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화 폭락으로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진 터키가 은행 외화·리라화 스와프 거래를 제한하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 은행규제감독국(BDDK)은 자국 은행들에 외국 투자자와의 외화·리라화 스와프 거래와 현물·선물 외환거래 등 유사 스와프 거래를 해당 은행 자본의 50%까지만 허용한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BDDK는 현행 거래 비율이 기준치 아래로 떨어져야 신규 거래나 거래 갱신이 이뤄지며, 이 비율은 매일 정산된다고 설명했다.
이 조치가 발표되기 전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현지 매체 휘리예트와 한 인터뷰에서 "13일 오전부터 우리 기관들이 시장 안정에 필요한 조치를 발표하고 시장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그는 이런 예방책과 계획은 금융뿐 아니라 리라화 폭락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중소기업을 포함한 실물경제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터키 당국이 외화예금을 전환 및 동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자본통제에 관한 루머를 부인했다. 그는 또 필요하다면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재정 규정을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장인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불안한 터키 경제를 외국의 '작전' 탓으로 돌린 것과 비슷한 논조로 리라화 가치 폭락은 "경제 데이터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며 분명한 공격의 지표"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일 한때 전일 대비 23%나 급락할 만큼 불안한 터키 리라화 환율은 한국시간으로 13일 오전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한때 역대 최고치인 달러당 7.24리라까지 치솟았다.
터키 경제는 터키 기업들의 채무 불안과 물가 급등,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 등이 겹쳐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최근엔 미국인 목사 구금과 관련된 미국의 제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 등으로 타격이 커졌다.
지난 10일 터키 국채 10년물 금리는 역대 최고 수준인 연 22.11%에 거래를 마감했고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453으로 75포인트 급등했다.
이날 터키 당국의 외환 거래 제한과 재무장관의 발언이 전해진 이후 리라화는 달러당 6.57리라까지 다소 진정됐으나 오전 10시께 다시 달러당 7리라 선을 오가며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연초 대비로 84%나 폭락한 수준이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아르헨티나의 페소화(57%)보다도 낙폭이 크다.
하지만 은행 외환 거래 제한은 터키의 현 상황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은 조치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호주 캡스트림 캐피털의 레이먼드 리 이사는 블룸버그TV에 "스와프 거래 제한 도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터키는 그동안 장기적 경제 안정을 희생시키면서 부채를 키워 단기적 경제성장을 촉진했으므로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17.75%인 기준금리를 20%, 25%, 심지어 30%까지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시장이 주시하는 부분은 기준금리 인상 여부다.
물가가 급등한 터키는 자금줄의 고삐를 죄어야 할 상황이지만,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로 시장에 충격을 안기는 동시에 터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터키 내에서 도전받지 않는 권력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높은 금리에 대한 거부감을 전혀 감추지 않으면서 구두 개입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세간의 이목이 쏠린 11일에도 금리가 빈부 격차를 부추기는 '착취 수단'이라고 비난하면서 저금리를 강도 높게 주장했다.
또한 터키 당국자들은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미국의 제재로 그 효과가 바로 사라져버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블룸버그통신에 전했다.
터키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추락한 상태라는 점에서도 금리를 올리더라도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레디 아그리콜의 기욤 트레스카 선임 신흥시장 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리 인상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새로운 경제팀을 구성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경제를 완전히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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