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금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라면서 "한반도 평화는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가는 것이다. 특사단은 이를 명심하고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라며 브리핑을 마치었다. 그런데 정 실장이 언급한 특사단의 평양에 가서 북측과 논의할 3개항 중 2개항은 평양에 굳이 가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일정과 의제는 지난번처럼 판문점에서 논의 할 수 있는 문제이고 판문점선언의 이행은 지금이라도 5.24 조치를 해제하고,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등 남측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하면 된다.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남북 간의 논제가 아니라 조미간의 논제이다. 남북 간에 방안을 논의하고 아무리 좋은 방안을 도출하고 합의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합의된 방안을 받아들이고 따라주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실장은 브리핑을 끝맺기 전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특사단 평양 방문 과정에서도 미국과 정보 공유하고 또 긴밀히 협의 진행하고 있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이 발언은 특사단의 이번 방문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기 불과 하루 전 그의 방문계획을 취소시켜 버렸다. 이에 대해 필자는 지난 글에서 독특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및 거래의 방식(style)과 트럼프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미국 관료집단의 관성,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힘의 한계성이 뒤섞여 일정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 관련 기사 : 트럼프 트윗이 보여준,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들)
이전 글에서 이와 같이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실상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관료집단 간에는 트럼프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료들의 관성만이 아니라 이러한 관성을 이루고 있는 관료집단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갈등이 숨어 있다.
조미(북미) 정상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4개 항에 합의하였으며 합의문 제1항은 "평화와 번영을 향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양측이 적대관계를 끝내고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정상 간에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2항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것"이라고 명시됐는데 이것은 정전을 종전으로 바꾸고 조선과 미국 그리고 이해당사자인 한국과 이해 공유자인 중국 간에 평화조약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
3항에서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4항은 한국전쟁 중 사망한 미군유해를 미국에게 반환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조미 싱가포르 합의문 중 미국 관료집단, 그중에서도 펜타콘(국방성)이 수용하기 결코 쉽지 않은 것은 1항과 2항이다. 정전이 평화조약으로 종전으로 바뀌고 조선과 미국이 국교정상화를 이룬다면 한반도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미군이 주둔하여야 할 명분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미 싱가포르 합의문이 실행된다는 것은 펜타곤으로서 매우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점에 대해서 조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 : 당신이 말씀하신 안전보장에 관해서 말이지요, 김정은에게 어떤 안전보장을 주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군사력을 감소시키는 것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도 포함되나요?
Security assurance you talked about in your statement, Can you be specific about what assurance you are willing to give to Kim Jung Eun? Is that included reducing military capabilities, I just...
트럼프 : 아니, 아니요. 우리는 아무것도 감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또) 당신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듯이 (백악관을 주로 취재하는 기자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내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늘 말하였듯이 나는 우리 군인들을 철수시키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군인들을 조국으로 데려오고 싶습니다. 우리는 현재 3만 2000명의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고 나는 그들은 조국으로 데리고 오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한반도 문제를 푸는)방정식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는 나는 그렇게 되기를 (그들 모두를 조국으로 데려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돈이 들어가는 전쟁 연습들을 중단합니다. 앞으로 협상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많이 돈을 절약할 것입니다. 또한 이것(전쟁연습)은 매우 도발적인 것입니다.
No, no, we are not reducing anything. At some point, I have to honest, I used to say during my campaign as you know probably better than most. Uh, I want to get our solders out. I want to bring our soldier back home. We have right not thirty two thousand soldiers in South Korea and I would like to bring them back home.
But, that's not a part of equation right now. At some point, I hope it will be, but not right now. We will be stopping the war games which will save us a tremendous amount of money. Unless and until, we see the future negotiation is not going along like it should, but we will be saving a tremendous amount of money. Plus, I think it is very provocative.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트럼프는 지금은 당장은 하지 않겠지만, 조미정상 간에 합의의 사항들이 순조롭게 실행된다면 (그리고 이에 따라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 시키는 것이다.
