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기록 없는 전국 최초의 재심 청구 사건에 대해 법원이 정식 재판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간의 치열한 법리다툼이 펼쳐질 전망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양근방(86) 할아버지 등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해 3일자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번 재심사건은 판결문이 없는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첫 재심 청구로 관심을 끌어 왔다. 군법재판 사건을 일반 법원에 청구한 특이 사례여서 재심 개시결정 여부가 쟁점이었다.
핵심은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되는 기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 입증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법회의 유일한 자료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수형인 명부다.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정치국민회의 제주 4.3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1999년 정부기록보존소의 보관창고를 뒤져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를 처음 발견했다.
수형인명부는 4.3사건 군법회의의 내용과 경과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문서다. 이 명부를 제외하면 재판과 관련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당시 군법회의의 근거가 된 국방경비법 제81조, 83조에는 소송기록의 작성과 보존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공판조서와 예심조사서는 빠졌고 판결문 역시 작성되지 않았다.
재심 청구를 위해서는 청구 취지와 재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재심청구서에 원심판결의 등본, 증거자료,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형사소송법 제422조(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에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해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제420조(재심이유) 제7호에는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를 재심 사유로 명시했다.
법률 대리인들은 재심 결정을 위한 재판 과정에서 제주4.3 당시 불법감금 된 사람들에게 형 집행을 요구하는 군(軍) 공문서를 제시하며 재판부를 설득했다.
군법회의 형벌 확정자의 집행 지휘 방법을 지시한 검찰의 문서도 발굴해 제출하는 등 재심 결정의 근거를 꾸준히 발굴해 왔다.
법원은 재심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이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군법회의가 재심청구인들의 재판권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수형자들을 수감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유권적 결정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절차적 적법성을 떠나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었고 청구인들이 교도소에 구금된 사실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기록 멸실 등의 사유로 재심 개시결정 이후 본안 심리가 곤란할 수 있다"며 "다만 이 또한 형사소송법상 입증은 검찰의 몫인 만큼 재판부는 본안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재심 청구를 지원한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늦었지만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공권력에 의한 명백한 폭력이 재판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 대표는 "인권을 유린당하고 옥살이를 한 수형 생존인들은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며 "검찰은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항고없이 정식 재판에 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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