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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없는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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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없는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시민정치시평] 5.18 서른 두해를 맞아

안네 프랑크가 아우슈비츠로 잡혀가기 직전 피난처에서 쓴 일기의 내용이다.

내가 자유롭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 나는 내가 강한 성격의 용감한 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만일 하나님이 나를 오래 살게 해주신다면, 엄마 이상의 인간이 되겠어.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서 일생을 마치진 않을 작정이야. 세계와 인류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

'안네의 일기'는 전쟁과 대학살의 참상이 아니라, 함께 숨어 지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한 유대인 소녀의 일기를 읽는 동안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전쟁의 잔혹성에 전율하고 평화를 갈구한다. 인종 차별과 이념 갈등이 여전한 세상이지만, 누구도 안네의 삶과 죽음 앞에 인종이나 이념을 들먹이며 힐난하지 않는다. 인류는 그녀를 기억하며 함께 슬퍼한다. 그렇게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인류의 보편 기억이 되어 있다.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대학살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인류의 보편 기억이 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 직후엔 나치즘=인종차별주의=전쟁범죄가 청산되어야 할 과거이자 악으로 지탄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악을 저지른 전범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징벌하면 모두들 끔찍한 기억을 잊고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악은 그렇게 제거되어갔지만,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했던 유대인들은 여전히 고통의 기억과 상처로부터 헤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사람들은 트라우마 희생자들 곁에 다가갔고, 홀로코스트를 그린 소설, 영화, 드라마 속 평범한 주인공의 삶과 죽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평범한 자신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물론 가해자도 될 수 있었다는 일체감을 형성하며 홀로코스트를 보편 기억으로 공유하고 그것이 인류에게 남긴 상처를 함께 치유하고 있다.

5.18, 올해로 서른 두해가 흘렀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났다. 1980년 봄, 국가폭력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어린 자식들이 중년이 되어 부모에 대한 기억의 퍼즐을 어렵사리 꿰맞춰야 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5.18에 대한 과거 청산은 다른 사례에 견주어 볼 때, 비교적 신속히 마무리되었다. 가해 주체인 국가는 진상 규명과 보상에 나섰고 주동자들을 처벌했다. 피해자들은 국가로부터 정신적으로는 사과를, 물질적으로는 보상을 받았다. 5월 18일은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2012년 5월, 지금 교과서는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그 희생자들은 민주투사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살아남은 나, 혹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려 하지 않을까.' 그들이 느끼는 소외의식과 고립감은 때론 생을 포기하게 만든다. 오늘도 머리와 마음과 몸이 너무 고달파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옛 시민군 동지를 보내고 남은 이들은 '그의 자살을 이해한다'는 참으로 뼈아픈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끼리 나지막이 말할 뿐이다. 세상이 그들을 보는 눈이 냉담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보상금도 듬뿍 챙겼는데, 아직도 5.18 타령이냐'는 비난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 자신도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안겨 줄 것으로 생각했던 보상과 기념의 성찬이 오히려 마음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아직 5.18은 우리 사회에서조차 보편 기억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 5월 평범한 광주 시민의 삶과 죽음은 안네 프랑크의 그것들과 결코 다를 바가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5.18의 보편기억화가 어려운 것은 홀로코스트처럼 5.18 자체가 다신 일어나서는 안되는 '성스러운 악'이라는 도덕적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여년이 흘렀지만, 5.18은 여전히 정치적 맥락에서만 이해되고 또한 다루어지고 있다. 먼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일반인의 5.18 인식도 과거 청산이라는 정치적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 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오늘도 전직대통령 예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5.18기념재단이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절반을 훨씬 넘는 국민이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이념적 분열증도 5.18의 보편기억화의 장애물이다. 지금도 이념적 잣대로 5.18이 고정간첩, 빨갱이의 사주로 일어났다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0년에 5.18기념재단이 온라인상에 나타나있는 5.18 인식을 조사했을 때, 부정적 평가가 18.4%에 달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등 30주년 기념식에서 일어난 5.18에 대한 홀대와 모독에는 집권 보수 세력의 5.18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민주·개혁·진보를 내세우는 정치 세력 역시 5.18을 지역주의 틀 안에 가두며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전유하는데 몰두함으로써 5.18이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을 넘어 도덕적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영화 <화려한 휴가>ⓒ프레시안
700만 명이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다. 5.18을 기억하는 이와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어울려 함께 눈물을 흘렸다. 대부분이 '아, 내가 이런 끔찍한 역사를 알지 못했을까'라는 망각 혹은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에 눈물 흘리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국가권력에 의해 가족이 파괴되고 평범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그 죽음의 의미를 잊지 말아달라는 절절한 목소리에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5.18을 평범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성찰하는 보편기억화의 경험, 그것은 정치적 이해득실의 관점에서 5.18을 바라보던 습속을 털어내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치유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5.18의 보편기억화는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출발선상에 서 있다.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사람이 웃고 있지만, 살아남은 오직 한 사람 신애만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많은 신애가 오늘도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시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2012년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면, 5.18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연대를 넘어 그들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을 포개고 보듬어라.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의 사선을 넘어 살아남은 유대인 중 한명이던 작가 프리모 레비처럼 자유의 몸이 된 지 40년을 훌쩍 넘어 살고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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