필자는 일 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미국에서 보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것이 어떻게 회자되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트럼프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합의문의 진척상황에 따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에 되돌아와서 보니 이것이 한국에서 전혀 회자되지도 논의되지도 않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트럼프가 그의 기자회견에서도 상기시키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미국이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 시키든가, 아니면 한국이 더 많은 부담을 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으며 그것은 그의 대선 공약이나 마찬가지다.
조미 정상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조선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위의 싱가포르 합의문에 명시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미국의 실행여부인데 미국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를 관성적인 것을 넘어 매우 의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펜타곤이다.
펜타곤 문제는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유럽에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이었으며 미국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인젠하워가 퇴임 고별연설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y complex)'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커다란 방해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듯이, 미국에서 상존하는 문제이며 아이젠하워의 경고 이후 더욱 세력이 강해진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7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한반도 남쪽에서 유지해 온 주한미군을 기점으로 하고 있는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를, 비록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지만 트럼프라는 한 사람이 해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표면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의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펜타곤은 조미 싱가포르 합의문에 나타난 트럼프의 의도를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봉쇄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결국 트럼프는 이것을 정면으로 뛰어넘지 못해 조미 싱가포르 합의문을 실행하기 못하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그는 미국이 합의문 사항을 실행하지 못한 것을 중국이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애매하게 돌리고 현 상황(미국이 조선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폼페이오가 평양을 방문하는 것을 취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조미 싱가포르 합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정의용 실장이 춘추관 브리핑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국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조선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이며 정의용 실장을 수장으로 하는 이번 특사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트럼프의 메시지를 조선에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힌국의 특사단을 통해 상황이 어렵지만 조미 싱가포르 합의문을 이행하겠다는 의중을 조선에 전달하려고 한다. 트럼프의 의중은 아마도 (미국 측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하기 까지) 좀 더 기다려 달라는 것이든지 아니면 자신이 조만간 평양을 전격적으로 방문하여 조미 싱가포르 합의를 실행하겠다는 것으로 관측된다. 어찌되었든 트럼프는 자신 나름대로 난관 속에서도 합의이행에 대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한국이다.
트럼프가 이렇게 한국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소위 '북한문제'를 남북 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전에서 실상 한국은 빠져있고 미국과 조선 그리고 중국이 정전협정을 맺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미국이 참전한 'Korean War'는 남북 간의 전쟁에 미국이 한국을 도와 참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인은 단지 남북 간의 전쟁이 있었고 미국은 '(공산주의)북한'의 도발을 방지하고 (자유민주주의)한국을 지키기 위하여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는 한국의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이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하고 나아가 김정은의 답변을 받아 자신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한국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트럼프의 제안을 조선 측에 전달하고 답변을 받아 서울을 거쳐 워싱턴에 와서 자신에게 알리고 정의용 실장이 직접 세상에 조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알린 것과 같이 말이다.
그래야지만 트럼프는 '북한 문제'를 한반도 남북 간의 문제임을 미국 국민에게 다시 알리고 자신이, 또 미국이 이 문제 해결에 다리(bridge)가 되는 것임을 천명하여 본인의 기조를 밀고나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는 매우 기민한 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북한문제'를 한국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듯이 한국이 주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취하고 주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조미 싱가포르 합의도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특사단의 평양방문이 착찹하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은 무엇 때문에 이해 당사자이면서도 미국의 메신저 역할만 하려고 하는 것일까? 또 무엇 때문에 한국은 분단을 통일로 만드는 민족의 숙원을 이루고 갈등과 분쟁을 넘어 협력과 평화를 바탕으로 한 번영이 주도되는 21세기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동과 방관으로 일관하려고 하는 것인가?
정의용 실장은 그전에 했던 것과 같이 평양 방문 이후 다시 워싱턴에 가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그가 직접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이 트럼프를 평양으로 초청하였다는 사실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남북의 주동적이며 능동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국의 주체적인 입장과 그에 따른 실천이 다시금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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