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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종북 마녀 사냥, '헌법 애국주의'로 돌파하자"

[시민정치시평] 이석기, 김재연, 임수경, 이상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극우와 극좌가 서로 통한다더니, '박정희'와 '김일성'의 기괴한 상부상조 관계가 다시금 확인되었다. 수구언론의 선창을 받아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박근혜 의원까지 그 보수 본능을 발휘하여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들도 그것을 빌미로 선거부정 문제를 희석시키면서 다시금 적에게 동지를 팔지 말라는 예의 뻔뻔한 진영 논리로 정치적 곤경에서 빠져 나오려 몸부림치고 있다. 비록 새누리당 쪽으로 역풍이 불 조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수 진영이 이 좋은 먹잇감을 그냥 묵혀 둘 리가 없다. 두고두고 써먹을 것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의 '새로나기'는 지지부진하기만 하고 당대표 선거에서 자주파 연대가 다시 이루어진다는데 이 당이 앞으로라도 과거 노선과 완전히 단절할 수 있을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공안 정국이 이런 방향으로 가도록 도운 셈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박정희 2세'가 아주 손쉽게 한국판 보나파르트 황제('나폴레옹 3세')로 등극하는 걸 지켜보아야 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진보 진영은 '사상의 자유'라는 인권 원칙을 통해 지금 같은 사상검증 정국의 광기를 드러내고 정치적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맞다. 그래서 이른바 '정면돌파'를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중세 마녀사냥 식 종북몰이라니, 어이가 없다. 우리 사회에 보수언론이 그리는 방식의 그런 '주사파'가 진짜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민주주의 국가란 단지 민주주의자들의 나라인 것만은 아닌 법, 주사파라도 단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폭력적으로 체제 전복을 꾀하거나 간첩 행위를 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에게도 온전한 정치적 시민권을 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문제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만약 새누리당이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을 '국가관'을 이유로 국회에서 제명하겠다고 나선다면, 정말이지 그것에 격렬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우리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옳다 하고 핵개발에도 미국 탓만 해대는 식의 그 동안의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노선이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 그 바탕에 깔린 정치적 세계관을 제대로 극복하여, 다시는 그런 노선이 진보 정치 그 자체와 동일시되어 오인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진보 진영 전체가 다 죽게 될 지도 모른다. 이건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정치적' 문제다.

그러니까 문제는 민주진보 진영 전체의 정치적 정체성과 노선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에서는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라 민주진보 진영 전체가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임수경 의원의 설화 사건만 해도 그렇다. 임 의원에게 종북 혐의를 덮어씌우는 행위의 정치적 악의는 명백하다. 그래서 임 의원을 치졸한 색깔 공세로부터 단호하게 지켜내기는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이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 전문가들은 낙마시키면서도 임 의원을 공천한 사실 그 자체의 문제성이 덮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통합당이 그녀를 비례대표로 공천했던 것이 당내 주류인 전대협 출신 정치가들이 과거 학생운동 시절의 NL적 노선과 정치문화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탓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무능함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진보 정치의 참된 정체성에 대한 불투명한 인식의 결과이리라. 어쨌든 민주진보 진영 일반의 바로 이런 식의 불투명한 정치적 노선이 우리 사회 분단체제 기생 세력에게 역설적인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민주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의 공세를 핑계로 이런 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이참에 제대로 검토하고 성찰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쉬운 해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문제의 성격만 보더라도 명백하다. 여기서 모든 문제를 다 논의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여기서 '헌법 애국주의'(나는 이를 '민주적 애국주의'라 부르기도 한다)라는 관점을 소개하면서 민주진보 진영이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려 한다.

'애국주의'라는 표현 때문에 혹시라도 오해가 생길지 모르겠다. 나의 초점은 지금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주진보진영 전체가 아주 적극적으로 우리의 헌법적 정체인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가치에 대해 헌신하는 그런 의미의 애국의 모습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민주진보 진영은 올바른 애국이, 보수에서처럼 국가라는 실체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한 참된 조건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원칙에 대한 충실성에서 성립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바로 그 방향에서 정치적 노선과 의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그럴 경우에만 보수 진영의 종북 공세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의 불투명한 정치적 정체성을 폭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정치적 무기도 벼려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논의 맥락에 비추어 짧게라도 필요한 만큼은 좀 더 설명해 보자.

피식민화를 경험했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일이지만, 피식민화에 더해 외세에 의한 분단까지 경험했던 우리나라에서 진보적 지향 일반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지도 모른다. 더구나 분단을 배경으로 민족적 정통성을 결여했던 친일 세력이 주류 지배 세력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진보적이면서 또한 얼마간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여기에 군부 독재 세력이 자행했던 광주 학살이 군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인식이 더해지면, 강한 반미주의 또한 지극히 정당한 진보 지향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근현대사는 좌파 민족주의적인, 광의의 NL적 진보 노선이 강력한 대세로 형성될 수 있는 풍부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배경 자체가 그 자체로 NL적 진보 노선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도 만약 그런 노선이 애초 자율적인 민주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지향에 그 참된 동기를 갖고 있음을 망각하고 '민족'이라는 가치를 물신화시켜 버리면, 그 진보적 정당성 상실은 오히려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민족이라는 가치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되었지만, 아주 손쉽게 애초의 정당한 동기를 집어 삼킨 채 폐쇄적인 전체주의 지향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그랬다. 우리 진보 진영 일부에서는 심지어 민주주의적 가치 일반을 미국적이고 서구적인 것으로 동일시하고 매도하면서, 너무도 자명하고 철저해야 할 진보와 민주주의의 연결 고리를 손쉽게 훼손시켜 버리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NL적 진보가 위기에 처한 참된 배경이다. 그 출발점인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독립된 민주적 정치공동체, 곧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원칙에 대한 지향을 언제부턴가 시나브로 놓쳐버렸던 것이다.

