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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시킨대로 했더니, 전과자에 빚쟁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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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대重 시킨대로 했더니, 전과자에 빚쟁이됐다"

[인터뷰 下] 3년 만에 16억 빚 진 하청업체 대한기업 김도협 대표

지난 2015년 12월, 현대중공업 한 사내하청 A대표가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 발견된 유서에는 적자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현대중공업 관련 100여 개의 하청업체가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원청의 '기성(단가) 후려치기'를 견디다 못해 폐업했다. A대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선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의 뒷감당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중공업의 물량계약은 '선 공정 후 계약'으로 진행된다. 기성이 얼마인지 확정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일을 시작하는 식이다. 그리고 일이 마무리된 뒤에야, 원청에서 지급하는 기성을 받는다. 원청이 주는 대로 돈을 받는 구조다. 원청 관리자의 구두 약속이 계약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원청이 기성을 일방적으로 삭감하는 게 가능하고 하청은 이를 거부할 수단이 없다. 차기 일감을 따내려면 삭감된 기성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하청업체들은 노동자의 임금삭감, 체불, 4대 보험 미납 등으로 빚쟁이 신세가 된다. 버티지 못하면, 거리로 내쫓기거나 자살한 A대표처럼 번개탄에 불을 붙인다.

A대표가 세상을 떠난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러한 왜곡된 구조는 바뀌었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여전히 바뀐 건 없다. 지난 7월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현대중공업(주)의 갑질횡포를 멈춰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현재 현대중공업 건조1부에서 선박건조 업무를 담당하는 사내협력 업체 '대한기업' 김도협 대표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기성을 후려치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대한기업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기존 기성에서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대한기업에 주고 있다. 그렇게 삭감된 기성은 고스란히 대한기업의 부채로 쌓여있다. 김 대표가 지난 3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진 빚이 총 16억 원이다.

김 대표는 "원청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사실상 자신은 인력업체 소장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업체 내 인사는 물론, 작업 공정까지도 세세하게 원청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과거 자기 회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김 대표는 "당시 우리 직원이 일하다 사망했으나 유가족과의 교섭부터 합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원청에서 처리했다"며 "우리는 합의서에 이름만 빌려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그럼에도 우리가 적법한 도급계약을 맺은 원·하청 구조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대한기업에서는 2015년 10월, 블록작업을 하다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이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와 유가족이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단식과 농성을 벌였고, 사태가 장기화하자, 여러 곳에서 압박을 받아온 대한기업 총무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두 회에 걸쳐 싣는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정기훈

"작업하지 말아야 할 곳인데... 결국 사람이 죽는다"

프레시안 : 대한기업에서 2015년 9월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현대중공업 4도크 2742호선 블록 위에서 작업하던 작업자가 크레인에 실려 이동 중인 다른 블록에 부딪혀 12미터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당시 상황을 종합해보면, 크레인에 매달린 블록이 이동 중 균형이 어긋나 좌우로 흔들렸고, 그렇게 흔들린 블록이 통제를 잃고 다른 블록 위에 있던 작업자를 덮쳤던 것이다. 당시 사망사고가 지역사회에서는 꽤나 이슈가 됐다.

김도협 : 이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당시 사고가 난 곳은 이전까지 한 번도 크레인 작업을 하지 않았던 곳이다. 원래 도크에서 블록을 작업해서 탑재하는데, 당시 도크에는 해양구조물들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사고 난 자리에서 크레인으로 블록을 옮긴 것이다.

프레시안 : 왜 그곳에서는 작업하지 않았나.

김도협 : 작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경사진 곳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그곳 바닥은 경사가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니라 좌우, 상하로 서로 엇갈리는 구조로 돼 있었다. 그러니 크레인을 세워도 균형이 잘 맞지 않았다. 더구나 이 장소에서는 크레인이 탑재해야 하는 블록까지 못 미쳐 작업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프레시안 :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인가.

김도협 : 원청인 현대중공업도 이 장소에서 작업하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업 전날 예행연습을 했다. 그럼에도 정작 작업 날 사고가 난 것이다.

프레시안 : 예행연습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사고가 난 것인가.

김도협 : 예행연습은 낮에 진행했는데, 실제 작업은 다음 날 밤에 진행했다. 사고가 밤 10시에 발생하지 않았나. 예행연습은 낮에 하고 실제 작업은 밤에 하니, 예행연습은 별반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왜 작업을 밤에 했는가.

김도협 : 작업했던 장소가 애초 작업하던 곳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작업을 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고, 또한 낮에 그 자리는 블록을 옮기는 '트랜스포터'가 늘 이동하는 통로다. 그러니 작업을 낮에 하면 안 됐다. 트랜스포터 운행이 멈추는 밤에 해야 했다.

프레시안 : 작업 하지 말았어야 할 장소와 시간에 작업한 게 사고 발생 이유인 듯하다. 그런 위험한 작업을 왜 했나.

김도협 : 사실 당시 블록 작업은 우리 업체가 맡은 작업이 아니었다. 갑자기 잡혔다. 그래서 부랴부랴 일을 한 거였다. 원청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작업을 하라고 했다. 별수 있나. 하라면 하는 거다.

ⓒ정기훈

"교섭엔 들어가지도 못했다"

프레시안 : 그 사망사고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이슈가 됐다. 사망자 아버지가 농성 등을 벌이며 진상조사와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해결은 어떻게 됐나.

