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교육부총리 교체를 골자로 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고용과 경제 지표가 일제히 위기 신호를 보내고,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추세가 뚜렷해진 데 따른 국정 쇄신용 개각이다.
인사에 신중한 스타일인 문 대통령이 집권 1년 3개월 만에 5개 부처에 달하는 장관을 교체한 배경은 일자리 등 핵심 정책에서 국정 성과가 나오지 않아 당정청이 동시에 심상치 않은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정기조 유지 속 변화 모색
이번 개각은 이달 초 경제수석 교체 등 청와대 개편, 지난 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체제 출범에 이어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여권 전반의 전열 재정비를 완성한 의미가 있다.
이 정비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갈등설이 표면화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모두 유임시킴으로써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의 투트랙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야당과 보수언론이 강하게 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 폐기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문 대통령은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 달라"며 두 사람에게 고용 상황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당부하기도 했다.
'적폐청산'에 주력했던 집권 1년차 때와 달리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국정 운영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경제 투톱'을 중심으로 집권 2년차의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승부수로 보인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노동제를 이끌어온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의 바통을 이명박 정부에서 차관에 임명됐던 관료 출신인 이재갑 전 차관에게 넘겨줌으로써 노동 정책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국정의 또 다른 중요 축인 한반도 현안과 관련해선 남북, 북미 관계를 각각 조율해 온 조명균 통일부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유임해 교착국면 장기화가 예상되는 북미 관계 속에도 문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 구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잦은 구설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 파동에서 혼선을 빚은 송영무 국방장관은 논란 끝에 교체됐다. 국방개혁 후속 과제와 더불어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최근 불거진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논란 등 산적한 국내외적 과제는 정경두 합참의장이 책임지게 됐다.
지난 8월 합참의장 임명 때 국회 인사청문회를 순탄하게 통과한 점이 발탁 요인으로 꼽힌다. 공군 출신인 그를 새 국방부 장관에 지명함으로써 '비(非)육군 장관' 기조도 이어갔다.
여성 장관 3인방 주목
이번 개각에선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교육부장관에 발탁된 대목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노동운동을 거쳐 고(故) 김근태 의원 후원회 사무국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대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재선 의원이다. 교수 출신으로 경기도 교육감을 역임하며 무상 교육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김상곤 교육부총리와는 경력 면에서 차이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56세 재선 의원인 유 의원이 부총리인 교육부장관으로는 중량감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으나, 19대, 20대 국회 모두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으로 교육 현안을 다뤄온 만큼 전문성과 정무감각에서 뒤지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원만한 품성과 달리 정치적 소신이 뚜렷해 외유내강형으로 평가되는 유 의원은 친문 주류와는 거리가 있었음에도 지난해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발탁되었을 만큼 문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급 여성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던 문 대통령은 여성 인재 중용을 통한 '유리 천장 깨기'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유 의원과 함께 여성가족부 장관에 재선인 진선미 의원을 지명함으로써, 이번 개각을 통해 민주당에선 여성 의원들만 내각에 발탁됐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을 역임한 변호사 출신인 진 의원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판결, 성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수사당국의 남녀 편파성 논란 등으로 고조된 수사기관 및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털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로써 전통적으로 민심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동산과 교육 정책과 함께 올해 미투 운동으로 뜨거운 현안이 된 여성 정책 등 3대 이슈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유은혜 교육부총리, 진선미 여가부 장관이 책임지게 됐다.
까다로운 난제들을 정치인 출신 여성 장관 3인방이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 국정의 성패까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과 함께 양향자 전 민주당 최고위원도 차관급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지명돼 여성 정치인들의 고위급 공직 진출에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당정청 공조 강화…야당과 협치 숙제
이처럼 당정청 정비를 마친 여권은 향후 긴밀한 공조를 통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 하기로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이 29일 만나 손을 마주잡는 장면을 연출해 소위 '김앤장 갈등설'을 진화한 데 이어, 민주당 워크숍이 끝나는 내달 1일에는 청와대에서 의원단과 국무위원 전체, 청와대 수석들이 모여 오찬을 함께 하는 일정도 잡혀있다.
당정청은 또한 고위 당정 협의회를 매월 1회 정례화하고 비공개 고위 당정 모임도 매주 갖기로 하는 등 여권 전반의 공조 체계를 제도화하기로 30일 합의했다. 이해찬 대표가 이날 첫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민감한 문제인 종합부동산세 강화 조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당청 관계의 변화 의지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의 실질적인 집권 2기가 시작된 셈이지만, 각종 경제 지표 악화와 한반도 상황의 교착으로 난관에 부딪힌 탓에 돌파구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대여 공세를 벼르고 있는 야당과의 관계가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개각에서 국회와 소통이 원활치 않아 '협치 내각'이 성사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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