바로 이 '초심'을 회복해야 한다. 진보의 새로나기는 그와 같은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원칙에 대한 헌신이라는 출발점에 다시 서는 것으로부터만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바로 그 자율적인 민주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지향이야말로 NL적 진보 노선의 은폐된 동기였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이야말로 그 합리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노선의 많은 추종자들은 이 합리적 핵심을 민족주의와 섞어 버무려 불투명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반면 이 노선의 반대자들은 그 합리적 핵심을 무슨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적 애국주의와 혼동해서 놓쳐 버렸다. 그러나 국가가 그저 계급 지배의 도구일 뿐이라고 여기거나 민주주의를 부르주아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식의 접근도 올바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자유롭고 평등한 모든 시민의 연대적 정치공동체'로서의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실천은 자본주의적 근대성과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지며 자본주의나 시장 논리와는 본질적 긴장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오늘날 모든 진보적 지향들이 터해야 할 유일하고 참된 지반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안 문제들을 보자. 가령 애국가 논란. 물론 잘못된 국가주의는 경계되어야 한다. 가령 프로야구 경기를 하면서 국민의례를 행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주의다. 몇 년 전 아이를 보내려고 어느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더니 거기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애국 조회'를 한다고 했다. 이런 것도 우스꽝스런 국가주의의 표현이다. 또 시민 개개인은 누구든 애국가 부르기에 거부감을 표할 권리가 있다. 애국가의 미학적 수준이나 국가 지정 과정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시비 걸 수 있다. 그러나 다시금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에 의해 그 존재와 활동을 보장 받고 심지어 입법과 행정을 위한 권력을 위임받겠다고 나선 공당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무리 잘 이해하려 해도 정치적 소아병의 발로에 불과하다. 이건 결코 단순한 '양심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국민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는 문제도 아니다. 여기서 국민의례는 진보 정당이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가치에 대해 충실성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헌법애국주의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얼마 전 이상규 의원은 바로 그 양심의 자유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북한 문제에 대한 공개적 입장 표명을 거부한 적이 있다. 당연히 그 가치는 '자유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적 가치다. 그래서 그는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그럴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에 비추어 보면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 같은 것에 결코 침묵하지 않는 것이 일관된 태도일 것이다. 북한은 바로 그 양심의 자유 같은 것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서 비난 받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치가로서 그는 그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인권의 논리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것이 옳다는 심각한 정치적 자가당착을 범하고 말았다. 물론 우리는 다시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슨 반국가적 정치인으로 몰아서는 안 되겠지만, 진보 정치는 이런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외교적 접근에서의 '슬기로움'은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 진보 정치가 민주공화국의 근본이념에 비추어 북한의 인권 문제 같은 것에 대해 분명한 비판적 태도를 함께 보이고 평화주의와 상호인정 및 대화 원칙에 기초한 적극적인 진보적 접근법을 마련할 수 있을 때에만 보수 진영의 사상검증 식 공세의 반자유주의성, 반인권성, 반헌법성을 제대로 폭로하고 공격할 수 있다. 그리고 단지 그럴 때에만 아무런 실효성도 없고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성에 눈감는 등 인권의 본래 이념에도 어긋나는 '북한인권법' 제정 시도 같은 것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입에 달고 다니는 우리 보수 진영 전체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사실 그 진영이 결코 제대로 자유주의적이지도 못하고 민주주의적이지도 못하다는 데 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가장 원초적인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조차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지독한 정치적 아이러니다. 그러나 비웃지만 말고 이 아이러니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적) 민주주의는 결코 보수진영이 이야기하는 식으로 소유권의 절대화나 신성화에만 초점을 맞춘 그런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계승된 고전적인 경제적 자유주의와 개인적 자유의 정치적 실현에 초점을 둔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은 충분히 조심스럽게 구분되어야 하며, 정치적-자유주의적 가치들은 반드시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자가 아닌 경우에도 폭넓고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헌법적 가치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추구나 강력한 복지국가 지향 같은 것은 모든 시민의 평등한 자유를 위한 그 정치적-자유주의적 가치들의 실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바로 이런 것이 올바른 헌법 정신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이 진정한 싸움터가 되어야 한다.

어느 진영이 제대로 자유라는 가치에 더 충실한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민주적인지,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고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바로 이런 문제들을 둘러싸고 보수-진보의 정치적 전선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단지 이럴 경우에만 종북 마녀 사냥 같은 가장 치명적으로 반-자유적이고 반-민주적인 위헌적 정치 공방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민주진보 진영 전체도 친북 혐의 같은 데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은 언제나 각성된 민주적 시민들이 즐겨 불렀던 '촛불의 노래'를 들으며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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