김도협 : 사실 우리는 당시 유가족과의 합의 과정을 일체 알지 못한다. 유가족과의 교섭자리에 우리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프레시안 : 그럼 누가 교섭에 들어갔나.

김도협 : 사고가 9월 2일에 났고, 두 달이 지난 11월 18일에 합의가 이뤄졌다. 그 두 달 가까운 교섭에는 원청인 현대중공업 관계자, 그리고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 회장이 들어가 유가족과 협상했다. 그렇게 해서 합의한 내용을 합의서에 담았는데 그것을 우리는 합의가 이뤄진 18일에서야 봤다. 그렇기에 사실 그 합의서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한다.

프레시안 : 합의서도 일종의 계약서 아닌가. 그러면 유족과 함께 쓴 합의서에는 합의 주체로 누구 이름이 들어가 있나. 교섭을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했으니 현대중공업 원청 관리자 이름이 들어가 있나.

김도협 : 아니다.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정작 그 합의서가 다 작성된 뒤에야 볼 수 있었다. 철저히 배제된 것이었다. 하도급법상 협력사의 지위를 하나도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 당시 유가족과 작성한 합의서. 여기에 합의당사자는 김도협 대표로 돼 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왜 그때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나.

김도협 : 나도 후회스럽다. 사고 당시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할 경우, 원청과 싸우던가 아니면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당시엔 현대중공업이라는 큰 기업과 싸운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사실 사망사고가 난 뒤, 매일 새벽 2~3시가 되면, 원청 관리자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조찬회의에 보고를 해야 하니 사고자의 상태를 보고하라는 전화였다. 그게 고인이 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일같이 왔다.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었다. 회사 대표인 내게 그렇게 전화가 올 정도였으면 우리 회사 총무에게는 얼마나 압박이 있었겠나. 결국, 우리 회사 총무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프레시안 : 당시 산재사망 건으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됐는가.

김도협 : 나는 징역형(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안전관리에 미흡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내가 실형을 받았지만, 원청 관리자(당시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대표)는 고작 벌금 500만 원형을 받았다. 내가 실형을 받았다는 게 억울한 게 아니다. 왜 모든 작업을 지시했던 원청 관리자는 벌금형이고 시키는 대로 일만 했던 나만 실형을 받나. 내가 실형을 받으면 원청도 실형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더구나 사고 발생 이유는 애초 작업하지 말았어야 할 장소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 작업을 누가 지시하고 진행했나. 원청이다. 그런데 책임은 하청인 우리에게 더 묻는 식이다.

프레시안 : 법원에서 왜 그렇게 판단했다고 생각하나.

김도협 : 모르겠다. 다만, 이 재판이 원청 관리자와 함께 진행됐는데, 1년 넘게 재판이 연기됐다. 그리고 판사가 두 번이나 바뀌고, 담당 검사도 교체됐었다.

ⓒ정기훈

"언제까지 '갑질' 구조가 반복돼야 하는가"

프레시안 : 최근 청와대 행정관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

김도협 : 국민청원에 올린 글을 보고 청와대 행정관이 먼저 연락을 했다. 사실 국민청원을 올려도 20만 명에게 청원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청원에 1만 명이 참여했다. 그렇게 청원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나쁜 마음도 먹었다. 내가 죽으면 이슈가 될까 해서였다.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유서를 쓴 다음 날,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내가 겪는 문제는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중공업 내 만연한 문제다. 지난 3년 동안 대표로 있으면서 한 번도 대표로 대우 받은 적이 없다. 그것은 고사하고 협력사로 지위를 인정받은 적도 없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가 인력소개소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업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레시안 : 그게 무슨 말인가.

김도협 : 내가 운영한 업체의 직원이 100명이 넘는다. 인력만 따진다면 중견기업이다. 그런데도 우린 인력회사로 분류된다. 일전에 대한상공회의소에 대출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당시 회의소는 우리 회사에 대출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가 제조업 임가공(賃加工)업체지만 공장도 없고 장비도 없지 않나. 그러니 그쪽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서비스업의 선박 임가공으로 등록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서비스업으로 회사를 등록한 뒤, 다시 대출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대출을 받지 못했다.

프레시안 : 대출을 해주지 않으려고 핑계를 댄 건데, 그 핑계를 그대로 이행해서 다시 오니 그쪽에서도 난감했을 듯하다.

김도협 :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책자금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기금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신용, 재무 등이 모두 평균 이하다. 게다가 4대 보험금은 유예돼 있다. 진흥공단은 업체의 신용도 등을 따져 1등급에서 13등급까지 등급을 나누는데, 1등급은 재무가 튼튼하니 기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10~13등급은 워낙 재무가 안 좋으니 내주지 않는다. 결국, 대출 대상은 2등급부터 9등급까지인 셈이다.

내가 다른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와 같이 그 기금을 받으러 갔는데, 우리업체가 11등급, 다른 업체가 12등급을 받았다. 공단을 나오면서 서로 얼굴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정책자금이 '빛 좋은 개살구'였구나 싶었다.

프레시안 : 지금 빚이 얼마나 되나.

김도협 : 4대 보험 연체금 12억을 비롯해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용재단, 신용기금, 은행권 등에서 4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총 16억 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물론 동생 집까지 압류 상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도협 : 지난 3년 동안 원청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했다. 나중에 보전해준다는 말만 믿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실형을 선고받고, 빚더미에 오른 것이다. 지나고 보면 바보 같고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게 나뿐이 아니다. 대다수 하청업체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언제까지 이런 구조가 반복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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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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