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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좌빨 망국론' 간판 걸고 대선 치를래?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61>반공권(權) 독점·악용, 이젠 내려놓을 때

"반공을 반대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대한 반공청년단의 신도환 단장은 연사가 흥분하면 흔히 그러듯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반말까지 섞어가며 청중들에게 악을 썼다. 1959년 12월6일, 전주공설운동장은 추웠다. 전라북도 내 17개 반공청년단 지부에서 동원된 7000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찬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필자도 그렇게 '궐기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듣고, 만세삼창까지 한 뒤 시가행진에 나섰던 기억이 있다.

부정선거로 악명이 높은 1960년의 3·15 정부통령 선거를 불과 3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행사내용도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반공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대한반공청년단은 반공예술인단(임화수가 단장이었다)과 함께 자유당의 대통령선거 전위대였다. 단체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당시에도 '반공'을 덮어 누를 가치는 없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가사처럼 그 반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신익희나 조병옥이나 장면 따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인이 따로 있었다. 오직 이승만 박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와 국민의 명운이 걸린 반공을 제대로 해 내려면, 3·15선거에서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신도환 단장은 바로 그 점을 역설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신단장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한 '반공을 반대하는 놈'은 '이승만 박사를 반대하는 놈'이었고, '이승만 박사를 반대하는 놈'은 바로 '반공을 반대하는 놈'이었다. '반공'은 말하자면 '안보태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상적인 국민치고 반대하는 사람 별로 없다. 문제는 반공하는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반공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줄곧 그 '특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3·15부정선거에 저항하던 사람들을 적색분자(빨갱이라고도 했다)라 몰아댔고, 유신말기 부마사태 때도 그런 소리가 나왔다. 자기들과 반대쪽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색깔을 덧칠해 '빨갱이'를 만들고자 기를 썼다. 박정희 씨도 그 반공 특권을 내 세우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는다'는 게 '혁명공약' 1항이었다.

그거 앞세워 '유신'도 감행했고, 그 핑계대면서 장기 집권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가 망전필위(忘戰必危 : 전쟁했던 것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를 맞는다)라는 휘호를 자주 쓴 것도 반공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 이었던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전두환 씨도 그런 부류다. DJ도 광주사람들도 그런 반공 특권에 쫓겨 빨갱이가 되었다.

'신도환'이후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도 '반공 독점권'은 맹위를 떨친다. 반대파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종북'이라 하고 '좌빨'이라고도 한다. 반대(반공)하며 타도해야 할 대상에게 퍼주기를 해서, 그 돈으로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헛소리다. MB정권 들어 퍼주기 전혀 안했어도 북한은 핵실험도하고 계속 미사일을 개발해 쏘아대고 있다. 선거가 임박했으니 그런 소리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도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주장하고 나섰다.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사건이 요즘 당 밖으로 쫓겨나와, 이상한 기류를 타고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기류와 함께, 역사상 가장 더러운 수법으로 빨갱이 제조공장을 차려놓고, 미친 바람을 일으켰던 미국 매카시 상원의원의 얼굴이 이 나라 상공에서 무수한 풍선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무슨 까닭인가. 매카시 얼굴이 그려진 풍선들에 바람을 넣어 계속 띄워 올리고 있는 건 누구인가.

계속 펌프질하며 바람을 넣고 있는 언론의 모습이 보인다. '종북좌빨 대량 존재사실' 선전 강조기간이나, 빨갱이 사냥 촉구 강조기간 쯤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온통 나라가 빨갱이 천지가 되어가고, 간첩으로 득실거리는 느낌을 주는 TV자막도 보인다. 빨갱이 때문에 나라가 남아 날 것 같지 않은 걱정까지 생긴다. '빨갱이 사냥판'도 벌어진 형국이다.

검찰이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진보정당 사무실을 뒤져 당원명부까지 압수해 갔다. 배울 만큼 배웠음직한 변호사가 TV생방송 도중, 맞은편에 앉아있는 대담자에게 "김정일·김정은을 '개새X'라 말 할 수 있느냐, 'X새끼'라 말 못하면 당신은 종북세력"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희한한 광경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드디어 그동안 '말이 없던 그 사람' MB까지 종북사냥에 가세했다.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내부의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대표적 사례로 '아웅산 테러사건'과 '천안함 사건'을 들었다. "둘 다 남한의 자작극"이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고,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MB가 예시한 것들은 둘 다 잘못된 사례들이었다.

