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원내 진보정당 정의당 간에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의당은 각종 개혁 이슈에서 여당과 공감대를 보이며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측면 지원, 보수 야권으로부터 '2중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었지만,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 시도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인데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환경노동위원회 노동소위 배제 문제까지 불거졌다. 민주당도 정의당의 공세를 정면으로 맞받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정의당 "규제완화는 촛불 정체성 훼손…박근혜 창조경제와 뭐가 다르냐"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와 추혜선 의원은 23일 오전 당 정책위와 참여연대, 민변, 환경운동연합, 무상의료운동본부,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노총, 경실련,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의 규제 완화 시도를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정부·여당과 보수 야당이 8월 처리를 목표로 하는 규제완화 법안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정책들"이라며 "촛불 정부의 정체성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특히 "어떤 미사여구로 겉모습을 포장하더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혁신경제'로, '최순실법', '재벌특혜법'은 '규제혁신 5법'으로 부활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면서 필사적으로 막았던 그 법안들"이라며 "차라리 '과거 박근혜 정부의 좋은 법안들을 막아서 죄송했다'고 국민들께 사과부터 하는 것이 어떠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고 했다.
정의당과 참여연대·경실련 등의 문재인 정부 규제 완화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22일에도 국회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 참석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민을 대기업 시제품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며 "가습기살균제 같은 비극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정의당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16~17일에도 논평을 내어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고(☞관련 기사 : 정의당·시민단체, 규제완화 입법 드라이브 맹비판), 이달 7일에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함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반대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도 못 들어준 재벌 숙원, 문재인 정부가 왜?")
민주당 "불합리 규제 개선은 찬성해야…반대보다 대안 제시하라"
민주당도 반격에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3일 당 원내지도부 회의에서 "'규제혁신 5법'과 관련해서 정의당에서 여러 염려를 하시고 토론회까지 열어서 주장들을 하셨다"며 이례적으로 타 정당의 행사를 직접 거론했다. 김 의장은 "정의당의 우려에 대해 설명드린다"며 정의당과 진보적 시민단체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의장은 "우선 정의당은 '규제혁신 5법'의 뿌리를 박근혜 정부 시절의 규제 완화와 일본의 아베노믹스에서 찾는데 이것은 아주 큰 오해"라며 "문재인 정부의 '규제 혁신'과 박근혜 정부 규제 완화는 원칙과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의당이 우려하는 것은 국민 생명과 안전, 개인정보 보호 등"이라며 "우리 당도 규제프리존법에 반대했었고, 생명·안전·환경에 관한 규제 완화는 안 된다는 대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프리존법의 한계를 보완해서 새로운 법을 발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구체적으로 "정의당에서 가장 걱정하는 '우선 허용, 사후 규제'는 국민의 생명·안전·환경을 저해하는 경우 적용하지 않는다"며 "정의당은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를 하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희 당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다른 정보와 결합해도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조치를 한 경우에 한해서만 제3자 제공을 하기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의장은 이어 "정의당도 시대에 뒤떨어진 불합리한 규제 개선에는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의당도 '규제 혁신' 자체에 반대하기보다 보완 방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간접 비판했다. 그는 "혁신성장의 입구는 규제혁신"이라며 "여야를 떠나 모든 정치권이 규제혁신과 혁신성장을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환노위 소위 배정 문제까지…정의당 "의도적 배제냐" 감정 골 깊어지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에 더해 정의당 대표인 이정미 의원의 국회 상임위 내 소위원회 배정을 놓고도 민주당과 정의당 간 기류가 험해지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정되기는 했으나, 환노위 내 노동소위에 포함되지 못하고 예산결산소위로 간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진보 정당의 원내 입성이 시작된 후, 진보 정당 의원이 환노위 노동소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23일 당 최고집행기구인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어떤 정당보다 노동 의제에 밀착했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앞장서온 정의당을 노동소위에서 배제하는 것을 과연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 어처구니가 없다"며 "지금이라도 세 교섭단체는 이 의원의 노동소위 배제를 철회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노동소위 위원을 10명으로 복원하면 된다"며 "(아니면) 야당인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동의하면 야당 몫을 늘려서 정의당을 소위에 배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쏟아지는 비판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전날 SNS에 올린 글에서 "여야 교섭단체 대표 합의사항은 '소위 위원을 여야 동수로 구성한다'는 것"이라며 "노동법안소위를 8명으로 구성하기로 여야 간사단 회의에서 합의됐고, 이 경우 여당 4명 야당 4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야당 몫 4명 중에서 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내부 협의를 통해 분배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나아가 "민주당은 2가지 방안을 야당에 제시했다. △1안은 야당 4명 중 정의당 1명을 추가하는 방안, △2안은 현재 3교섭단체의 4(민주): 3(한국) : 1(바른미래) 위원 배정에 추가해 비교섭단체 1명을 추가로 배정하는 방안"이라며 "2안은 민주당 입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합의 기준에 비추어 양보하는 방안이기도 하다"고 했다. 여야 동수가 아니라 여당 4명, 야당 5명이 되니 '양보'라는 얘기다. 이는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말한 내용과 같은 안이기도 하다.
한 의원은 "그러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1안과 2안을 모두 반대했다"며 "일각에서 '민주당이 반대해 이정미 의원이 노동소위 위원이 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 민주당은 여전히 1안이나 2안이 선택 가능한 방안이라는 입장"이라고 거듭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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