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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실패한 모델 본뜬 '규제프리존', 왜 말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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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실패한 모델 본뜬 '규제프리존', 왜 말 바꿨나?

[기자의 눈] 문재인 정부 노선 변화,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해 대선 무렵,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착한 학생'이었다. 당시 후보였던 문 대통령과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공부 모임'을 했다. 문 대통령이 '착한 학생'이었다는 건, 김 위원장이 직접 쓴 표현이다. 이른바 '문재인노믹스'의 밑그림이 그 자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3개월이 지난 지금, '문재인노믹스'는 길을 잃었다. 학생과 선생, 모두 달라졌다.

물론, 낯선 바다로 나선 배가 휘청거리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출항 당시 약속한 방향과 다른 쪽으로 움직인다면, 선장 또는 승무원이 승객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규제프리존법'에 대한 입장 변화가 대표적이다.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프리존(Free-zone)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정확한 이름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별로 정부가 2개의 지역 전략산업을 선정해 전략산업과 관련된 규제를 없애주는 지역 단위의 네거티브 규제(Negative 규제·명시적으로 금지된 항목을 제외하고 모두 허용되는 규제)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통과하기로 17일 오전 약속했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원래 반대하던 법안이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지난해 대선 당시 자세하게 소개됐다. 그런데 뒤늦게 입장을 뒤집은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 당시 홍준표, 안철수 후보 등은 이 법안을 지지했다. 이들 후보는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려면, 이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파고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라서, 4차 산업 혁명 대응을 내세운 주장에는 꽤 힘이 실렸다. 게다가 안철수 후보는 정보기술(IT) 전문가 출신이었으므로, 울림이 컸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반대했었다. 문 후보 캠프에서 일하던 김 위원장은 당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반대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대로 옮긴다. (☞인터뷰 기사 바로 가기 : "차기 정부 '적극적 케인지언' 기조여야 한다")

"4차 산업 혁명 대응을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한다는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발상은 현실성이 없다. 먼저 4차 산업 혁명 관련 논의를 주요 키워드로 정리해보자.

첫째, '사물인터넷(IoT)' 보급을 확대한다. 둘째, 그렇게 해서 생겨난 데이터를 '5G망'으로 전송한다. 셋째, 이렇게 축적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활용한다. 넷째, '인공지능'을 '빅데이터'와 결합한다.

이런 과정을 과연 지방자치단체가 진행할 수 있겠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 단위의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특정 인프라를 어느 지역에 시범적으로 먼저 설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중앙정부가 세심하게 계획해서 할 일이다.

중앙정부가 '사물인터넷', '5G망',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종합적으로 결합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는 게 먼저다. 개별 분야에서 한국이 지닌 경쟁력 수준도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사물인터넷'은 한국이 독일보다 한참 뒤쳐져 있는 게 현실이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식의 계획은 의미가 없다. 어디에 역량을 집중할지에 대한 중앙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서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핀테크, 드론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그게 바람직한 4차 산업 혁명 대응 모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규제프리존' 모델은 방향이 틀렸다. 일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03년부터 10년 동안 일본은 전국에 1189개의 규제 개혁 특구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않았다. 의미 있는 규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자원 낭비만 심했다. 결국 지난 2013년, 정책 방향을 바꿨다. 아베 총리가 직접 이끄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중앙정부 주도로 규제 개혁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쪽이 더 효과적이었다. 4차 산업 혁명 대응에는 막대한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이런 결정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다면, 자원 낭비가 필연이다."

당시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규제프리존' 모델은 과거 일본의 규제 개혁 특구를 본뜬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규제 개혁 특구는 실패했다. 자원 낭비가 심했던 반면, 의미 있는 규제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

4차 산업 혁명 대응, 혹은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서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대규모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일단 이 조건에서 탈락한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한 최소 재원조차 조달하기 힘들다. 그게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이다. 결국 중앙정부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재정을 쓰는 길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모델의 한계는 또 있다. 정부가 2개의 지역 전략산업을 선정한다고 해도, 세부 영역에선 지역마다 중복이 생길 수 있다. 중복투자에 따른 자원 낭비를 막기 힘들다. 게다가 지역마다 규제 완화 폭이 다를 수도 있다. 혼란이 필연적이고, 시장 확대 역시 어려워진다. 일본의 규제 개혁 특구가 이런 이유로 실패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지난 2013년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

김 위원장과 이런 대화를 나눈 게 딱 1년4개월 전이다. 그 사이에 뭐가 달라졌나? 산업정책의 큰 틀은 바뀐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지난 6월 지방선거가 있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했다. 전국 17개시도 가운데 14곳에서 여당 소속 단체장이 배출됐다. 여당이 지방권력을 쥐자,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규제를 풀 수 있게끔 하자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야 하는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맞장구 쳤다. 김 장관은 최근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주장했다.

원래 규제란, 이해관계에 따라 원칙을 흔드는 일을 막으려고 있는 것이다. 지방권력을 쥐고 나니 입장을 확 바꾸는 행태, 설명이 필요하다. '규제프리존' 모델을 반대했던 논거를 깰만한 설명이어야 한다.

▲ 바른미래당 김관영,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왼쪽부터) 원내대표가 17일 국회에서 3당 원내대표 조찬회동을 마치고 합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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