우선, 아웅산 사건을 북한의 주장대로 '남측의 자작극'이라 믿는 사람 이 나라에 별로 없다. 설사 한 두 사람 그런 경우가 있다 쳐도 귀 기울이는 사람 거의 없다.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안함'은 다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차제에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천안함 문제는 그 동안 정부가 사람의 '종북좌빨 성향' 여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해 왔다. 허나 '천안함'이 사람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정하는 잣대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정부 측 발표를 믿지 않으면 무조건 종북좌빨로 몰아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잘못이다.

일반적으로 어뢰에는 알루미늄 가루가 섞여 있어서 폭발하면 산화알루미늄이 형성된다.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북한산이라고 한, '1번' 글씨가 쓰인 어뢰가 천안함 선체를 때렸다면, 그 산화알루미늄이 천안함 선체와 어뢰에서 추출돼야 맞다. 따라서 국방부도 천안함과 어뢰 부품에서 추출한 흡착물질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산화알루미늄이 검출되었으며, 이게 바로 그 '1번' 어뢰가 천안함을 명중시킨 '증거'라고 발표했다.

문제는 그 뒤에 불거져 나왔다. 국방부가 제공한 동일 시료인 흡착물질을 전문가들이 분석해 본 결과 폭발의 증거라는 산화알루미늄이 검출되지 않았다. '증거'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다. 대신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인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침전물이 검출되었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부품에서 검출된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란 침전물은 섭씨 100도 이하의 저온에서 생성되고, 폭발 때의 높은 온도가 있었다면 생성될 수 없는 물질이라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말하자면 그 침전물의 '존재'는 폭발이 없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때 맞춰 "합동조사단에서 누군가 주도적으로 침전물 대신 산화알루미늄이라는 쪽으로 몰고 갔다"거나 "모의실험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소리도 나왔다.

천안함 사건 5일 뒤인 3월31일 천안함이 아직 바닷물 속에 있을 때인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외부 폭발'이라고 침몰원인을 단정한 것도 수상하고, 국방부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를 늦춰가면서 까지 MB가 황급히 러시아를 다녀온데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료와 데이터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 분석실장 양판석박사, 안동 대학 정기영 교수, 미국 버지니아 대학 이승헌 교수,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서재정 교수 등으로,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제기한 의문에 대해 한국정부가 '과학으로' 답변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측 소행이라 믿지 않으면, 종북좌빨이 된다. 종북좌빨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양산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그 시스템에 저촉이 되면 법이나 과학이 뒷받침 되지 않더라도 꼬투리 잡히게 되어있는 게 문제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그래서 임명장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의원들의 제명을 말하기 시작했다. 곁들여 통합진보당과 연대한 민주당의 '책임'도 거론한다. 종북문제를 대선에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방송과 조중동 등도 그래서 더 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이름에 '통합'이란 단어가 함께 들어가 있어 많은 사람들을 혼동시키는 이로운 점이 그들에겐 행운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종북좌빨 문제처리'를 놓고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국회의원이 됐건 누가 됐건 국가 안보와 관련해 범법행위가 적발되면 법에 따라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 의원 '자격심사'라는 절차가 법에 있으면 그 절차도 밟아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부에서 밀어 붙이려하는 방식의 '인민재판'은 안된다. 정 하려면 '종북좌빨 세력 발본색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같은 것이라도 만드는 수순을 밟을 생각을 하는 게 도리다.

예전에 자주 활용되던 '선거 앞둔 북풍'도 이제는 재미 보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종북좌빨 망국론' 간판 내 걸고 대선 치르려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공독점권이나 좌빨 뒤집어씌우기나 종북사냥 같은 것들, 지금은 국민들이 다 알아차린다. 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해 낼 정도로 국민들이 성숙해 있다.

그보다도 MB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당장 매듭을 풀어야 할 절실한 문제가 따로 있다. KBS와 MBC와 YTN과 연합뉴스와 국민일보의 파업대란 문제를 구국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형님을 비롯한 MB주변 인물에 대한 '청결화' 작업도 시급하다. '서면조사 전성시대' 방식으로 면죄부가 발부되어서는 안된다. 장개석 군대가 망한 것도 부정부패 때문이었고, 월남이 민심을 잃어 공산화의 길로 접어든 것도 집권층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경제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 판국에 국민들의 사기와도 관계가 있는 사안이라는 점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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