쇄신'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탈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저축은행 비리 의혹으로 최근 기소된 새누리당 윤진식 의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탈당해야 하는가? 자신의 형이 구속된 새누리당 당원,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탈당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친박 핵심 의원은 "정두언 출당은 안된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대권 가도에 해가 되는 사람은 다 버린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도 "탈당은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박근혜 쇄신'의 부메랑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근혜 전 위원장을 위한 '쇄신 테스트'는 또 남아 있다. 대법관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다. 민주당은 이날 김병화 대법관 인사 청문 보고서 채택을 보이콧 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김 후보자는 위장전입 2건, 다운계약서 작성 3건, 세금탈루 3건의 위법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런 범법자가 대법관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내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 이후 "뭔가 쇄신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특히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의 브로커 박 모 씨와 절친한 관계였다는 점은 여러 의심을 낳고 있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수사 무마 로비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정두언 의원은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만 무성해도 "100%" 체포 돼야 맞는 것이고, 검찰 조서에 이름이 39번 등장하는 김병화 후보자는 100% 임명 돼야 맞는 것일까?
대법관 임명 동의안은 '박근혜 판사'의 '복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의 '공정'처럼 박근혜의 '쇄신'의 칼은 이미 스스로 살아나 거침 없이 국회를 헤집고 있다.
민주당이 인사청문보고서를 보이콧 하면 방법은 두가지다. 새누리당 이주영 인사청문위원장이 청문 보고서를 강행처리 하거나, 강창희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밖에 없다. 본회의에 김병화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올라가도 문제는 있다. 새누리당 의원 149명으로 단독 처리는 어렵다. 여권 성향 무소속 표를 합하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탈표가 단 몇 표라도 나오면 부결된다. 2000년 이후 대법관 임명 동의안 부결로 인한 첫 낙마 사례집 1번에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이름이 박힐 수도 있다.
'대법관 임명 테스트'를 넘겨도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내 이름을 파는 것(사람)은 다 거짓말이니 속지 않으셔야 한다"고 강조한 박 의원의 말을 뒤집어 보면 박근혜 "이름을 파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수면 위로 부각될 때마다 박근혜 의원은 쇄신의 칼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면 박근혜 의원 측은 '쇄신'이 부각되는 것보다 차라리 '네거티브'가 부활하는 상황을 기대할지 모른다. '공정의 덫'과 같은 '쇄신의 덫'은 이들에게 더 두려운 일일 수 있다. 한나라당 간판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박근혜를 'ㅂㄱㅎ'로 바꿨지만 새누리당의 체질은 단숨에 변할 수 없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을 내세웠지만 불공정한 관료 사회가 바뀌지 않아 마찰을 빚는 것처럼.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된다면 자신의 '쇄신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갈 수 있을까. 수많은 국무위원 낙마자들의 무덤 주변에서 떠나간 민심을 그리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박근혜 의원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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